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천무후
쑤퉁 지음, 김재영 옮김 / 비채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중국 역사의 유일무이한 여(女)황제 이다보니 사적(史的)평가는 물론 다양한 측면에서의 문학적 조명이 넘쳐나는 것은 그 만큼 독특하고 기이하며, 후대의 사람들을 강하게 매혹하는 무엇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보잘것없는 지방향리의 딸로 비, 빈, 첩여, 재인, 미인, 어첩 등 100여명의 후궁전인 ‘액정(掖庭)’에 발 딛은 걸 보면 그 미색이 이미 보통 수준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소설은 당대의 정치사회적 질서를 조명하거나 해서 후궁으로서 또는 여황제로서의 치적(治績)을 열거하는 식의 역사를 이야기로 재탕하는 진부함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오직‘무조(武曌)’라는 한 여인의 권력에 대한 욕망과 성취, 그리고 이를 위해 잔혹함이나 악의 경계를 뛰어넘는 그 집요한 탐욕의 본성에 천착하고 있다. 그래서 인륜과 도덕을 초월하고 생명이나 신의(信義)조차 하잘것없게 만들어 버리는 권력의 갈망이 뿜어내는 소름끼치는 한 여인의 욕망을 쫓아가는 눈길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측천무후’의 지아비였던 당태종 이세민이나 당고종은 우리 역사와는 악연의 인물들이다. 3차례에 걸친 여당(麗唐)전쟁으로 끝내 고구려가 멸망의 길로 들어섰으니, 이 여인네가 암약하던 시절에 그리 여유로운 시선을 보내기는 수월치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무조의 폭정에 대항하던‘장손무기’나 당대의 원로대신‘저수량’, 시중‘한원’,중서령‘내제’와 같은 인물들을 소설 속에서 접하면‘안시성 전투’의 낯익은 인물들인 이들의 전후(戰後) 입지를 살펴보는 흥미로운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시대적으로 우리에게는 커다란 역사적 시련이요, 전환기에 벌어지던 이웃의 이야기다보니 색다른 관점이 자꾸 들어서서 읽기를 방해당하기도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기도 하다.  

어쨌든 소설은 무(武)씨 성을 가진‘미랑’이란 여인네의 불가능해보이기만 하던 권력의 정상에 이르는 기막힌 여정을 안내한다. 종4품 재인(才人)으로 권력에는 한참 먼 거리에 있는 당태종의 수많은 후궁중의 한 여인에 불과하였으며, “새 날이 밝는 건 어제의 죽음을 뜻했고, 적막한 하루가 또 바람처럼 그녀 청춘의 싱싱한 이파리 한 잎을 거두어” 가는 것을 안타까워 할 만큼 잊혀지고 말 운명의 평범한 인생 이상이 아니었다.

태종이 죽자 선왕의 후궁들은 절에 귀의하여 여생을 마치는 것이 당시의 법도였던 모양이다. 무조 역시 비구니가 되어 여타 후궁들과 마찬가지로 옛 황제(태종)의 혼령과 함께 독경이나 외는 삶의 운명만이 남아있었으나 이 여인네는 태종의 아들 고종을 열락의 기억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만큼의 房中術로 사로잡는 장기를 지녔던 듯하다. 특히 화자(話者)의 인칭이 마구 변하는 것도 이 소설의 특징이랄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아버지와 아들에 걸쳐 색공(色供)을 벌이는 반인륜적인 행위를 어미인 무조에게 살해당한 비운의 첫째 아들 태자 홍의 목소리로 들려주어 그 섬뜩함과 당혹스러움을 배가시키기도 한다.

자신의 의지에 반하면, 혹은 권력의 길에 장애가 되면, 또한 권력쟁취의 수단을 위해서라면 자식의 살해도 서슴지 않는 무조를 보면 자신이 의도한 목적의 달성을 위해, 달리 말하면 자신의 의도를 현실로 바꾸고 그것을 지속시키기 위해 요구되는 근본적인 힘이라 불리는 권력의 중독성은 가히 잔인함이라는 언어를 초월하는 것만 같다. 고종의 황후 왕씨를 제거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살해하곤 누명을 씌우거나, 태자에 오르는 아들들의 작은 저항만 있어도 바로 사지로 몰아넣는 어미의 모습은 권력에 대한 무서운 집착을 그대로 대변한다. 결국 고종과 자신의 자식들인 이(李)씨들을 몰아내고 무(武)씨의 왕조를 세우려는 이 여인의 권력에 대한 욕망을 쫓다보면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난다.

이처럼 측천무후라는 여인은 바로“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도박판에 누구라도, 그 무엇이라도 내 걸 수 있는 사람”으로 그려지지만, 자신의 여성성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여인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신하들의 충직한 간언은 때때로 곱게 화장한 여인이 베갯머리에서 속삭인 한마디에 미치지 못했다.”는 말처럼 아마 그 유명한‘베갯머리송사’는 예서 유래한 모양이다.

이 밖에 이 소설은 흥미로운 사실들을 무수히 전해주고 있는데, 혹리(酷吏)로 유명한‘내준신’같은 자들의 등용과정이나 이 자가 개발하여 후대에 이용된 각종 형틀과 고문기술에서부터,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기술과 요령집인 희대의 기서인‘나직경(羅織經)’의 존재를 보면 측천무후가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어느 정도의 권모술수와 공포정치를 구사하였는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게다가 말년에“특별한 약 한 첩 마냥”선물로 바쳐진‘훗날‘설회의’라는 불리는‘풍소보’라는 사내나, 미소년 장창종 형제와의 성희(性戱)는 권력에 심취하여 궁극에는 몰락하고 마는 반복되는 역사의 경험을 노후한 여황제의 그것에서조차 동일하게 발견케 한다. 후궁으로서, 여인네로서 겪어야만 했던 젊은 시절의 모든 비애와 원망을 마음껏 토해내기 위해, 혹여 이처럼 비운 속에 시들어버린 당대의 꽃들에 대한 보상을 위해 벌인 집착이었을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여인도 마침내 세월의 풍파는 견뎌내지 못하고 한 낯 휘몰아치는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고 마니 엄청난 피의 강과 인륜의 파괴위에 선 권력의 영화란 것도 부질없는 것이기는 매 한가지 아닌가?

잔혹한 권력의 속성을 한 여인네의 일생에 담아 담담하고 우아한 필치로 그려낸 역작이다. 7세기 동아시아의 한 궁궐에서 펼쳐지는 이채롭고 내밀한 권력을 향한 암투의 세계를 오늘의 시선으로 새롭게 해석해보는 흥미로움이 있다. “내가 죽이지 못할 자가 없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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