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조원의 육체산업 - AV 시장을 해부하다
이노우에 세쓰코 지음, 임경화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성(性)의 구분을 막론하고 인간의 육체를 상품화한 산업, 연예인이 등장하는 방송광고, 미인선발대회, 모델산업, 섹스산업, 포르노산업 등을 총체적으로‘육체산업’으로 지칭하는 듯하지만, 이 저작은 성인비디오물, 특히 일본의 AV(Adult Video)산업에 대한 포괄적 성찰이라 할 수 있다.

일견 이렇다 할 AV산업이랄 것이 없는 한국사회에 무슨 관련이 있는가 하겠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아니 양성화 되어있는 그 어느 국가보다 더욱 문란하고, 폭넓게 확산되어 있는 것이 한국 포르노 산업의 실상이며, 더욱이 유선(Cable)방송, 위성TV, 인터넷을 통해 이미 안방 깊숙이 침투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나, 우리나라 스카이라이프 미드나잇 채널이 일본 위성방송 스카이어펙트 TV채널 운영자인 JAM TV와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전략제휴까지 하고 있는 현실에서 일본 AV산업에 대한 실제와 문제점, 그리고 대안과 미래의 방향에 대한 검토는 우리사회의 건강성을 위해서도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연간 15조원에 이르는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日本의 AV산업이 1960년대 블루필름(Blue Film)시대로부터 80년대 비디오플레이어 시장을 거쳐 21세기 오늘 휴대전화와 컴퓨터 정보통신기기를 통한 AV시장에 이르기까지 그 제작사와 구성원인 제작감독, AV 여배우, 모델 프로덕션의 구조적 현상과 문제점, 내용물의 성격과 묘사방식의 문제, 이에 파생하는 여성인권과 아동매춘, 폭력성의 문제, 그리고 사회 환경적 유해성 논란이 시사(示唆)하는 바는 자못 지대하다 할 수 있다.

페미니즘적인 저자의 시선은 차치하고라도 성인 비디오물의 사회, 문화, 경제적 논쟁은 그치지 않고 있다. 과연 성인 비디오물이 성범죄를 줄여주는지, 아니면 유발하는지, 또는 사회경제적 기회손실을 초과하는 이익이 있는 것인지와 같은 원초적인 논쟁에서부터, 성인비디오 그 자체가 이미 “여성을 억압하는 문화가 재생산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주장이나, 여성에 대한 횡포의 합리화, 여성을 그저 육체화시켜 버리고 마는 왜곡된 성 이데올로기의 전파라든가, 폭력(감금, 조련, 강간, 가택침입...)의 괘락화와 성적 쾌감의 잘못된 인식의 확산 등 그 비판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 저작이 이러한 단순 비판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성인 비디오 하면 음란하다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고, 성은 외설스러운 것이라는 서구 기독교문화의 오랜 기간 왜곡된 성(性)인식(認識)으로 뒤틀려 있어 선뜻 그 뒤에 숨겨진 성차별이나 폭력, 내재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꼼꼼한 분석적 기술을 하고 있다.

저자는 성인비디오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섹스를 묘사하는 방식에 오히려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몰래카메라, 치한(癡漢)물, 강간물 등 성범죄를 묘사하는 폭력적 내용과 또한 이를 즐기는 듯 연출되는 것들이 “여성은 강간을 당함으로써 성적 쾌감을 느낀다.”는 극히 터무니없는 잘못된 인식을 부추기고 있거나, ‘생생한 리얼리티(Reality)'라는 명목 하에 연기라는 이름을 빙자한 여성폭력, 계약 내용을 넘어서는 변태적 성행위의 요구로 인한 인권유린 등 사회적 폐해를 적시하고 있다.

이처럼 왜곡된 성 풍속은 “성에 대한 지식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라온 사회적인 환경 속에서 습득하는 것이다.”라는 보편적 진리차원에서 아직은 타인과 접촉하는데 서투른, 아니 타인과 마주하는 방법조차 모르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오늘의 사회에서 그 심리적, 사회적 손실은 간과할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한편, AV여배우들의 길거리 캐스팅과 처우현실, 모델프로덕션과 여배우와 제작사의 관계에서 파생하는 불공정한 인권사각의 지형, AV여배우들의 성장배경 중 상당한 이들이 어린 시절의 성폭력피해라는 심리적 상처(trauma)를 가지고 있다는 진술은 사회적 책임에 대한 시선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산업자체의 구조적, 또한 내용물에 대한 문제점 들은 우리사회 역시 대안을 모색하고 해결하여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1983년 2월 가결된 미국 미네소타주의「反 포르노그래피 공민권 조례」라든가, 1973년 4월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가하던 친부를 살해한 여성에 대한 일본대법원의 집행유예 판결로 일본에서 “존속살인”이 사라진 날로 기억되는 것이라든지, “생명과 생명의 유대감”이라는 에로스의 세계를 지향하는 세미누드, 로망포르노, 핑크영화로의 순화된 영상으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그들의 지혜는 우리에게 유용한 좌표가 될 수 있다.

차별되지 않는 성, 유린되는 인권이 발붙이지 못하는 성, 왜곡되지 않은 성, 아름다운 성, 따뜻한 온기를 주고받는 마음을 치유하는 성으로서 음지의 폭력적인 성을 양지로 견인하는 성숙한 인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식전환이라는 측면과 아울러 이미 많은 문제에 부딪히고 해결하여 온 일본의 경험을 담고 있는 이 저술은 그래서 우리의 방송영상업계 종사자, 정부관계자, 제작업자들은 물론, 대중들 모두에게 AV(성인영상물)산업에 대한 재성찰을 위한 유용한 참고가 될 수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