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알베르토 모랄레스 아후벨 그림 / 열린책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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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회(老獪)한 사제(司祭)가 양심의 목소리(늙다리 청년을 상징)에 저항하여 짐짓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였다고 자신을 정당화 해줄 기억들을 술회하는 독백이 흐른다. 이러하다보니 시인이자, 평론가이고 신부(神父)인‘세바스티안 우루티아 라크루아’의 천연덕스러운 회고는 허위의식으로 그득한 채 이야기들 모두가 조롱거리가 되고 만다. 작가의 이 역설적인 독해의 기대는 그의 의도만큼이나 그대로 전달된다. 즉, 자신만은 고고하고 지적이며 책임을 다하는 성인이라 자부하지만 고상한 척 술회하는 일화와 행동에서는 비겁함과 무관심, 기회주의적인 원숭이임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주인공인 세바스티안 신부의 야심은 당대의 명망있는 문학평론가‘페어웰’과의 대화에서 처음 드러나는데, “그가 열어 놓은 길을 가고 싶고, 책을 읽고 감상을 큰 목소리로 멋들어지게 표현하는 것이 이 세상 제일가는 소망”이라며, 탄탄한 줄을 잡고 편승하여 세속적 명성을 지향하는 탐욕스런 본색이 그것이다. 사제복과 일반적 사복을 교묘하게 입는 그의 무의식적 행위 역시 사람을 대하는 지극히 상업적으로 세련된 태도를 읽게 한다. 
이는 소설적 배경인 당시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 반하는 사회주의정권인‘아옌데’정부를 붕괴시키기 위해 사주된 군부쿠데타를 통한 피노체트 독재정권기의 침묵하거나 권력에 편승하여 사적 평화에 안주하는 소위 지식인들에 대한 허위의식의 까발림이라 할 수 있다.

소설 첫 머리에 주인공이 “나의 침묵은 티 하나 없다.”라고 주장하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이는 지주와 보수 기득권 세력들이 끊임없이 정부의 주요 인사를 암살하고 위협을 가하여 마침내 대통령을 죽음(자살)으로 내모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고전이나 읽고 지식인으로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 침묵의 일관과 구역질나도록 몰염치한 자기기만을 목격하게 한다.
“대통령이 자살하고, 모든 것이 끝났다. ~ 참 평화롭군, ~ 정말 조용하군, 하늘은 파랬다.”는 것이 소위 지식인의 감상 전부였다.

특히, 이 작품을 구성하는 두 개의 커다란 사건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피노체트를 비롯한‘군사평의회’를 위해 마르크스주의 비밀강연 -“칠레의 적들(민중)을 이해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그들이 어디까지 갈 작정인지 짐작하기 위해서”- 을 맡아 권력의 지원을 받는 주인공의 행위와, 정치범을 고문하는 사택으로 위장한 정보요원의 저택에서 공허한 문학의 허영에 합세한 지식인들이 벌이는 파티, 정보요원의 아내로서 문단에 발을 걸친 여성작가 ‘마리아 카날레스’의 몰염치와 사악한 반사회적 행위를 들 수 있는데, 이는 과연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자신의 피노체트 정권을 위한 봉사가 산티아고 전체에 파다하게 퍼지자, 동료들과 대중들로부터의 비난을 걱정하지만 어느 누구의 눈곱만한 관심도 없음에 오히려 “어안이 벙벙했다.”고 술회하는 주인공에서 근심의 본질은 도덕적 양심이 아니라 명예의 손상에 있었음을 보게 된다. 더구나 이러한 사람이 훗날 정권이 바뀌자 마리아 카날레스의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 비난을 하는 모습은 몰염치하기까지 하다. 여기에 더해 카날레스의 저택에서 파티를 즐겼던 작가는 카날레스가 누인지 모른다고 발뺌하는 회피를 “해결책이 있을까?”하고 온통 사회의 비양심과 도덕적 해이를 고민하는 지식인의 모습으로 자신을 비추는 자가당착은 저열한 코미디가 된다.

나아가 독재 파쇼정권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희생의 시대와 그 뒤에 오는 건강한 성찰의 시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역사적 선견을 말하는 모습은 천박함과 추악의 모습 그자체이다.
피노체트 독재정권의 열렬한 정신적 지원역할을 수행한 카톨릭 사제조직인 ‘오푸스 데이(Opus Dei)'의 일원으로서 특히나 호모오푸스데이라고 자임하는 이 비열하고 허위의식으로 똘똘 뭉친 지식인의 모습은 바로 오늘의 우리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책 한 줄 안 읽는 엉터리 지식인들의 헛소리와 공명하는 듯하기만 하다.

한편 남미에서 신다다이즘을 주창하기도 했던 작가의 문단 영웅 물어뜯기도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포인트가 되는데, ‘네루다’나 ‘파스’에 대해 넌지시 뱉어내는 비평아닌 비평이 그것이다. 어쨌든 무결점의 삶을 살아왔다는 한 지식인의 항변으로 온통 비겁한 침묵이거나 천박한 기회주의이고 속빈 고상함이라는 허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소설이 칠레를 비롯한 남미 나라들의 갑갑하게 막혀있던 민중들의 가슴을 뻥 뚫어 주었으리라 믿는데 어려움이 없다. 아마 열광하고 또 열광 했으리라. ‘로베르토 볼라뇨’의 투사같은 혈기가 어느덧 전해져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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