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선 여행 - 과학의 역사를 따라 걷는 유쾌한 천문학 산책
쳇 레이모 지음, 변용란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지구과학, 나아가 천체, 우주의 근원적 발생까지, 우리 인간의 위대한 정신적 소산에 대한 자연과학적 발자취를 기반으로 한 철학적인 사색의 여정이다. 오늘의 인류에게 자오선이 갖는 의미는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지구시간, 아니 우주시간의 기준선이다. 영국의 그리니치천문대를 지나는 북극과 남극을 연결하는 수직의 선인 본초자오선을 경계로 15도 마다 1시간씩의 시간이 빨라지거나 늦어지게 된다.

저자는 바로 이 자오선이 오늘 왜 영국의 그리니치를 지나는 것이어야 했는지에 대한 이해관계국의 갈등과 확정에 이르는 역사적 일화를 소개하며, 인류의 합일점으로서의 그 고귀하고 숭고한 가치를 사유한다. 이렇듯 인류 정신의 합의가 가능하듯이 오늘의 종교간 갈등, 인종간의 갈등도 인간의 위대한 행로에서 이루어지리라는 소망으로 연결 짓기도 한다.

자오선을 여행하기로 한 저자의 위와 같은 인류정신의 숭엄함 위에 놓인 과학적 발견과 그 발견을 위한 노력들의 자취를 시(詩)가 흐르듯 저작의 전체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철저한 기독교 집안의 종교적 환경과 가치에 둘러싸여 성장한 저자가 “신이 우주를 만들어낸 단 한 가지 이유는 죄와 구원의 인간 드라마를 위한 무대로 쓰기 위해서일 뿐이었다.”고 인간 중심적인 종교에 헛웃음을 날리고, 서구중심의 역사적 추진력에 대한 허위에 대해 각성을 하기에는 진실을 쫒는 과학적 탐구의 산물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자아중심적인 세계에서 직접적인 인식을 뛰어넘는 공간으로, 우리가 결코 경험한 적 없는 과거와,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의 미래를 향해 무의식적으로 여행을 시작” 하는 인간의 과학적 창의성에는 절로 숙연해진다. 이 저술은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에서 시작하여 케플러, 뉴턴에 이르는 지구와 우주의 탐구에서 퀴비에, 제임스 허턴의 동일과정설과 같은 지구역사의 가설에 이른 탁월한 인간들에 대한 경외를 보여준다.

“허턴은 바위의 흔적을 설명하는 데 신의 간섭 같은 것은 필요 없으며, 오로지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변화를 가져오는 자연의 힘을 주시해야 한다.”고 지질학 시간이 인간의 시간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그토록 거대한 시간의 심연을 바라보려니 현기증이 날 만큼 마음까지도 넓어지는 듯 했다.”고 지질학적 시간의 탄생에 열정적 탄성을 자아내기도 한다.

한편 헉슬리의 노동자들을 위한 연설문을 인용하면서 과학적 가르침은 “도덕심이 향상되고 자유, 평등, 박애 정신과 새로운 천상세계, 새로운 지상세계에 대한 보편적인 믿음이 널리 퍼지기 바랐다.”고 우리가 과학에서 찾는 믿음에 대한 지식을 주장한다. 많은 과학적 발견이 당시대에는 진실이라 여겨졌지만 오늘에서는 그 과학적 진실이 오류임이 밝혀지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저자는 “과학이 밝혀내는 것은 본원적인 진리는 아니라는 의미”라고 하며, “자연 자체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도록 이끄는 완전히 객관적이고 보장된 방법, 즉 절대 오류가 없는 불변의 진리를 낳는 “과학적 방법”같은 것은 없”으며, 다만, “우리가 과학에서 찾는 것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다른 대안보다 믿음직한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이다.”라고 하고 있다.

이 저술에 매료되는 것은 이와 같은 과학에 대한 철학적 사색뿐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은 분명 거대한 인간 역사 드라마의 일부로서 우연이든 고의이든 같은 종 내의 대량 살상이 이루어졌다는 충격적인 증거일 뿐 만 아니라 ‘호모사피엔스’ 때문에 생물의 다양성에 발생한 가장 중대한 손실이다.”라는 인류기원에 대한 탐험과, ‘다윈’의 자연선택이론을 인간 본성에 대한 연민으로서 “딸의 죽음은 자연에 도덕율 따위는 없으며 모든 생명체는 생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그의 주장에 통렬한 의미를 선사했다.”와 같이 흥미로운 공감을 조성하는 문체에 있기도 하다.

“과거나 미래의 누구보다도 심오하게 우주의 본성을 들여다 보았는지 모르지만”하고 뉴턴의 우주에 대한 겸허의 소박한 한 구절이 절로 오만한 나의 이성을 잠재운다. “거대한 진실의 바다는 고스란히 미지의 모습으로 내 앞에 펼쳐 있는데 나는 바닷가에서 놀다가 이따금씩 좀 더 매끄러운 자갈이나 조개보다 모양이 더 예쁜 조개껍데기를 찾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듯하다.”

자오선을 따라 영국의 남부 피치헤이븐에서 시작하여 울스소프, 배로올험버에 이르는 인류의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따라 거니는 사색의 여정에서 우리는 무지를 인정하고, 진정한 믿음의 버팀목 없이 단지 두발로 서서 존재의 신비를 맞딱뜨리기 위한 용기를 보게 된다. 저술의 말미에 자오선이 갖는 인류의 의미로 “저마다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려는 뿌리 깊은 경향을 뒤엎은 과학적 사고의 승리이며, 아직도 격렬하게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종교와 정치, 인종의 차이가 언젠가는 무의미한 것으로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희망의 징조다.”라고 하는 저자의 인류화합과 과학적 가치에 대한 기대에 그저 감정을 편승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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