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통기 - 그리스 신들의 계보
헤시오도스 지음, 김원익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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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8세기경 그리스 음유시인 ‘헤시오도스’가 쓴 『Theogonia ; 神統記』와 『Era kai Hemerai ; 노동과 나날』을 번역한 저술이다. 「신통기」라는 다소 이질적으로 보이는 제목을 선명하게 표현한다면 ‘그리스 신들의 가계도’라 할 수 있으며, 「노동과 나날」에서는 노동의 정의와 당시대의 정령숭배 및 터부, 자연과 인간 삶의 조화를 엿 볼 수 있다 하겠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들의 관계가 우리에게는 낯설고 그 의미의 전달이 쉬이 이루어지 않아 그네들의 문학, 예술, 철학 등의 고전을 읽다보면 곤혹감을 떨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차에 이 저작을 알게 된 것은 어쩜 내게는 광명이라 할 수 있기조차 하다. 대체 ‘제우스’라는 신은 어떻게 생긴 것이지? 그리고 그 많은 그리스 신들은 누구의 자식이란 말인가? 그리고 오이디푸스, 아킬레스, 휘페리온 하는 잘 알려진 영웅들은 누구의 자손이고, 신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정작 이들 신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궁금증이 끊이지를 않았으나, 이 저술은 이러한 의문들을 해소시켜준다.

“태초에는 카오스(혼돈)가 있고 그 다음에는 넓은 젖가슴을 지닌 가이아(대지)가 있었는데...”라고 세상의 생성을 말하는 이 저술의 시작부분은 바로 그리스의 신들이란 곧 우주생성의 각 요소임을 암시한다. 그 다음 타르타로스(지하세계)와 에로스가 차례로 생겨났다. 그러나 헤시오도스가 말하는 신들의 출생과 가계가 호메로스나 오비디우스와 달리 설명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바로 우주생성의 4요소로 태초에 등장하는 에로스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인 에로스가 그러하며, 또한 우라노스의 남근으로부터 태어났다는 아프로디테의 출생에 대한 다양한 충돌이 그것이다.
이처럼 신통기는 그리스 신들의 가계에 걸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지만, 서사의 커다란 줄기는 크로노스와 레아 사이에서 출생한 제우스가 폭군인 아버지와 적대적인 신들을 굴복시키고 우주의 전지전능한 신이 되었는가에 대한 권력의 쟁투와 그 속에 사리고 있는 정의로움의 승리에 대한 정신을 담고 있다 하겠다.

한편 이들 신들의 권력싸움에서 묘사되는 “온 땅이 지글지글 끓어올랐고 황량한 바다와 함께 오케아노스의 물결도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中略 ~ 먼지구름이 위로 솟아오르게 했으며...” 하는 부분에서 구약을 떠올리게 한다. 더구나 게토와 포르퀴스의 막내아들인 뱀의 출생과 “뱀은 대지의 어둠 속 깊은 곳, 광활한 대지의 끝에서 황금사과들을 지키고 있다.”는 내용이나, 노동과 나날에서 최초의 인간여성인 ‘판도라’의 창조도 제우스의 명령으로 헤파이스토스가 흙으로 빚어내는 모습은 서구신앙의 모태를 보는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최근 우리사회에 법과 판결의 공정성 시비가 분분한 가운데 정의의 여신 ‘디케’가 자주 거론되는데, 바로 제우스와 몸에 광채가 나는 여신 테미스의 여식임을 알게 되고, 에우노미아(질서), 에이레네(평화)와 자매라는 가족관계까지 터득케 된다.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트로이 전쟁의 기화가 되는 사건을 목격하게도 되는데, 그 유명한 트로이의 왕자인 ‘파리스의 심판’ 내용은 헤라와 아프로디테, 아테나 세 명의 여신이 서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는 갈등이었다니,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기(猜忌)의 역사는 실로 꽤나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이 저작의 두 번째 저술인 「노동과 나날」은 작자인 헤시오도스가 자신의 형제인 페르세스와의 재산으로 인한 재판을 화두로 하여, 선(善)으로서의 성실한 노동의 가치와 제우스신의 권능을 빌어 인간에게 모든 것 중 최고의 선은 ‘정의(正義)’ 라는 인간의 윤리와 정의로운 세계의 질서를 당시 노동의 근간인 농부의 지침서 형식을 빌려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헤시오도스의 지독한 여성혐오주의자로서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아마 최초의 여성인 ‘판도라’ 그자체가 악(惡)이라는 의미에서 더욱 그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21세기 식 추측도 해본다. 또한 여기서 헤시오도스는 인류의 다섯 시대를 설명하고 있는데, ‘영웅의 종족’으로 반신(半神)인 인류의 네 번째 종족에서 오이디푸스나 아킬레스를 발견하게 된다. 헬레나를 구하기 위한 트로이 전쟁에서 이들 영웅종족이 모두 죽게 됨으로써 오늘의 인류인 다섯 번째 종족인 철의 종족이 창조되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정의는 주먹에 있고 배려하는 마음은 없으며, 악한 자가 덕 있는 자를 헤치며 위증을 일삼는” 종족, 그래서 질투의 여신이 음험하고 증오심 가득한 시선으로 따라다니며 감시한다는 것은 이미 인간사회의 타락과 부조리가 오늘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스 신들의 계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은 이 헤시오도스의 신통기가 최초라 한다. 오디세우스나 일리아드, 그리스신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등을 통해 접했던 그리스 신들의 이해는 물론 철학과 자연문학의 효시로서의 인문학적 의미를 접하는 의미 있는 독서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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