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플루엔자 (양장)
올리버 제임스 지음, 윤정숙 옮김 / 알마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들을 제치고 미국의 가치를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빼어난(?) 나라로 한국만한 나라가 없다. “욕구와 욕망을 만들어 내고 오래된 것과 낡은 것에 불만을 갖게 하는”그래서 소비와 시장의 힘이 인간의 각종 욕구를 채워 줄 수 있다는 신앙인 ‘이기적 자본주의(Selfish Capitalism)'에 경도되어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원하고, 자신의 가치를 성공, 잘 팔릴 가능성,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는 자신을 상품으로 인식하는 인간들로 가득 차 버린 기이하고 추한 사회의 형상을 하고 있다.
소비를 향한 무한한 열망, 상품의 빈번한 교체, 자신과 사회에 대한 무비판, 통찰력의 총체적인 부재, 소유가 자신을 더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 거라는 생각, 자신을 선전하고 광고하며, 소유물과 타인의 평가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는 상품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물질주의와 권위주의에 쪄들어 내적조화가 무언지도 모르는 시장형 인간들을 양산하는 무지한 사회, 바로 한국사회의 모습이다.

‘올리버 제임스’의 이 저술은 바로 이러한 소비지상주의가 지니고있는 '몰개인화(Depersonalization)'에 어떠한 자각도 없는 인간들이 걸려든 질병, ‘어플루엔자(affluenza)'에 대한 폐해와 이를 극복하고 해소키 위한 백신에 대한 처방전이라 할 수 있다. 삶의 목표는 돈, 소유, 명성, 외모에 있고, 이의 동기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과시하려는 그릇된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들의 허위와 무지, 불행한 욕망을 영국을 비롯한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영어권 국가들과 싱가포르, 중국, 덴마크, 러시아 등지의 상위계층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한 부자병의 실체와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결같이 어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들은 대조효과(Contrast)에 빠져들어 자신보다 뛰어난 대상과 비교하며, 돈과 소유욕, 그리고 외모와 명성이라는 가치에 집착하고 자신들보다 더 가졌거나 더 나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현상을 나타낸다. 친구나 연인을 고를 때는 사랑보다 외모와 부, 그들의 시장가치에, 그리고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원하고,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에 빠져있으며, 자극이 삶을 지배하는 상태에 놓여있어 주의력결핍행동장애(ADHD), 양극성장애(Bipolar Disorder), 자기애적인 인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등으로 정서적인 고통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유한 소수를 위해 부도덕하고 불평등하게 펼쳐지는 미국식 이기적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마케팅사회에 흡수되어 물질적 안락을 위해서는 어떤 인간적 희생도 무릅쓰는 불행한 시장형 인간들이 양산되고, 도달 할 수 없고 결코 채워 질 수 없는 욕망과 성공이라는 환상을 쫓는 이들의 어리석음과 고통이 다양한 양상으로 지면을 채우고 있다.

서점진열대를 채우고 있는 미국식 긍정의 심리학이 장밋빛 허상을 만들어내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생태학적 재앙이라 할 수 있는 헛소리에 경도된 성공지향의 인간들을 이용하여 가짜 행복을 촉진하고 인지행동 치료로 인위적 자존감을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산업의 부상에 일조케 하고 있다. 바이러스 목표(돈, 소유, 외모, 명성)와 바이러스 동기(과시와 認定)에 붙들려 있는 한 삶은 고통과 불만과 불행의 영속일 뿐일 것이다.
미국적 가치는 이기적 자본주의를 대전제로 하고 있다. 내적인 공허를 외적인 수단인 소비로 고쳐질 수 있다고 거짓 약속을 하고, 성공을 쫓는 시스템 속에 가둬놓곤 성공이란 것으로 늘 동기를 부여하게 한다. 그래서 필요가 없음에도 인식하지 못하고 욕망하는 조작된 욕구에 대체된 취약한 정서는 타인이 가진 것을 자신도 가져야 한다는 공허한 과시적 소비로 끊임없이 내몰린다. 온통‘과시’라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겠다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가치로 인해 여성인구 전체가 성형수술을 받는 기괴한 나라가 되어 거짓된 자아의 잠재적 문제점에만 치중하여 자기혐오를 보상하는 자기기만과 무자각의 불행한 무뇌한들로 가득 차게 한다. 이렇게 해서 소수의 상위계층들은 더욱 부자가 되고 권력을 독식한다.

“영국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국민에게 최대한의 부가 아닌 최대한의 행복을 주는 것이다.”라는 선언과는 달리 모든 인간들을 불행과 정신적 고통으로 내모는 성장, 성공, 부(富)와 같은 바이러스 목표에 매달리는 한국사회의 낙후되고 추악하며 이기적인 반(反)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근원적 수정과 가치 전환은 시급한 과제이다. 그래서 이 저작의 말미에 덴마크와 같이 어플루엔자가 침입하지 못한 사회주의체제까지는 아니지만 이타적 자본주의를 위한 현대사회의 새로운 이상을 제시하고 있다. 다분히 영국내의 특수성으로 인해 우리사회에는 지나치게 급진적이거나 조화롭지 못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정서적인 애착, 공동체, 효율성, 자치 등을 충족시키는 것을 목표로”하여, “당신의 욕망이 아닌 필요를 충족시켜라. 소유하지 말고 존재하라. 경쟁뿐 아니라 협동도 하라.”는 슬로건은 정서적 고통에 시달리는 한국의 시장형 인간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이제는 외부로부터 지속적인 지지를 얻고자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는 부서지기 쉬운 자존감에서 빠져나와 아름다움과 자기표현을 지지하는 진정한 내적 동기로 자신을 채워야 한다. 물질을 위해 노예처럼 일하는 오늘의 우리들, 시장형 인간들의 삶에는 무엇이 남아있나? 불안과 우울, 소외로 다시금 강박적인 소비에 몰리고 채울 길 없는 욕망을 위해 고통스러워 할 것인가? 환상의 세계를 꿈꾸며 삶을 낭비하는 것을 경고하는 엘리엇의 시(詩)로 마감하는 소비지상주의로 비뚤어진 현대인에 대한 신랄한 이 보고서는 오늘의 한국인, 우리들 모두에게 귀중한 거울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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