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 뒤에 있었어
니콜라 파르그 지음, 이혜원 옮김 / 뮤진트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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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느낌을 뭐라 말해야 할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쓴 유일한 소설이라고 작가가 말했듯이 감정의 미세한 흐름들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는 화자에게서 삶의 민낯 그대로를 보게 된다. 사랑하고 질투에 분노하며, 비참한 굴욕감에 몸을 떨다가, 또 다른 성적욕망에 행복과 불안으로 갈등하는 남자가 있다. 사실 소설의 테마만 놓고 보면‘사랑과 이별’이라고 단순하게 정의할 밖에 없지만 일상의 사건에서 부딪는 순간순간들의 감정에 대한 찬란한 묘사와 자기 행복을 꿈꾸는 인간들 본연의 욕구에 대한 숨김없는 발설, 남편과 아내의 관계성에 대해 수없이 반복되는 이해와 갈등, 그리고 사랑에 대한 오해와 균형을 상실한 관계의 비대칭성이 가져오는 고통 등이 내면의 서사라는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의 맛으로 진부함을 완전히 참신함으로 뒤바꾸어 놓는다.

화자(話者)인 30대 남자가 쏟아내는 처연해 보일정도의 세세한 내면의 이야기들이 얼마나 숨을 가쁘게 하는지, 자신에 대한 엄숙한 비판인가하면 어느덧 아내‘알렉상드린’의 일방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의 결함을 우회하고 있고, 필요이상으로 아내에게 무력감을 보이며 자기의 삶을 희생하는 남자인가 하면 스물일곱 남자로 변하여 자유와 사랑의 열정에 휩싸인 자신감 넘치는 남성을 희구하는 것처럼, 그 감정의 오르내림으로 멀미가 날 정도이다.

“잠자리를 할 마음도 없는 여자” 때문에 아내에게 헤어지자고 불쑥 내뱉은 고백으로 전깃줄에 상처가 나도록 얼굴을 맞고는 비열한 위협으로 죄스럽기 짝이 없는 짓을 한 자신이기에 아내의 감당해야하는 고통을 위해서라도 철저하게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야 했다는 남자의 말은 과연 진실일까? 자기의 비굴할 정도의 희생은‘마조히즘의 극치’였다고 말하는 남자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남편을 자기마음대로 부릴 수 있으며, 일방적 감정을 강요하는 아내, 항상 화를 내는 폭력적 아내에 대한 잠재의식 속의 반란이었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화자는 한 달 반 동안 쉬지도 않고 신뢰를 손상한 대가를 치르지만 필요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아내에 대한 적의로 고통을 받는다.

한편 소설의 중요한 두 사건인 아내가 태연히 저지르는 성적 일탈과 화자의 이탈리아 로만체에서의 2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발생한‘알리스’라는 여성과의 사랑이야기로부터 파생하는 심리적 파동의 섬세한 묘사는 바로 이 작품의 탁월함 그 자체로서, 아마 이러함이 소설을 풍요롭게 하고 공감을 일으키게 하는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남자와 성적탐닉에 빠져버린 아내의 수첩을 우연히 읽고 반응하는 화자의 절망적인 감정의 흐름은 그야말로 문장의 진수이다.

“나아닌 다른 몸을 향한 사랑의 말을 읽고 또 읽었어. ~ 나는 그 글을 읽는 바로 그 순간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줄 알았지. ~ 중략 ~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가 아무 차에나 뛰어들 수도 있다는...”
“그녀는 나 없이 정욕의 역사, 일시적인 열정의 역사를 체험한 거야. ~ 그 자식의 완벽한 육체와 무심함에 홀딱 반했지.”

이렇듯 배신의 고통으로 몸을 떨면서도 아내의 성적 욕망은 부부의 사랑, 가정의 존속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자신을 위로한다. 더구나 아내와 헤어지자고 한 비열한 남자로서 당연히 감수하여야 할 문제로 말이다. 그럼에도“그놈의 호텔방에서 섹스 할 때 쏟아냈을 그녀의 거친 숨소리”를 상상하며 괴로워하는 화자에게서 제도와 윤리, 그리고 개인의 행복에 대한 끊임없이 소모적인 충돌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의 알리스라는 여성과의 운명적 만남이 남자의 삶에서 어떠한 의미였는지를 알아가는 것은 사랑, 성적욕망에 대한 중요한 이해가 된다. ‘로맹가리(에밀 아자르)’의 아내기도 했던‘진 세버그(Jean Seberg)'처럼 윤곽이 또렷하며, “르네상스 시대 그림에 나오는 금발의 라틴계 마돈나”라고 묘사되는 여자, 알리스로부터 비로소 알게 되는 사랑의 희열, 행복과 삶의 자유에 대한 이해이다. 작품의 표제인‘난 네 뒤에 있었어(Ero dietro di te)’는 바로 이들 만남의 표상이기도 하다.

“꿈결과도 같은 구원의 이 늦여름 햇살, 내 마음을 달래주고,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이 햇살, 이 자유의 빛, 정지된 시간, 제 빛을 되찾은 색채, 완벽하리만치 온화한 대기, 매혹적으로 전개되는 일들...”

같은 순간에 자신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거나 이해할 수 있는 미지의 여자를 어디선가 만난다면 그 행복을 구체화 시킬 수 있을 거라고. 바로 알리스가 그런 여자라고. 행복은 그런 여자. '랭보‘의 「감각」이라는 詩의“여자와 함께 할 때처럼 행복하다”는 바로 그런 감정. 소설 속 길게 나열되는 사랑의 산문시 같은 문장들에서 만사를 잠시 잊고 문득 언젠가 느꼈던 것만 같은 늦여름 아침의 나른한 햇살이 그리워지고 좋아지게 된다.

자신의 비정상적이고 공격적인 감정에 순응하며 희생하는 남편, 배려하는 남자에 대한 일종의 중독증을 사랑으로 오해하는 여자와 이러한 기만적인 감정으로 심적 고통과 삶의 균형을 잃어가는 남자의 내면이 다양한 일상의 모습에서 그려진다. 결국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주고 같은 사랑을 원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는 여자에 대한 로망은 남자에게 자신을 생각할 권리, 삶의 본질적 자유를 환기시켜준다. 남편의 감정을 지배하려는 아내의 굴레를 벗어나 프랑스에서 연인이 있는 이탈리아를 향해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남자, 그리곤 5일간의 꿈결 같은 열애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남자의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그의 시선에 비친 제야의 불꽃에서 왠지 심각하고 복잡한 인생이란 벗어던질 수 없는 무엇이 있는 것처럼 아득함이 느껴진다. “경쾌함에 대한 작은 환상”이라고 치부하면서, 더구나 “각자가 지닌 비밀의 정원 속에 감추어진 멋진 추억”정도로 묻어두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여자와 평생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이 작품은 이렇듯 사랑했으며, 그리고 결혼하여 아이를 두고 가정을 이루고 있는 우리네들 모두에게 항상 반복되는 질문에 대한 사유이기도 할 것이다. “햇살이 적당하고 만사가 순조롭다고 억지를 부리지 않을 때, 그 순간이 바로 행복”인데, 바로 그 햇살의 기억이 흐리멍덩하기만 하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한 무능한 남자의 고백을 읽고 가슴이 뭉클하고 시린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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