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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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묘사하는 이야기들 속의 사람들, 사건들은 어지간한 주의력을 가졌다면 그리 낯 선 것들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압축적인 서사로 일그러질 대로 구겨진 한국인들과 한국사회의 민 낯짝을 전체적인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은 아마도 처음이리라. 사실 우린 누구도 이 사회를 지탱하는 성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1945년 해방과 1948년 남한 단독의 절름발이 정부수립이후부터 오로지 비열함, 후안무치, 파렴치함, 야합, 폭력, 부조리, 부패, 탐욕, 모리배, 위선, 기만 등 온통 네거티브한 언어로 밖에 표현되지 못하는 이 사회의 일정한 습관과 기억이 60여 년간 체화되어 온통 개인들의 인식과 행동에까지 기이한 성향과 코드를 형성하여왔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열악한 가정환경으로부터 시작된 생존을 향한‘박선녀’란, 한 여인네의 삶의 파노라마가 어둠의 문화, 폭력과의 동거, 그리고 물질을 향한 쾌락과 거부(巨富)의 아낙으로, 바로 그 거부의 물질적 상징인 건물 잔해에 깔리기까지 쉴 새 없이 흘러간다. 그 어디보다 본성과 욕망이 절제되지 않는 곳, 룸살롱과 권력과 돈과 폭력은 우리시대를 설명하는 정말 잘 어울리는 기호들이다.
그래서‘강남’으로 표상되는 천박한 구별짓기의 계급화 된 이 언어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전수되어왔는지, 개인들의 사고와 행동의 도식이 되어왔는지에 대한 이 현대사 읽기는 그 치부로 내내 얼굴을 화끈거리게 한다.

살기 위해서 일제의 밀정을 하고, 세상 흐름의 판세를 읽어낼 정도의 영악함으로 미군정의 정보원이 되어 권력의 본성을 터득하고 그에 야합하며, 이를 위해 선악의 도덕율이 무시되는 정치세계의 잔혹한 현실을 떠받치는 또 한사람의 주인공‘김진’이란 인물을 통해 물신주의와 지배권력의 실체를 따라가고, 폭력배들이 벌이는 탐욕과 정치의 공생, 배반, 그리고 피폐한 도시서민의 실상을 철거민의 고통을 통해 이 사회의 비뚤어진 습관을 대표하는 정치권력의 비열한 속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세간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어떤 대형 사건이 터지면 온갖 정보와 잡다한 기록들이 일제히 모여들어 그 어느 시간보다 풍부한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낸다. 아마 평상시에는 은폐되거나 견뎌내던 것들이 일시에 폭발하여 그 드러나지 않았던 진실, 바로 민중과 사회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여운형, 김구의 살해사건, 공산주의자 박정희 전향과 제주 4.3 양민학살사건, 군부의 쿠데타와 군사독재의 지리한 전체주의 시대, 이를 마무리하기라도 하듯이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 개발독재시대의 산물이 우수수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60여년의 짧은 기간동안‘압축적’이라고 표현할 밖에 없는 한국의 현대사를 과연 황석영이니 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엑기스만을 건져낸 역사적 통찰력은 맛깔나는 스토리에 버무려져 시간가는 줄 모르게 주인공들의 삶과 알록달록한 세상의 거친 속살에 빠져들게 한다. 정말 꿈결같이 흘러온 60년이다. 그러나 이 시간은 작품의 전체가 시사하는 도식이‘강남’과 같은 계급적 질서가 재생산될 정도로 우리 사회의 익숙한 기능이 되어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어찌 자고 일어나니 꿈이더라는 것과 같이 허망하다는 한마디에 담아 낼 수 있겠는가?

비록 하나의 문학작품이 하는 이야기지만 우리들이 발을 딛고 있는 이사회의 발판이 얼마나 취약하고 무르고 부실한 것인지, 그리고 개인들의 사유를 지배하고 있는 한국 현대사의 네거티브를 다시금 반성하고 확인하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신뢰가 넘치는 건강하고 견고한 사회를 위해 우린 우리의 체제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의미에서 소설 『강남夢』은 뒤틀려온 현대 한국사회의 독특한 병리현상과 정치변동의 흐름을 분석하여 우리사회의 현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실천도구이자 새로운 패러다임을 생각게 하는 출발점이라 하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정신없이 빠르게 스쳐가는 그 응축된 역사의 서사를 질주하듯이 따라가느라 가빠진 호흡을 이제야 내려놓는다. 가히 현대사의 한 구간을 정리하는 압도적 소설이라 명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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