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라배마 송
질 르루아 지음, 임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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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피츠제랄드(F. Scott Fitzgerald)와 젤다 세이어(Zelda Sayre)부부의 광기는 1920~30년대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솟구치는 물질의 풍요와 쾌락을 대표하는 심볼로 잘 알려져 있다.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물질과 욕망에 압도되어 황폐해진 영혼들의 스러져가는 삶을 그려낸 작가이자 곧 그들의 인생 모습 또한 그러했으니 그 고통은 더욱 참혹했으리라.

『위대한 갯츠비』로 대표되는 스콧 피츠제랄드의 낭만주의적 이상과 현실사이의 간극에 좌절하는 당대의 허영과 위선으로 포장된 인물들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표상들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이러한 속물적 욕망에 시달리는 인간과 같은 시대의 조류 보다는 젤다라는 한 여인의 소멸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보기를 제안한다.

“글쓰기는 남자들의 일”이라는 의식이 지배하는 여전히 남성중심의 사회, 여성이란 남성의 명예와 부를 위해 악세사리처럼 따라붙는 부수적 존재로 인식되는 사회에서‘스콧’이라는 권력자인 남성의 시각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이자 착취의 대상자로서‘젤다’라는 여성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다분히 페미니스트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은 파멸해가는 당대의 인간들에게 단지 피할 수 없는 욕망의 대상정도로 그려지는 스콧 피츠제랄드식(式) 남성적 관점을 전면적으로 전복하고,“죽이 잘 맞는 추문 덩어리 동성 커플로 꾸며” 보이고, 대작가이자 남편의 성공과 욕망에 육체와 영혼이 모두 고갈되도록 착취당한 여자의 안타까운 항변의 회고록이다. 
 

유독 이 작품은 애착이 가게 되는데, 등장인물들이 유명세를 치룬 실재했던 사람들이 그대로 차용되어 작가의 픽션주장에도 불구하고 스타의 사생활을 엿보는 관음증적 욕구를 자극하고, 스콧의 작가적 역량에 의구심을 키워내 궁극적으로 스콧의 소설은 다름 아닌 젤다의 소설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는 독특한 마력을 지니고 있음에서이다. 특히, 젤다의 정신병원에서의 의사와의 대화나 회고의 장면은 스콧 피츠제랄드의 자전적 작품이라 할 수 있는『Tender is the night : 밤은 부드러워』와 대비되어 더욱 화자인 젤다의 주장에 미혹(迷惑)되게 한다.

세 딸을 둔 엄마 미니가 “세 군데 달아맨 조종 끈을 잡아당기며 인형극을 공연”하듯이 자신의 좌절한 희망을 보상하려 한 행위의 희생자로서, 또한 남편에게는 영원한 익살광대이자, 사랑스러운 광대, 웃음에 덮여진 광대, 분칠로 망가진 광대로서 남용되어야 했던 여자로서, 그리고 자신의 품에 안겨온 여자를 여왕으로 안아준 프랑스인 조종사 조즈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과 관능의 미련으로 평생을 그리움에 떨어야 했던 여자의 소용돌이 같은 삶의 기억들이 하나의 강이 되어 흐른다.

결혼이 두 이성의 사랑의 결합이 아니라, “광고 계약서에 서명”을 한 것처럼 자신을 감추고 세상의 광대로서, 스콧의 장난감으로 살아야 했던, 그래서 남김없이 남용당한 육체로 열망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끝내는‘뇌 백질 절제술’까지 받는 정신병자가 되어야 했던 음울한 한 여인의 삶이 시종 묵직하게 가슴을 억누른다.
미스 앨라배마이기도 했던 출중한 미모와 남부의 근엄한 명문가의 여식으로서 도덕적 엄숙주의를 일탈하고 삶의 탕진이라는 순수로의 회귀를 온 몸으로 실현하려했던 여인의 매혹적이지만 쓸쓸한 여운을 던지는 그러나 삶의 조연이었던 여자에게 주연의 자리를 들려준 신선한 작품이다.

“내 몸은 한줄기 강, 앨라배마라는 이름의 강이다. 내 몸 한가운데 삼각주가 펼쳐진다. 내 두 다리는 모빌만으로 뻗어나가 플레저(기쁨)라는 이름의 반도를 이룬다...” - 작품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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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2-08-05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리아님, 제가 생각했던 스콧과 젤더의 관계가 아니어서 충격적인데요. 이 책 곧 읽어야겠네요.

올리시는 리뷰글들이 어려워서 댓글을 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주 올께요.
이런 표현 실례가 아니라면, '심 봤다'를 외치고 싶네요. ^^

필리아 2012-08-07 16:02   좋아요 0 | URL
허구이긴 하지만 피츠제럴드의 작품들이 정작 젤다의 작품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할 정도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