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오바마 북클럽 1
조지프 오닐 지음, 임재서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환희도 열정도, 낙심도 절망도, 삶의 어느 순간순간마다 다가오는 느낌들에 감정의 과장된 기복을 표현하지 않게 되었는지는 명확히 그 기점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에 그다지 기대할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기쁘다고 외치지도 슬프다고 쳐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의 화자인 ‘한스 판 덴 부르크’안에 잠복해 있는 운명론적 견유주의는 내겐 공감을 넘어선 일체감을 형성할 정도였다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선‘프루스트’를 떠올리게 하는 기억의 여정이고, 관조적인 내면의 일기 같아서 이야기 구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하는 소설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또한 ‘크리켓’이라는 과거 영연방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스포츠가 주요 제재이고, 화려한 소비문화와 현란한 욕망의 무대를 기대케 하는‘뉴욕’을 배반하고,‘한스’의 일상에 있는 갈색과 흑색의 피부를 가진 이주민들의 단조로운 모습을 만나는 것은 더더욱 독서를 어렵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수다스런 치장과 감각적인 형용사들이 배제된 담백하고 일관된 아웃사이더들의 삶에서 오히려 치열한 삶의 의욕과 화해와 화합의 희망을“독선적 망상”에 빠져있는 거대제국에 뿌리려 하는 작은 행동들을 발견하는 것은 소박한 희열을 안겨주기도 한다.
변호사인 영국인 아내의 미국시장 진출을 위한 이주로 뉴욕생활을 하게 된 네덜란드인‘한스’의 이야기다. 금융투자분석가로 낯선 이국의 환경에서 그런대로 금융가에서 인정받는 애널리스트로 직장생활을 꾸려가는 서른여덟 살의 남자, 그에겐 친구도 없고 이렇다 할 여가활동도 없다. 아내와 아들이 있는 가정에 길들여 있는 그런 소박하고 평범한 남자.

그의 시선에 들어온 랜돌프 워커공원에 흰색 유니폼을 입고 크리켓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고향 네덜란드 헤이그에서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항상 운동장에 아들의 시합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시고 계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왠지 애틋한 사랑을 기억케 하고, 눈시울이 붉어지게 한다.

‘한스’의 일상 속에서 스쳐가는 사물과 사건에 이어지는 기억들, 시간과 공간을 마구 거슬러 떠오르는 회상들, 거기에는 어머니의 배려와 사랑이 담긴 표정이 있고, 아들 제이크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진지한 의지와 소망이 있다. 그리고 아내에 대한 부끄러움과 미안함, 실망과 부당함의 통증도 있고, 이민자의 스포츠로 치부되는 크리켓을 미국사회에 스며들게 하려는 트리니다드 사람‘척 램키순’의 열망에 대한 회의도 자리 잡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거대한 결과는 우리의 노력과 관계없이 결정되며, 우리가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랑은 떠나가기 마련이고, 해야 할 말은 끝끝내 할 수가 없고, 온 세상이 지리멸렬함 투성이고, 붕괴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한스 ’의 운명론은 마치 작품전체를 아우르는 예언 같다.

항상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한스’의 아내 ‘레이철’이 쏟아내는 독설처럼 “병든 이데올로기가 난무하는 나라, 대중이나 지도자가 미국과 세계뿐만 아니라 광신적인 기독교 복음주의 덕분에 우주에 대한 독선적인 망상에 빠져있는 나라” 한마디로 “‘악성 정신병에 걸린’비현실적인 나라”에서 자신들의 자아에 상처를 입지 않고 꿈을 꾸려하는 이민자들의 비릿한 삶의 모습들이 흔들거린다.
이처럼‘한스’의 기억의 여정에는 미국의 배타적 독선이 빚어낸 망상과 이민자들의 기대어린 꿈이 어울려 있고, 어머니와 아내, 아들, 그리고 친구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흐른다. 그리곤 이민자들의 마음 저 밑바닥에 흐르는 어린 시절 고향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들에 대한 깊은 향수가 서려있다.

그런가하면 뉴욕에서의 운전면허 신청을 위한 외국인에 대한 하찮은 인간들이 행사하는 부당하고 냉담한 권력의 메스꺼움에 대한 일화에서부터, 떠나버린 아내로 인한 극도의 무감각으로 인생자체가 해체되었음을 느끼는‘한스’에서와 같이 그의 촘촘히 엮인 내면의 기억들, 세밀한 심리의 묘사들을 좇는 진지한 즐거움이 있다.‘한스’가 털어놓는 작은 기억의 기록들에서 잃어버렸던 우리들의 기억을 찾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소설의 형식이 가져다주는 빼어남일지도 모르겠다. 이주민들의 땅(nether-lands)이란 은유적 의미도 지닌‘네덜란드’는 뉴욕의 또 다른 얼굴을 우리에게 드러내준다. 절정도 리듬감도 어떤 굴곡도 느낄 수 없는 문장으로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이 엄습하지만 그 어떤 소설보다 우리들 마음을 커다랗게 진동케 한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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