통증을 길들이다 과학과 사회 10
베르나르 칼비노 지음, 이효숙 옮김 / 알마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신체적 감각과 감정으로 느껴지는‘통증(痛症)’이란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하면 소위 고통(苦痛)이란 언어로 표현되는 것만큼 생각해 본적이 없다. 다만, 분명 통증을 느끼는데도 불구하고 별다른 신체상 사유가 없다는 진단의 경우 당혹스럽기도 하고, 의료진의 처방이나 치료에 불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전부라 할 수 있다. ‘대체 내가 아프다는 데 왜 이상이 없다고 하는거야!’하고 말이다. 이 저술이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다분히“주관적이고 복합적인 신경심리학 현상”인 통증(douleur)을 현대의학은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의료진의 관점에서부터 철학과 종교, 문학에서 바라보는 통증의 관념, 그리고 이의 치료와 처치방법에 대한 자세와 태도 등 사회 인식의 당위를 제시하고 있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차원에서 사람의 온전한 상태를 위협하는 전반적 현상”이라는 고통과는 달리, 통증이란 “세포조직의 실제적 또는 잠재적 상해(傷害)와 관련된 또는 그러한 통증의 표현들로 묘사된 불쾌한 감각적 감정적 경험”이라 정의된다. 결국 통증에 감정적 경험이 포함되는 것처럼 상처나 정신적 고통이 신체적 통증으로 전이되어 다가오는 느낌까지 있다보니 그 범주가 모호해지는 것도 사실이며, 이는 통증이란 환경, 심리적 상황에 따라서도 변화할 수 있는 인지적 감각이라는 말이 된다.

저술은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통증의 범주와 생리학적 양상 등을 말하는 의학적 검토에서부터, 인간의 삶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와 같은 인문학적 성찰, 그리고 통증의 치료에 대한 의학계의 관심과 발전적 이해의 과정을 통해 보편주의적 윤리로서의 지향점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의 통증에 대한 의료계 및 사회전반이 지향해야 할 전방위적 과제와 목표를 제시하기 위하여 필히 요구되는 윤리적 사상과, 사람 그리고 사람의 삶에 대한 보다 깊은 통찰, 사회의 통합적 공감대의 확대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를 앞에 둔 의사는 단순히 진단을 위한 척도로서만이 아니라 통증은 바로 환자의 어휘이며, 존중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며, 환자는 통증 지속이 곧 병리학적 진행이라는 오해를 불식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통증을 호소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는 소아나 노인, 다중장애인과 같은 의사소통이 힘든 환자들에 대한 진전된 통증의 측정 방법들이 의미하는 휴머니즘의 이해는 물론, 인간 삶에서 통증이 의미하는 그 진정의 유대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사회 및 국가의 통증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의 당위성을 납득케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통증의 의료적 이해를 위한 설명 중에서 심각한 정신지체에 운동장애가 결합된 다중장애인인 환자의 경우 통상적으로 알려진 코드에 따라 설명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통증을 간과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네들의 신체와 감성적 징후들을 포착하여 통증을 진단하고 처치하는 전문적 방법들의 소개는 의학이 지금까지의 단순한 생리학적 차원을 넘어서야 하는 것임을 일깨우고 있으며, 임신 24주면 이미 태아의 경우에도 통증감각을 통합하는 수용체는 물론 통증 투사의 주요경로가 완성되고, 기억력까지 획득한다는 연구결과는 태아와 신생아에 대한 통증의 의료적 대처는 물론 생명윤리 차원에서도 중차대한 의료적, 사회적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환자들의 통증 호소가 의학적인 객관적 징후들에 앞서야 함을 강조하는 일반의(醫)인‘마르탱 빙클레르’가 들려주는 일화는 감동적이다. 통증을 과다하게 표현하는 환자가 있어 과장되고 시끄러운 환자라고 치부하자 아버지가 그에게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너는 그렇게 말할 권리가 없어! 이 사람이 아프다고 말하면 너는 믿어야 해! 의사가 뭐라 해도 통증이 옳아! 네가 그의 말을 믿지 못한다면 너는 직업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이 치료사로서의 행동원칙은 그가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일생의 신념이 되었다는 것이다. 치료는 통증이‘진짜’라는 것에 대한 증거를 조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과연 우리의 의료계 현실은 어떤지 모르겠다.

한편 이 저술의 아주 흥미로운 부분인데, “통증이란 자기 영혼의 위대함을 시험해보고 모두의 눈에 자기 의지의 우월성을 확인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정의한‘세네카’의 말을 시작으로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스토아적 의연함이나, 18세기 프랑스 외교관이자 정치가였던‘탈레망’의 가혹하고 잔인한 무마취 수술을 견뎌냈던 이야기는‘칸트’가 말했듯이“우리 삶에 대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은 통증 속에서이고 일종의 인생을 밝혀주는 자극 같은 것”이라는 얘기처럼 통증은 인간 삶의 실제일 것이라는 점에 공감케 된다. 더구나 “자기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또는 남의 고통을 증언하기 위해 하나의 언어를 창조하는 일”이 문학이라고 하면서 들려주는 문학 속의 통증의 이야기들과 온갖 형태의 예술화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가 통증에서 시작된다는 미학적 도전에 관한 담론은 숭고함, 때론 신성화의 언어로, 드라마틱하고 관능적인 인내의 격앙(激昂)으로 인간 삶에 깊숙이 스며드는 통증 해석의 명문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통증은 인간에게 있어 한낱 상해와 관련된 불쾌한 감각적 감정적 경험에 머무는 것이 아닐 것이다. 통증 치료는 그래서 통증 속에 갇혀 고통스러워하는 존재의 짐을 덜어주는 것만큼이나 인간의 유대를 증명하는 것이며, 저술의 말미에서 지적하듯이 치료에 대한 심리학과 학제간의 접근이나 인문학과 철학교육의 의학교육에의 적극적인 확충, 여전히 불충분한 기초 및 임상연구의 강화, 국가적 프로그램의 법적 도입 등을 통한 통증치료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확산은 진정한 휴머니즘의 실천이 될 것이다. 신경생리학, 생체의학, 철학, 종교학, 비교문학을 아우르는‘통증’이란 감각과 감정에 대한 이보다 압도적인 저술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의료인은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일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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