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 - 21세기 위대한 투자신화의 탄생
로저 로웬스타인 지음, 김기준 외 옮김, 최준철 감수 / 리더스북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세계최고의 부자임에도 겸손한 라이프스타일로 인하여‘촌스러운 자본주의자’라 불리며, 대중의 사랑과 숭배를 받는 자본가는 일찌기 없었다 해도 무지한 얘기는 아닐 것이다. 20세기 금융자본주의의 역사 그 자체이자 주류의 금융시장 행태에 휩쓸림 없이‘가치투자’라는 자신만의 투자인생을 묵묵히 걸어온 자본주의 모델, ‘워렌 버핏’의 이 전기(傳記)는 그 만큼이나 독특하고, 흥미로우며, 엄숙한 교훈을 제공한다.

이러한 세상의 관심은 버핏의 출생에서부터 시작되는 성공한 자본가의 신화적 일대기를 그려내고, 시시콜콜한 모든 것을 담으려는 과장된 무수한 평전, 전기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이 저작은 전혀 새롭게 읽히는데, 오랜기간 세계금융시장의 중심에서 그 실태를 보도하던‘월스트리트 저널’기자인 저자의 경력만큼이나, 버핏의 굵직한 투자행위들 마다 당시의 시장환경 상황을 거시적 경제흐름뿐 아니라 미시적인 개별 금융기업, CEO들의 반응까지 세밀하게 묘사하여, 금융투자가, 자본운영가로서의 시장 통찰력과 이론화된 신념을 체득할 수 있도록 하여주는 전문가적 식견으로 기술되고 있음을 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버크셔해서웨이부터 가이코, 살로먼의 대주주로서, 월가뿐 아니라 세계금융시장을 들썩이게 하였던 사건의 한 복판에서 버핏이 보여주는 승부사로서의 기질이나, 아내 수전을 비롯한 가족들, 그리고 그의 사적 인간관계에 대한 조명, 부에 대한 가치관 등 인간적 행위들이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일례로‘워싱턴포스트’의 회장인‘케이 그레이엄’과의 끊이지 않는 의혹의 눈길들을 이 책에서 비로소 명료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한 인간의 삶에 대한 극적 전환점이나 영향을 간과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예리한 기자의 눈을 번뜩이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모델로 일컬어지는 버핏이 일생 추구한 자본주의란 어떤 것인지 하는 이념적 정체성에 대한 측면도 하나의 관점이 될 수도 있겠다. 이 측면을 선명하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경제석학인‘폴 새뮤얼슨’을 비롯한 ‘효율적 시장이론(Efficiency Market Theory)'주창자들과의 주식시장에 대한 논쟁을 들 수 있다. “회사의 이용가능한 모든 공개정보는 그 회사의 주가에 이미 반영돼 있다.~(中略)~ 트레이더들은 가격을 설정 할 수 있을 만큼 현명하다.”는 이들에 대해서, 버핏은 “트레이더들이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한다는 웃기는 얘기”라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 이에 더해 “펀드 기록은 다트를 던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새뮤얼슨의‘시장의 비이성적 측면’에 대한 폭로는 버핏의‘가치투자’에 의한 성공을 한낱 행운이라고 무시하는 것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례에서 버핏의 자본주의 색채는 다소의 혼란을 일으킨다.

한편 기업 매수와 매각행태에서 본 경영철학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신념의 한 표현인 “진러미(gin rummy; 매번 가장 가능성이 적은 사업을 버리는 일)식 경영은 우리의 투자형태가 아닙니다.~(中略)~현금발생이 기대되고 노사관계가 좋으면 평균이하의 기업도 팔기를 거부할 겁니다.”이나, 불가피한 기업규모의 축소 등 기업정리로 인한 노동자 해고에서, “노동자들에게 칼 마르크스보다 관대하진 않았지만 애덤스미스보다 덜 무자비한 타협점을 찾았다고 생각했다.”에서와 같이, 극단적 시장자본주의나 네오콘류의 보수적 입장에 있지 않는, 굳이 단순한 언어로 정의하자면 일종의 중도적 자본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엿 볼 수 있다.

평생의 스승인‘벤자민 그레이엄’의‘가치투자’를 그만의 독특한 ‘장기 가치투자’방식으로, 즉 증시 비평가들의 “미래를 확실히 볼 수 있다는”터무니 없는 추측에 편승한 투자로서가 아니라, 기업의 내재가치에 대한 분석과 통찰에 의한 저가주 공략과 성장주에 대한 투자행태를 목격 할 수 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네 주식중개인을 비롯한 자산운용자들, 투자자들에 많은 교훈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주식의 겉을 보지 않고 그 내면에 깔린 경제적 본질을 살피면 주식은 리스크가 크지 않다.”는 그의 통찰력에서부터, 비이성적 거래를 야기하는 기업 경영자들이나, “많은 경영자가 정부가 납세자의 돈을 마구 써대는 것은 한탄하면서 자신이 주주의 돈을 마음대로 쓰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그의 비판에서 자본주의 윤리와 도덕적 책임에 대한 고결한 신념을 읽는 것과 같다.

이 세계 최대의 금융투자가이자 부자는 단기차익 집중투자인 하이레버리지(high leverage)나 파생상품과 같은 부도덕하거나 투기성이 강한 요소가 개입되어 있는 투자는 한적 없다는 사실이나, 사악한 기업사냥꾼인 ‘칼 아이칸’이나, ‘솔 스테인 버그’같은 그린메일(투기자본이 특정기업의 주식을 대량으로 매입한 다음 해당기업 경영진을 교체하겠다고 위협할 때 경영진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비싼 값에 투기자본이 보유한 주식을 되사들이는 행위)을 겨냥한 야비한 행위자들을 쓰레기 취급한 것은 정의(正意)만으로서도 성공적인 투자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그의 자본주의의 긍정적 가치관을 엿보게 한다.

1987년 10월 19일, 검은 월요일(Black Monday)라 부르는 금융시장의 몰락에 대한‘초현대적인 역사적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8월 12일, 소유 주식을 여간해서는 팔지 않는 그가“버크셔의 주식 포트폴리오 모두를 매각”하는 결단은, 월스트리트의 야만성과 부도덕성이 만들어낸 주가 상승의 붕괴를 확신한 것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시장 추락의 징후에 대한 버핏의 통찰은 어찌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분석도 없이 군중심리에 의해 작동하는 증권시장에 경도된 상황에서 한 걸음 떨어져, 기업과 시장의 내재적 가치를 신뢰하는 그에게는 아마 미쳐 날뛰는 모습으로 비추어졌을 테니 말이다.

가이코의 회생이나 살로만의 재무부채권에 대한 부도덕한 독점입찰행위로 인한 위기의 대처에서 보여주는 버핏의 행동은 지극히 도덕적인 행태를 기준으로 하고 있음을 발견케 된다. 미국의 한 변두리인 오마하의 촌놈, 청교도라고 까지 그의 정직성을 조롱하던 타락한 월스트리트에 진정함과 솔직함, 부정에 반대하는 정의의 태도가 승리하는 모습은 버핏을 숭배하고, 그의 금융투자 신념이 하나의 교리가 되어 신앙이 될 정도에 까지 이르렀음을 이해하게 된다.

부잣집 아이가 다른 아이들 보다 출발부터 앞서가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하는‘초우량부자’, 버핏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일면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그의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행태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한국 기업가들, 지배계층, 금융 관련자들에게, 아니 우리들 모두에게 부에 대한 귀중한 관점을 보여준다. “신뢰가 누더기가 된 사회에 투자관계를 거의 사회계약 형태로 발전”시킨 사람, 주당 10여 달러에 불과했던 버크셔해서웨이를 2007년 주당 14만1,600달러에 이르게 성장시킨 투자의 귀재, 금융신화를 만들어낸 사람, 전 재산의 85퍼센트를‘빌&멜린다 재단’에 유증을 통해 기부한 사람, 금융자본주의의 진정한 정의를 보여준 사람의 분석적 성찰이 돋보이는 탁월한 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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