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주의보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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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낯설지 않은 인물들, 뭔가 지나친 일과는 거리가 먼 우리들의 지극히 평범한 얼굴들, 바로‘나’들을 만나는 것만 같다. 그래서 수록된 작품들에서 근자의 자극성 짙은 젊은 작가들의 그것과는 다른 어떤 안식과 안도 그리고 가을 햇살이 튀어 오르는 잔잔한 호수의 물결 같은 마음의 진정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 칼날 같은 비평가의 시선이 요구될 여지가 없다. 윤대녕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내 기억이고 나의 삶들이어서 긴장감을 상실한 채 나의 내면이 되어 가슴이 먹먹해져 올 뿐이다. 그렇다. 작품들은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바람이 불고 있어 아프고, 하릴없이 그 바람 맞으며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이 있어 아리다.”아마 마지막 수록작인 <여름, 여행>의 話者가 “가슴 속에서 무언가 뭉텅 빠져나간”,‘밀물 같은 그리움’을 되뇌는 심정과 같은 것이리라.

작품 속 인물들을 따라가다 나는 가만히 나의 기억들을 쫓는다. 아득히 돌아서 마주하는 그리움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고 내 일처럼 고개를 끄덕이게 하던 <대설주의보>의 윤수와 해선에게서, 지나간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동대문 뒷길의 화랑과 아련한 한 장의 사진을 떠올리게 하는 <풀밭위의 점심>에서 평론가의 말처럼 “삶의 온갖 휘장을 걷어내고 난 뒤에 남는” 나의‘맨 얼굴’을 보게 된다.
익숙한 삶의 심리적 동요와 갈등들, 은폐되고 드러내지 못했던 그 감정의 찌꺼기들, 감히 표현되지 못했던 아련한 일상의 관계들이 애잔하게 떠돈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7편의 작품들 모두에서 진정한 원형의 사람, 삶을 구성하는 그 시시해 보이기만 하는 일상성의 진실을 읽으며, 우리 사람들의 삶을 표상하는 수많은 소설 작품들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가까이의 나와 우리를 느끼게 하는 작품은 흔치 않았다는 생각을 갖는다.
한 남자의 情婦로서의 삶을 끊어내기 위해 자해에 가까운 단절의 의식을 치루는 <보리>의 주인공, 수경의 안간 힘에서, “여름 한 낮 햇빛에 뜨겁게 타고 있는 빈 마당을”을 바라보며, 견디기 힘든 시원적 고독의 통증을 앓는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의 인물들에서 여리고, 다치기 쉬운 인간 본원의 아릿한 유대의 고통을 느낀다.

알고 있지만 비켜가던 사람들의 민낯으로 드러난 비릿한 자기연민의 사연들은, “알고 보면 서로 사정이 똑같더이다.”가 된다. 어느 한 계절이 다가 올 때면 애써 자신을 감추고 무덤덤한 낯 선 이야기만 하다 돌아서왔던 그녀에게 지금이라도 달려가고 싶고, “마음의 불이 식어가는”그래서 “나이 들어가는 남자의 떨림과 만성적 피로와 허무함”을 달래던 오랜 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도 불현 듯 가슴 가득히 그리움과 함께 몰려온다. 이별도, 해후도, 용서도, 미처 챙기지 못한 결백의 양심도, 외로움과 그리움까지도 정말의 우리의 감성과 우리의 문체로 다가온다.

우리의 지명(地名)들, 그 산하(山河)에 내린 눈과 비와 햇살을 오롯이 품고 있는 익숙한 자연의 모습들, 그 자연을 닮은 사람들, 바로 우리문학 고유의 애상과 서정성을 물씬 담고 있는 윤대녕의 이 소설집은 그대로 나와 우리와 일체가 되고, 허무와 공허, 잔인해 보이기만 하는 삶을 어루만져 준다.
한편의 이야기와 나의 회상을 반복하며 어느덧 7편을 끝낼 때의 그 휘감아 도는 적요한 느낌이 모처럼의 차분한 진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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