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순박한 농촌마을이 주사바늘이란 탐욕의 얼굴에 무참하게 스러져 간다. 채혈(採血)을 위한 매개체인 주사바늘이란 물질에 인간 탐욕의 죄를 물을 수도 없으며, 그 목적인‘피’를 황폐해진 텅 빈 마을의 원인이라 할 수도 없다. 비록 주사바늘이 사람들의 살갗을 뚫어 피를 빼내기 시작했을 때, 이미 인간들의 패배는 예정된 것이었지만 보다 본질적인 것은 인간의 혈액이 한낱 상품, 사고파는 거래대상으로 변질된 것에 있을 것이다.

물질지상의 자본주의체제가 인간까지 사물화한 것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폐쇄되어 있던 중국 사회에 거침없이 밀어닥치는 서구 물질문명의 화려함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농촌사회는 분출되는 욕구를 억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득원이 부실한 빈곤한 농촌사회의 현대화를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지방정부는 매혈(買血)을 통한 소득을 부추긴다. 여기엔 오직 물질에 대한 욕망만이 있을 뿐, 인간 존엄성의 인식과 같은 도덕적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정과 부패만 성화를 댈 뿐 공공성에 확보되어야 할 양심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약삭빠른 인물들은 채혈소를 차리고 어수룩한 농민들의 피를 사들이기 시작하고, 피를 팔아 받은 돈은 사람들을 물질숭배와 과시적 소비에 휘둘리게 한다. 마을의 초가집은 벽돌집으로 바뀌고, 황톳길은 시멘트 포장로로 변화한다. 채혈소를 운영하여 폭리를 취한 자들과 마치 밑천 없이 벌어들인 것 만 같은 재화에 현혹된 사람들은 매혈을 통해 모방소비와 소비의 한계를 늘려나간다.  

부의 축재에 열을 올리는 인간들에게 위생이라는 보건 안전망과 같은 인간에 대한 배려는 존재치 않는다. 이러한 상황은 이유 없는 열병으로 마을 사람들을 몰아넣고, 감기와 같은 미열을 동반한 증세는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로 밝혀진다. 마을은 집단 패닉상태에 빠진다. 너나 할 것 없이 매혈을 통해 부를 확보했던 마을 사람들을 공포의 죽음으로 이끈 매혈사업은 더 이상 지속가능 사업이 되지 못한다. 소설은 딩씨마을(丁壯)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하는‘딩선생(할아버지)’과, 사람들을 꾀어 매혈로 부를 축재한 부도덕한 파렴치한인 그의 큰 아들‘딩후이’를 대립시켜 도덕적 책임을 묻고 있지만 엄청난 파괴의 힘으로 밀어닥친 물질주의에 대한 마을사람들인 일반대중의 탐욕이란 본성역시 책임을 회피하기는 어렵게 보인다.

한편 흥미롭다하여할지는 모르겠으나 열병 환자들이 학교로 모여들어 집단생활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자본주의의 무차별적 사물화와 부의 차별성이 지니고 있는 악덕에 반(反)하여 공동 갹출과 노동의 형평성 등 공동생활을 위한 평등주의의 묘사를 통해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 일종의 회귀를 그리고 있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가 폭로하고자 하는 것은 물질이 파괴하는 인간성에 있다. 마을의 리더인 딩선생을 축출하고 촌의 주임으로 행세하는 사람들과 이에 부응하는 마을사람들의 의기투합은 학교의 기물을 개인의 소유로 분배하고, 나아가서는 죽어가는 자, 죽은 자들을 위한 관(棺)을 마련한다는 명분으로 고목들을 무차별적으로 베어내는 행태에서 물질에 숨겨진 소유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열병으로 죽은 자들에게 현(縣)정부가 무상으로 공급하는 관을 빼돌려 판매하는 딩선생의 아들 딩후이라는 인물, 즉 부패한 정부 관리, 권력에 대한 반발이자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이해가 있을 수 있으나, 작가는 이 들 양자에게 공히 부도덕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생태계의 무참한 훼손, 교육현장의 파손이라는 정신의 상실...

그러함에도‘피를 판다’라는 시작에서부터 이 소설은 인간의 생명, 즉 죽음을 담보로 하는 이 무서운 물질주의의 망령에 대해 맹공을 가한다. 무상 공급되는 관, 다시 말해 죽음에 대해 주어지는 보상까지 가로채는 파렴치함, 그리고는 에이즈로 죽은 미혼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음혼(陰婚:영혼결혼)을 부의 축재에 이용하는데 이르는 자본주의 물화의 대상은 대체 어디까지인가? 하는 물음과 같다. 결국 비속(卑屬)살인이라는 비극에까지 이르며, 정의의 심판을 내리기까지 하지만 이미 마을에 인적은 사라지고 폐허만 쓸쓸하게 남아 스스로들을 사라지게 한 탐욕의 자취만 황량하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자신의 생명으로 썼다고 하는 이 작품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통한의 절망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전작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 이어 이 역시 판금(販禁)된 소설이 되는 운명을 맞이하였다니 작가의 목숨을 건 집필의 처절함이 더욱 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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