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몽상가들 알마 인코그니타
뤼도빅 에스캉드 지음, 김남주 옮김 / 알마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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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삶은 지붕 위에 있다.”고 밤이 내리면 거대 파리의 건물들 위 지붕에 올라 그곳에는 내 행복의 양도할 수 없는 일부가 있다.”고 말하는 갈리마르 출판사 편집위원인 중년의 남자 뤼도빅 에스캉드가 있다. 그는 친구인 시인 뱅상과 함께 이웃한 그들의 7층 공동주택 지붕 위를 기점으로 렌가() 좁은 포장도로 7번지에 위치한 발행인 제롬 랭동의 유서깊은 미뉘 출판사의 지붕을 걷고, 지상 80미터 생 쉴피스 성당의 탑 꼭대기에서 수도의 좌안 전체를 내려다보며 관조의 시간, 마음의 격정을 내려놓으며 해방감을 만끽하기도 한다.

 

이 몽상가이자 괴짜는 돌싱남이다. 이혼한 아내가 아이들을 양육하지만 주말이면 협의하여 서로 아이들을 돌본다. 그에게는 새로운 젊은 연인 막신이 있다. 나는 화자이자 주인공인 뤼도빅보다 그의 연인 막신이라는 캐릭터에 더욱 애착을 지니고 읽게 되었는데, 프랑시스 퐁주의 시를 읽으며, 기타를 치며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활력 넘치는 일상의 그녀의 태도에 내 감응이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뤼도빅이 저 위에는 뭐랄까, 자유로운 무엇인가가, 손상되지 않은 그 무엇이 있어.”라고 지붕 위 탐사를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일부라 얘기하자, 막신은 손상된 건 당신들인 것 같은데.”고 대응한다. 막신의 명쾌하고 분명한 표현들은 아주 시원한 청량감을 주기까지 한다.

 

막신은 상대의 시선에 맞춰 세상을 볼 수 있는 여성이다. 뤼도빅이 가부장적 교육에 세뇌된 마지막 세대임을.  때문에 그의 젠더에 대한 고정관념조차 관대한 시선으로 보아줄 수 있으며, 뜬금없이 난 철학이 좋아라고 말하는 남자가 구토, 존재와 무...를 얼버무리면, 장폴 샤르트르, 일어나서 샤워해. 당신한테 냄새나.”라고 응대하며, 곧 문학적 공간이라는 상상을 공유할 줄 안다. 뤼도빅의 아파트 1층 카페 여직원 네스린이 선생님은 젊지도 않고 미남도 아니잖아요.....막신은 예쁜 여자고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아요.” 라며 당신의 진짜 모습을 사랑할 줄 아는 그녀를 붙잡으라고, 당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에 무조건 동의하게 되는 그런 인물이다.

 

막신은 뤼도빅이 뱅상과 함께하는 야간 외출을 점점 더 참기 어려워한다. 뤼도빅이 잔인한 투쟁의 삶을 요구하는 세계에서의 억제된 정신을 도시의 함석 지붕들을 아래로 내려다보고, 그 방대한 지대를 바라보며 느끼는 자유의 갈망을 막신은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뤼도빅이 건물 벽을 등산하듯 오르며 창문 밖을 보던 이웃과 눈이 마주치거나 지붕 위에서 불을 피워대는 행위는 이웃의 비난처럼 파렴치한 짓이고, 과잉의 자유, 어쩌면 방종에 가깝게 보이기도 한다.

 


뤼도빅에게 건물의 지붕 위는 탐사되기를 기다리는 드넓은 공간이고, 안정된 연애 관계의 달콤함의 설렘처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행복이다. 사랑의 스윗하고 순화된 느낌의 평온함과 경쟁관계에 있는 수직의 도시건물벽을 등반하고 지붕 위를 거니는 자유, 높이 오르려는 이 해방의 감정에 나는 수월하게 감응하지 못해 그저 이해의 한 대상으로 남겨둔다.

 

아마 이것이 이 책을 읽는 데에 있어 방해 요인이 되었던 것 같다. 작자의 감정과 사유에 대한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으로, 그가 어느 지붕 위에서 뱅상과 더불어 랭보의 취한 배를 낭송하거나, 자크 바로의 다락방 얘기와 피카소의 게르니카탄생의 일화, 지드의 지상의 양식속 한 문장들이 표현될 때마다 겉도는 서걱거림만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뤼도빅이 막신이나 그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화에서 피어오르는 상황들에 맞춤으로 등장하는 노래들과 문학과 예술작품들을 음미하듯 말하는 장면에 스며있는 그 고유한 예술의 향취에 기분 좋게 흐뭇함의 시간으로 빠져들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이 소설은 현대 대도시 그랑 파리에서 살아가는 한 남자의 도시 기술문명에 대한 은밀한 저항이고, 이 반항에 잠재된 자유의 욕망이며,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가이자 문학과 예술의 찬미와 혼합되어 묘한 감상에 젖어들게 한다. 저녁 8시면 문을 닫는 시간에 뤽상부르 공원에 들어가 당대에 배척당했던 폴 베를렌의 동상이 아이러니하게 서 있는 시절 맥락의 모순적 변화를 바라보며, 아르튀르 랭보와 한 때 지독한 커플관계였던, 그 유명한 브뤼셀의 총격사건을 화두로 폴 베를렌의 시와 사랑과 광적 열정이 나지막히 흐르고, 자크 프레베르가 노래한 삶은 사랑하는 이들을 갈라 놓네. 아주 부드럽게, 소리도 없이.” 라는 샹송 고엽(枯葉; Les feuilles mortes), 막신이 기타를 치며 뤼도빅 앞에서 근사하게 부르는 에어로스미스의 꿈꾸며 살라; Dream on가 감미로운 장면으로 펼쳐지기도 한다.

 

뤼도빅의 한 밤의 지붕 위 탐험의 여정은 도시의 번잡함을 다소 벗어나고 아이들을 키우는 삶의 조건에 조금은 더 맞는 곳으로서 파리 서쪽 15구 외곽 앙드레 시트로앵 공원 근처 이사하면서 중단된다. 우리는 어쩌면 자신만의 고유한 양도할 수 없는 여러 행복의 감정들을 지니고 있을 터이다. 그것은 뤼도빅처럼 그랑 파리의 건물벽을 오르고, 그 장애 없이 펼쳐진 지붕 위를 거닐며 만끽하는 고양감이기도 하겠지만, "존재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일 게다.

 

뤼도빅은 자신의 존재적 근원인 부분을 무엇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떠나버린 막신에게 다시 만남을 요청하는 연락을 하지만 그녀로부터 어떤 회신도 더 이상 받지 못한다. 뤼도빅은 사랑만이 결코 단절될 수 없는 근원이라 여겼던 걸까? 그는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이유들이라는 퐁주의 시 구절이야말로 모든 시의 제목이 이것이어야 한다고 글을 맺는다. 나는 행복이라는 이 환상을 쫓는 중년의 남자, 도시를 내려다보며 파리의 피 흘리는 역사를 추출해내고, 현대 문명의 과잉과 과도함을 해독해내기도 하며, 문학과 음악 예술의 향취에 젖어들기도 하는 인물로부터 마지막 가부장적, 계급 편향성의 뿌리깊은 잔재를 읽기도 한다. 어쩌면 이를 인지한 인물의 그로부터 벗어나는 자신과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의 기록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자유에 대한 절대적 갈망이 조금은 타협될 여지가 있는 것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막신은 그래야만 돌아오지 않을까?

 

P.S. 뤼도빅의 지붕 탐사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파리 시가(市街)의 모습이 보이고, 갈리마르, 미뉘, 그라세 출판사 등 이 유명 출판사들의 지붕 위에서의 바라보이는 조망과, 특히 갈리마르의 뒤뜰 정원과 고대풍 기둥이 죽 늘어선 별채인 플레이야드 문화원등 구조가 보인다. 또한 생제르맹 대로의 서점 레큄 데 파주등 몇 몇 서점을 그려 볼 수 있는 부가적 여행이 될 수 도 있다. 파리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는 독특한 문학탐방의 가이드로 삼아도 될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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