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매치기’란, 타인의 금품을 교묘하게 훔치는 특수 절도행위다. 이 비열함 가득하고 흉포한 범죄행위의 일본말‘쓰리(陶摸)’를 제목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만으로도 역설적이게도 야릇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처럼 가히 천부적이라 할 밖에 없는 소매치기의 서슴없는 절도행위에 감탄을 연발 해대는 것을 보면 웃기는 얘기지만‘예술’이란 말을 절로 흘러나오게 한다.

거침없이 반복되는 프로소매치기인 주인공‘니시무라’의 소매치기 행위에서 알 수 없는 짜릿한 희열을 강요받기도 하지만, 이러한 행위보다는 그의 내면의 목소리들, 바로 심리(心理)를 들여다보고, 집단의 힘에 의해 버려진 자의 음울한 고독에 귀 기울이게 하는 암묵적 서사에 오히려 매료된다.
“결코 가 닿을 수 없다고 생각될 만큼” 멀고 아름다운 탑, 언제나 흐릿하고, 윤곽이 애매한, 오래된 백일몽 같은 탑을 그리는 청년의 몽롱한 이상향 때문에 괜스레 동류의식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네들 대개가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고립감과 무기력, 그리고 숙명적 체념에 휘둘리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자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집단을 거부하고 건전함과 환함을 거부했다. 내 주위를 높은 벽으로 에워싸고 인생에 생겨난 어둠의 틈새에 들어가듯이 살아왔다.”는 가치 부정의 의식은 우리들이 무심코 저지르는 타인에 대한 폭력이 한 인간의 삶을 얼마나 훼손시키는지를 대변한다. 부유한 자들의 지갑만을 빼내는 행위가 범죄를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그 빼낸 돈이 어제의 소유자를 알 수 없듯이“돈은 각자 인생의 순간순간을 지켜보고 있는 거”라는 자연의 순리에 이르면 초월적인 진실로 이해 될 수도 있다. 사실 거짓을 몸에 두르고 그 거짓으로 주위에 녹아들어 의심을 해체시키는 소매치기의 생존술은 여느 인간들의 삶의 방식과 그리 다른 것은 아닐 것이다. 주인공 니시무라의 쓰리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 의식의 빈틈을 헤집는 고도의 총체적 심리전술임을 알게 된다. 그러니 여기엔 세상에 대한 비웃음, 조롱을 이미 내재하고 있고, 손을 뻗칠 때의 그 긴장감 속에서만 자유로워질 것 같은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소설이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한 쓰리꾼의 내면을 시종 쫓아가게 하는 힘은 거대한 운명의 힘처럼 작용하는 악마의 화신으로 등장하는‘기자키’라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피살되는 여러 인간에게서 그네들의 감정이 동시에 침입해 들어오는 기운을 즐기고, 세상의 왜곡된 구조를 악용하는 규모를 알 수 없는 범죄의 분신과 마주할 때, 그 미지의 공포는 삶을 더욱 황폐하게 가속화시킬 것이다. 버림받아 의존할 곳 없는 아이의 목숨을 담보로 한 악마의 요구, 천재 소매치기에게 주어진 세 가지 과제의 해결은 피 할 수 없는 게임이 된다.
불합리한 것들로 구성된 게임, 이것이 바로 세상의 구조라 말하는 기자키와의 대결은 죽음의 공포를 초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선(善)을 잊어서는 결코 악(惡)에 물들 수 없다는 악마의 이 모순적 명제는 진실일까?

온 힘을 다해 오백엔짜리 동전을 튕겨 올리는 니시무라의 세상을 향한 마지막 구원의 행위는 인상 깊은 장면이 되어 각인된다. 소매치기라는 범죄행위의 거북한 소재가 더 할 수 없는 매혹적 소재로 둔갑하고, 여기에 현대인의 고립과 소외, 그리고 운명의 부조리에 대한 숙명적 저항을 물리기 어려울 정도의 흥미와 긴장으로 이끄는 스토리의 구성으로 매료시키는 작가의 역량에 그저 찬사를 연발케 된다. “반사회적 존재에 호감”을 느낀다는 작가의 양해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세상에 대한 불쾌한 반감과 교감하는 이 저작을 그리 쉽게 물리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바로 그 존재의 한 면에 우리네 모습도 도사리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