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는 작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나 이야기속의 등장인물 혹은 그들의 견해 어느쪽의 편도 아니다라는 말은 사실에 대한 빗나간 착상일뿐 무의미한 말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다름아니다. 이러한 중도는 정말 의미없이 그리고 공허하게만 들린다.

그러나 이야기속에서 작가는 정말 명료한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보내고 있다.

바로 지금의 한국사회와 한 치의 차이도 없어 보이는 17세기 조선조의 국왕과 그의 신하들이 주고받는, 어떠한 진정한 의미도 없는 말과 말들의 움직임은 청의 침입과 그의 굴복이라는 국가적 치욕의 사실보다 더욱 진저리나는 모멸감을 확실케 해준다. 작가 김훈은 성공했다. 아주 분명하게 소설에서 우리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우며 아둔하기까지한 한국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제발 변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독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청의 침입, 우리는 병자호란이라 부른다. 이 무슨 뚱딴지 같은 표현인지...
이러한 역사적 편견은 오늘의 우리 현실에 드러나는 국제관계의 무지함과 무능력한 외교역량과 다르지 않다.
이미 기울어버린 ‘명’에 대한 군신의 의리라는 뿌리깊은 유교적 명분과 세치 혀만으로 나라를 정치하는 천박한 사대부만 우글거리는 인조반정세력과 그 무리들의 무능함은 당시 동북아시아지역의 새로운 국제질서의 이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청이 국제질서의 핵심에 있었다.

국왕과 그의 신하들은 대략 47일간 좁디좁은‘남한산성’에 웅크리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국가의 무참함의 원인에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오로지 유교적 명분만이 그들 삶의 모든 사고와 행위를 지배하고 있었다. 작금의 한국사회의 정치지도자와 행정권력자들의 행태와 다름이 없다. 지금도 세치 혀만 놀리고 있다..., 지금은 남한산성이 아니라 남한이라는 좁은 지역에서...

작가는 ‘영의정 김류’라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호하고 의지도 없는 인물과 국제질서의 이해와 국가적 실리주의자인 ‘이조판서 최명길’, 그리고 유교적 명분으로 충효만을 내세우는 ‘예조판서 김상헌’을 그리고, 우직히 자신의 소임에 충실한 이시백, 무엇하나 자신의 결정이 없는 병조판서, 그리고 서날쇠라는 민초, 청의 통역관으로 잡배일뿐인 정명수등 나름의 등장인물에 현실의 성격을 부여했다.

우리가 생활하는 우리사회의 어느 조직에서든 볼 수 있는 인물들로 구성되어있다. 작게는 지역집단에서, 그리고는 기업조직에서, 나아가 정부조직에 이르기까지 남한산성에 있던 그 인물들과 아주 똑같은 행태가 아무런 변화 없이 약400년간을 지속되고 있다.

적군을 대적하는 무관으로서 자신의 소임에 진중한 의미와 그 실행에 힘을 쏟는 ‘이시백’이나, 무능하기 이를데없는 ‘묘당’의 정치권력자들을 비웃어 대는 그러나 자기의 이익을 잃지 않는 이기적 실속파로 묘사되는 민초의 대표격인 ‘서날쇠’는 오늘의 민중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우둔하고 좁은 시야와 탐욕에 그득한 우물안 개구리같은 우리한국사회의 세칭 ‘지도계층’과 그들과 하등 다를바 없는 우리 사회구성원들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작가는 이시백만을 사랑하고 있구나, 우리에게는 이시백만이 필요한 것 아닌가? 달달외워 명문대 나오고, 부모 후원받아 유학갔다 오면 말로만 한세상 살 수 있는 사회가 우리사회 아닌가 말이다. 남한산성의 그들의 삶과 어쩌면 이다지도 같은지...

우리민족을 이렇게 아둔하고 무능하며 탐욕스런 이기적 인간들로 4세기를 묶어둔 그 한국적 인식과 유전인자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지...

남한산성에서 왕과 신하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작가말대로 한 덩어리로 엉켜있었다.

그것은 원인을 빼어버리고 청의 칸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하는 결과일뿐, 나라가 그 모양에 이를정도로 무지하고 준비없으며, 책임도 없이 굴러간 그 과정인 원인이 없지 않은가? 남한산성은 그래서 아쉽다. 작가는 바로 그래서 “내 약소한 조국의 운명 앞에 무참하였다”고 하였다. 우리는 약소한 국가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약소한 국가 일 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혀야 했던 것 아닐까?

그럼에도 여전히 모처럼 우리의 치부를 그려준 ‘남한산성’이 고맙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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