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내 인생
주세페 쿨리키아 지음, 이현경 옮김 / 낭기열라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오늘 우리사회 청년들의 초상을 보는듯하여 가슴이 시큰거린다. 자동차회사 노동자로 노예같은 빠듯한 삶을 살아 온 아버지는 아들‘발테르’에게 출세라는 말을 담는다. 시도하면 계층을 뛰어넘을 것으로 생각하는 그 무지함과 우매함이란 바로 이 땅의 사람들만큼이나 안타깝다.
타락한 세상은 회복 불능의 상태에 이르러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보고 사는 것일까?하는 것은 주인공이 부딪는 사회의 다양한 부문에서 묘사된다.

군(軍)신체검사의 형식적 행위, 공익요원의 배치에 대한 행정의 늦장대응, 정부기관의 부조리한 구태와 자기입신만을 지향하는 속물들, 입학한 대학의 교수진과 학생들의 기만적인 위선의 행태, 매스컴과 광고의 소비지상의 과시적 행태의 끊임없는 부추김, 약자와 소위계층에 질시를 보내는 만연된 이기적 자본주의에 찌든 인간들, 부자의 무분별한 허영과 사치 등등 발테르가 겪는 세상에는 위안과 평온이 존재치 않는다. 1980년대의 이탈리아와 21세기 한국사회의 닮은꼴을 보게 된다.
이러한 세상에 냉소를 보내는 주인공은 결코 인간의“삶에 맞지 않게 만들어진 어떤 메커니즘에 떠밀려 공허감에 짓눌린 채로” 노동의 세계라 불리는 곳에서 “미래의 상어들과 한 책상에 앉는”것에는 눈곱만큼도 흥미를 갖지 못한다. 아니 인간의 자유의지를 구속시키는 이 후기산업사회의 타락에 참여 할 의사는 없다.

진정한 인간들과 흥미로운 무엇인가를 공부하려고 찾은 대학은 첫 번째 화재가 옷과 액세서리에 관한 이야기이고, 두 번째는 요트에 관한 이야기, 누구 옷장에 옷이 더 많은 지를 내기하는 고삐 풀린 경쟁심과 과시의 현장일 뿐이다. 성공과 출세라는 자본주의 질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떠나 찾아간 공익요원이 기숙할 수 있는 무료숙소는 “전등도 악취의 공격을 받은 듯”모든 것이 죽어있다.
“화장실로 가서 문을 열었다. 변기에는 뚜껑이 없었고, 똥으로 막혀있었다. 두 번째 칸을 열었다. 변기에는 뚜껑이 없었고, 똥으로 막혀있었다. 세 번째 칸을 열었다. 변기에는 뚜껑이 없었고,....”

“선거일이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사회는 항상 소수 기득권자들의 놀음에 불과하고, 중산층들은 어쭙잖은 재물을 놓칠까 전전긍긍한다. 돈이라는 신이 모든 전선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고, 텔레비전에서는 “멋진 자동차, 통장, 최신 유행의 의상, 간단히 말해 풍요로운 삶!”이란 헛소리만을 떠들어 댄다. 그리곤 “중요한 것은 카리스마, 매력, 최고의 외모, 성공에 대한 욕심”이라고 추켜세우며, 구인광고는 MBA이상 우대라는 조건을 달곤 세칭 일류대 출신, 초특급, 초일류 전문가만을 찾는다. 방문판매직 외에는 ‘발테르’가 찾아 갈 곳이 없다.
이제 기다리는 것은 “노동의 세계라 불리는 그 뒷간 같은 곳으로 튕겨져 나가, 조만간 겨우 먹고 살면서 자동차나 식기세척기 할부금을 빠듯하게 낼 수 있을 만큼의 월급에 자신을 파는”삶 뿐이다. 뼈 빠지게 일해 버는 몇 푼 안 되는 돈은 자신과 같은 노예들이 만드는 제품을 사는 데 다 써버리는, 그래서 “다시는 내게 되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를 무엇인가를 소모하곤”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참담한 현실만이 남아있다.

“절망에 빠진 낙오자가 되기 위해 태어났는지도 모른다”는 이 시니컬한 주인공, ‘발테르’의 얼굴은『시계태엽 오렌지』에 나오는 것처럼 비틀어져 있는‘알렉스’의 모습과 흡사하다. 내적인 공허를 외적인 수단인 소비로 고쳐질 수 있다고 거짓 약속을 하고, 필요가 없음에도 인식하지 못하고 욕망하는 조작된 욕구에 대체된 취약한 정서는 자기혐오를 보상하는 자기기만과 무자각의 불행으로 내 몰고 있다. 갈수록 양산되기만 하는 청년 실업의 증가와 이젠 극한적으로 벌어져만 가는 부의 편중, 여전히 성장과 성공만 외치는 무뇌한의 정권으로 우리의 자식들을 바로 쳐다볼 자긍심을 잃어만 간다. 눈부신 성공 같은 것이 자신에 대한 신뢰와 태연자약함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할 정도의 내적 동기로 충만한 열린 정신의 젊은이들이 투명하고 품위 있으며 공정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자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단순하고 직설적이며 조악하고 거칠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진중한 의지를 선사하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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