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
아리엘 도르프만 지음, 김영미 옮김 / 창비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의 기업 환경을 묘사한다면 가히‘살인적인 경쟁’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세계화라는 자유 시장경제체제에서 이를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더 저렴한 비용, 더 싼 인건비를 찾아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고 상시적 구조조정상태 하에서 경쟁회사간의 생존을 위해 벌이는 극한 경쟁은 당연한 기업의 생태로 인식된다. 무력한 근로자들은 상존하는 해고의 두려움으로 노동기계로 전락하고, 경영자들은 자신의 도덕성을 합리화시키고 사회적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아마 돌아버릴 정도의 강도 높은 심적 갈등을 이겨내도록 강요된다. 우린 이 틀을 상생할 수 있는 구조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일까? 이 작품은 제목처럼 아주 특이한 실험을 감행한다. 가상의 현실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한 심리치료의 현장에 우리들은 안내되어 관찰하는 자를 다시금 관찰토록 하는 지위를 얻게 되고,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들락거리는 이 기이한 치료 방식에 매료되어 버리고 만다.

“우리는 아무 상처도 입히지 않고 어머니 대지를 변화시켰다.”고 공언할 정도의 친환경 건강, 의약산업의 최고기업인‘클린 지구(Clean Earth)'의 CEO인‘그레이엄 블레이크’는 수요의 급격한 감소와 경쟁으로 인한 이윤 감소로 적대적 M&A에 놓이는 취약한 상황에 이른다. 근로자의 대량해고를 수반하는 구조조정, 공장폐쇄 등으로 극심한 심적 고통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300만 달러에 이르는 치료계약에 사인하고‘톨게이트 씬드롬’이라는 심리치료에 돌입한다.

치료의 첫 단계는,‘록산나’라는 여성과 그녀의 가족에 대한 전능(全能)의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즉“상상력이 유일한 속박이고”,“의지가 유일한 한계”인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여성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하고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을 때 과연 우린 어떤 행동들을 할 수 있을까? 환자인 블레이크에 대한 이 심리치료는 독자에게는 심리실험의 과정을 목격하는 흥미로운 시간이 된다. 자신의 사적 욕구를 반대할 어떠한 공적 힘도, 규제도, 경쟁도 없는 곳에서 탐스러운 여성과 그녀의 한 가족을 꼭두각시처럼 소유하게 되었을 때, 우린 우리의 윤리의식을 적나라하게 체험할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록산나를 온통 소유하기 위해 그녀의 애인에게 마약소지의 누명을 씌우고 그녀의 가족을 도탄에 빠뜨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어떠한 치료자들도 능가할 정도로 사악하게 행동하지만 비탄에 빠진 여인의 자살상황을 목격하게 되었을 때 스크린 밖의 현실로 뛰쳐나갈 사람은 얼마나 되겠는가? 가상의 현실로 뛰어드는 것이 금지되어 있음에도 이를 위반하고 블레이크는 록산나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낸다. 환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실제로 누구인지 이해하게 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이 희한한 치료요법은 블레이크에게 강박을 구현하고, 그 강박들이 최종적인 도덕적 결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함으로써 성공한 듯 보인다.

이 소설의 맛은 바로 다음의 반전된 장면에 있다. 블레이크가 전능한 조종의 권한을 행사한 현실은 허구의 현실, 즉 치밀한 시나리오에 의한 연기에 불과한 것이다. 이들의 실제 모델이 된 블레이크 자신의 공장에서 근로자들의 보건치료사인‘로즈’를 발견하면서 블레이크는 현실에서 자신의 통제력을 실험하기에 이른다. 실제에서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나 상상 속에서는 자신의 것이었던 록산나에 대한 감정의 이입은 현실의 로즈에게 몰입하게 한다. 자신의 치유 이행기의 연장일 뿐이라는 정당화 속에서 로즈와 그녀의 가족을 모니터링하기 시작하고, 클린지구는 경쟁력 상실로 이사진들의 강한 폐쇄의 압력에 빠진다. 친환경의 윤리적 기업인‘클린지구’를 적대적으로 인수하려는 자와 같이 믿음이 유지 될 수 없는 사회,  확장, 성장, 팽창, 번영, 경쟁의 언어만 힘을 얻는 환경은 사실 우릴 좌절케 하고, 살아갈 힘을 빼앗는다.

소설은 그러나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정말이지 희망이 존재함을 믿지 않고서는 아마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존재치 않을 것이다. “나 한테만 속한, ~ 내가 왜 현재의 나인가에 대한 이야기죠. 그건 당신에게 주는 내 선물이에요.”로즈가 블레이크에게 주는 이 믿음이란 선물, 인간에 대한 신뢰만큼 커다란 선물이 있겠는가? 이 특별한 심리치료는 누구나“다른 사람들을 가지고 장난칠 수 있고, 끔찍한 일들을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자신 속에서 발견할 수 있고, 그 상처를 복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시켜준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의 최 선단에 있는 미국사회와 그닥 다를 바 없는 우리의 기업환경을 볼 때 소설 속‘생명치료쎈터’의 프로그램은 꽤나 잘나갈 장사처럼 보인다...

한편, ‘단테’의『신곡』 「지옥」편 29곡과 19곡, 그리고 「천국」편 13곡을 은유한 듯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세상의 구역질나는 실체와 신뢰의 가능성을 희곡적 대화와 독백으로 미묘한 감상을 느끼게 하는 독특한 체험을 선사하기도 한다. 제아무리 경제성이라는 효율 중심의 사회라지만 “좀 더 깊은 어떤 것, 좀 더 자신의 본질에 가까운 자아를 발견하게 될”여지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블레이크의 망설임 없는 시도는 어쩜 진정한 삶에 대한 희망이자 가능성의 예찬일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