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비행기 - 팝아트 소설가 죠 메노 단편집
죠 메노 지음, 김현섭 옮김 / 늘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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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범상치 않은 제목들이 생경하게 다가온다. 사람이 구름이 되어가고, 달의 건축양식이란 또 뭔가? 세상의 종말에는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일까? 미니어처 코끼리는 인기가 있다니! 그리고 비현실적인가 하면 아이의 낙서 같기도 하고, 멋진 추상화 같기도 한 삽화들이 책장 곳곳에 숨어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그 전형적 냄새가 확 끼친다. ‘앙드레 브르통’의 극단적 문체주의 작품보다는 ‘나탈리 사로트’ 의식과 의식저변의 재현에 가깝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상당히 순화되어 그저 흐름을 따라가면 될 정도이나 몇몇의 작품은 작가의 시선을 쫓는 것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굳이 작가의 의도를 살피느라 재미를 반감시켜서는 곤란하다. 그저 와 닿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음미하면 전체가 구상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의외의 즐거움에 빠져들게 되는 자신을 발견 할 수 있고, 나아가 공감키 어려운 비판의식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도 할 것이다.
이 작품집을 구성하고 있는 단편 속 인물들에서 21세기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정형을 담아내기 위해 20편이란 숫자를 맞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이없이 은행 강도가 되는 미친놈에서부터 동성애자, 말단 경찰관, 외로움에 지친 여자와 입 다문 딸아이, 바람피우는 아내와 자살하는 남자, 권태와 진부에 몸을 떠는 사람들, 못난이와 에고이스트들, 위선과 가식, 그리고 진실의 실체를 쫓는 무수한 사람들에서 어쩔 수 없는 고독의 두려움과 좌절, 우주의 유한성과 제어력을 잃어버렸음에도 질주하기만 하는 인간들의 무한공포가 있다.

황당함, 기이함, 취약함, 하찮음, 어리석음, 결여, 분노, 짜증, 상실, 이별, 죽음, 미친 세상, 어둠... 이 무수한 인간의 변화무쌍한 감성이 다양하게 변주되어 흐르고 있다. 여기에 ‘상실감’이니 어쩌니 하는 주제를 찾으려는 어쭙잖은 노력은 거두는 것이 좋다. 소외된 감성들, 잊혀진 언어들, 어쩔 수 없는 고독들, 이성의 거대한 사유와 무력함, 그리곤 어느 순간 정말 소중한 것들이 잿빛 의외성으로 가슴에 실린다.

거대 담론에 휩싸여 보이지 않던 그 안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본다. “세상의 종말에 들리는 소리”처럼 그것은 한낱 로크론일수도 있으며, 사막의 전쟁에 나간 남편의 무심함과 달리 아이의 고집스런 무언(無言)과 하얀 린넨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빛의 에어포트”에서 삐죽이 올라오는 마천루나 “유나바머와 우리 형”의 문명이 뱉어내는 찌꺼기의 추악함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며, 폭탄테러 뒤의 조작된 ‘문명의 충돌’이니 하는 허위의식과 ‘스톡홀름 신드롬’과 같은 지식의 허영과 억측스러울 뿐 보잘것없는 이야기들에 대한 조소와 반란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룸메이트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벌이는 그 열정적이고 격렬한 섹스의 울림을 피해 우주인 헬멧을 뒤집어 쓰고 있는 오드리나, “오션랜드”에서 보여 지는 나와 타자간의 진실의 간극, 인간피라미드 꼭대기에 서는 치어걸의 실존의 체험과 같이 세상과 화해하고 조화하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임을 확인한다. 지독스럽게 고독하고 공허한 이야기들이 손을 대면 구름수증기로 변해버리기만 한다. 작품집의 마지막 편인 인구 30여 만 명의 작은 나라,“오늘날의 아이슬란드”는 그 화산과 지진, 혹한 등 척박한 땅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 사실의 이야기는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죠 메노’의 이 작품집은 이처럼 의외의 소재와 상상력이 결합한 낯선 표현으로도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구나 하는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읽을수록 맛이 나는 “달의 건축 양식”이나, “사람은 구름이 되어간다”는 오랫동안 회자될 명작으로 추천하고 싶어진다. 어쩜 세상은 진지함을 코믹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진실이 드러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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