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진화의 단위 주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생명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발생시킨다.   종(種)이나 집단선택, 개체선택, 유전자선택과 같이 진화가 발생하는 실체로 학설이 나뉘고 있으나. 이 저작은‘유전자 선택설’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동원되는 선구적 실험이나 연구조사 사례와 논증은 그야말로 풍부하고 탁월한 지적 향연이라 할 수 있다. 특히,‘이기적’이라는 도덕적 냄새가 나는 유전자의 성향이 대중을 매혹하지만 단지 결과의 인식을 수월하게 이해토록 하기 위한 도킨스식 표현 방법에 불과하다는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된 것은 나로서는 성과라 할 수 있겠다.

생물은“‘종(種)의 이익을 위하여’또는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도록 진화”했다는 다윈의 사상에 대해 여기서 말하는 종이란 단지 번식에 대한 완곡한 표현일 뿐이지 진화의 주체를 종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서 시작하여, 진화를 바라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낮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선택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라는 신념을 강조한다.
그리고 개체나 집단선택설들이 주장하는 자연의 사례에 대해 유전자선택으로 해석 가능함을 입증함으로써 진화의 주체는 자기복제자인 유전자나 유전자세트임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설명 과정에는 무척이나 진기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어 진화의 단위로서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이해를 떠나 모든 존재의 이유를 성찰할 수 있는 지적감동의 시간으로 충만한 느낌을 갖게 된다.

유전자는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통해 영속하고자 하는 것, 이것만이 유일한 목적이며, 자연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유전자를 선택할 뿐이다. 진화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이지 여기에 어떤 특별한 목적이나 방향이 개입될 여지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복제 능력을 지닌 유전자가 굳이 몸이라는 개체 속에 들어 앉아 번거롭게 생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하는 의문을 낳는다. 즉 자기복제자가 모든 것을 행하는 운반자를 구태여 만들어 내어 생식과 생장이란 과정을 겪게 하는 이유의 실익에 대한 문제이다. 이는 감수분열을 통해 서로 다른 개체가 한 개체에 모이게 함으로써 이로운 돌연변이를 지니게 될 수도 있으며,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함으로써 정확성과 복잡성을 공고하게 하며, 유전자수를 극대화하는데 결정적으로 유익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기적 유전자는 생존기계를 만들어 그 안에 들어앉아 생존기계의 행동에 영향을 줌으로써 간접적으로 자기 유전자의 번영을 증진시킨다. 사실 이 말은 당혹스럽고 획기적인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신체가 단지 유전자의 자기 생존과 번영이라는 이기적 행위를 수행하기 위한 운반기계, 즉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하나의 개체로서의 주체성이 부정되고 하위단위인 유전자의 생존기계라는 것이니 그 발칙함은 선뜻 수용하기가 버거운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개체나 집단이 자기복제능력을 지니고 있는가하는 질문을 하게 되면 사실 자기복제 역할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모든 생명체가 자기복제를 하는 실체의 생존율 차이에 의해 진화한다는 것을 부정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의 학설은 개체선택설과 팽팽한 대립)

한편 시선을 잡아당기는 특징적인 이론 중에‘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volutionarily Stable Stretgy, ESS)'라는 매파와 비둘기파의 장기적 생존 이익에 기반한 협력과 배신의 시나리오를 통한 자연 선택의 특성은 배신자에 대한 보복자와 같은 조건부 전략자의 승리처럼 자연계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고도 의미있는 시사를 한다. 특히 게임이론의 중추인 죄수의 딜레마가 무한 반복될 경우‘호혜적 이타주의’로 안정 상태에 도달하는 실험은 자연선택의 속성을 이해하는 데 중대한 이해를 제공한다. 여기서 어떤 한 전략이 계속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전략이 다수일 때 즉 자기 자신의 사본이 많은 환경에서 특히 유리하며, 계속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ESS의 중요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 저술은 저자의 우려처럼 도덕성을 논하려는 의도가 있지는 않지만, 다른 유전자들과 잘 어울리고 상호보완적이어야 생존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마음씨 좋음’과 ‘관대’함이 승리한다는 자연의 속성은 인간세계에 의도하지 않은 미덕을 알려준다.

이 저작이 제기하는 또 하나의 탁월한 이론으로 모방의 단위이자 문화 전달의 단위로서‘밈(Meme)’이라는 일종의 문화유전자를 들 수 있다. “현대인의 진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전자만이 진화의 기초라는 입장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의복과 음식의 유행, 의식과 관습, 예술과 건축, 기술과 공학 등 문화가 뇌에서 뇌로 퍼져 가면서 그 수가 늘어나며 진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동물의 행동은 어쨌든 유전자의 제어 하에 있지만, 세상을 시뮬레이션하고 자기인식까지 갖게 된 뇌를 지니게 된 인간은 유전자의 독재에 반항하는 힘까지 갖추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완벽하게 실행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유전자로부터 해방되어 자기 실행의 결정권을 생존기계가 갖게 되는 날 아마 새로운 진화의 단계로 나아갈 것이라는 도킨스의 예견은 유일한 자기복제자인 유전자(DNA)의 독점권을 밈(Meme)이 되었든 그 무엇이 되었든 새로운 진화를 시작하게 될 것이라는 데 공감케 된다.

이 밖에 저자의 동명의 저작인‘확장된 표현형’이라는 유전자의 생존기계 내,외부를 막론하고 해당 동물의 행동을 담당하여 유전자 자신의 생존을 극대화하는 경향에 대한 이론은 매혹적이다 못해 감탄스럽기조차 하다. 이외에도 숙주와 기생체의 협력이 궁극에는 완전히 동화하여 하나의 동일체로 진화할 수 있다는 가설은 생물의 급작스럽게 변형된 형태와 행동을 설명하는데 스티븐 제이굴드의 단속평형설 못지않은 발상을 주기도 하며, 생존기계 안에서 자기사본을 알아보는 유전자의 그럴싸한 방법이나, 대투자 정직 전략과 소투자 착취전략의 두 갈래로 진화한 성 전략이‘종의 이익’에 미치는 검토는 앎에 대한 갈증을 산뜻함을 넘는 청량감을 느낄 정도로 풀어준다.

진화는 돌연변이를 필요로 하는 유전적 변화이다. 여러 생물 개체 속에 들어앉아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력의 모습들을 도킨스의 설명으로 보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사물이 어떻게 진화되었는지, 어떻게 된 일인지에 대한 진술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몰랐다. 최적자의 차등적 생존인 자연선택과 유전자, 그리고 생존기계, 협력의 진화에 이르는 이‘유전자선택설’을 주장하는 진화론의 저술은 그 이론적 주장을 초월하는 생명과학에 대한 성찬이자 신(新)다윈주의의 위대한 저술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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