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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지 않은 깊은 산 - 블랙홀에 대한 진짜 이야기
베키 스메서스트 지음, 하인해 옮김 / 까치 / 2024년 4월
평점 :
“은하의 검은 심장으로 여겨진 블랙홀이 실제로는 ‘전혀 검지 않았던 것’이다.
과학은 우리에게 ‘우주 전체에서 가장 밝은 물체’라 말하고 있다.” -프로롤그 17쪽에서
이 천체물리학의 역작(力作)은 광대한 우주의 신비를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나가는 인류의 앎에 대한 집요한 의지를 발견할 때면 어떤 경외감에 무지의 다른 가면인 오만이 한껏 왜소해지고 절로 겸허를 장착토록 한다. 또한 인간의 두뇌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그 모름으로 가득 찬 우주의 무한한 시간과 공간, 무수히 빛나는 상상 속 밤하늘의 별빛에 숨이 멎는 듯한 탄식을 쏟아내게 된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길 없어 그저 알고 있는 형용사를 빌어 그 숭고한 아름다움에 경탄의 소리를 내질렀던 강원도 GP고지 경계근무에서 보았던 밤하늘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블랙홀의 간략한 역사(A Brief History of Black Holes)’라는 겸손한 제목을 붙인 옥스퍼드大 천체물리학자인 ‘베키 스메서스트’의 이 책은 모른다는 것을 아는 인간의 그 모름을 상상할 수 있는 한 아주 느리지만 앎의 지대로, 다시 말해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상상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고, 생각이 닿는 한 그 상상 속 물음을 규명하기 위해 내딛는 인류의 앎의 의지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우리가 속한 태양계는 우리가 속한 은하의 가장자리 날개의 한 주변부일 뿐이고, 우리가 속한
은하 또한 여타 은하에 비해 지극히 평범한 크기의 나선 은하의 하나일 뿐이다. 대체 이것을 어떻게 안 것일까? 바로 이러한 앎에 이르는 과학적 발견과 이론적 발전, 그 규명의 진술이 이 책의 본령(本領)이다. 태양계는 우리 은하의 중심을 기준으로 시간당 72만 킬로미터로 돌아 한 바퀴 도는데 2억5,000만년이 걸린다. 그렇다면 우리 은하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초대질량(超大質量) 블랙홀(supermassive black hole)'이 있다. 책은 바로 이 블랙홀이라는 환상적 존재에 대한 연구 기록이다. 그런데 이 블랙홀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승인한 것은 불과 반세기 남짓이고, 더구나 이 실체를 관측하여 촬영 입증한 것은 몇 년 전인 2019년의 일이다. ’오렌지색 도넛‘모양의 사진, 우리와 이웃한 ’메시에87 은하‘ 중심에 자리한 블랙홀이 인간이 최초로 촬영한 블랙홀 사진이다.
【2019년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으로 ‘메시에87’을 전파 촬영한
최초의 블랙홀, 책 본문 179쪽】
블랙홀을 설명하는 여정은 단 번에 가능한 것이 아니기에 이 존재의 가능성과 규명에 이르는 무수한 물리학적 천문학적 발견과 입증의 과정이 따른다. 우주 최초의 물질은 무엇이었는지 에서부터 그 최초의 물질인 수소 원소가 어떻게 여타 원소들로 결합 생성되었는지, 이 결과가 무엇을 야기했는지, 이를 입증하기 위해 빛에 대한 이해와 그 속성이 지닌 의미에 다가서기 위한 실험과 관찰, 결과의 해석과 다시 천문학적 실체의 증명에 이르는 지난한 과학의 시간을 가로지른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론 설명에 의해 단절되지 않으면서 블랙홀의 본질과 물리적 성격, 그 발견을 위한 발상과 규명을 가히 문학적이라 할 정도의 유려한 문체로 연결한다.)
암흑물질은 암흑물질이 일으키는 중력으로 인해 그 존재를 알 수는 있지만, 빛과 상호작용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없다. 20세기 초, 한 논리철학자는 ‘생각하지 말고 보라’고 말했다. 보이는 것만이 사실이고 세계라고 말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진술을 신뢰했다면 인류의 지성은 아마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팔을 내젓는다. 우주의 8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암흑물질은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는 볼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 분명 존재한다. 우리가 생각보다 아는 것이 훨씬 적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겸허함으로써 우리는 그 모름의 지대를 앎의 지대로 이끌어 낼 수 있다. 블랙홀에 대한 놀라운 과학적 의미의 발견은 바로 이러한 자기 무지에 대한 앎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다.
19세기말까지 천문학은 사진건판기술에 의해 안드로메다를 발견했다. 그러나 인류의 지성은 그것이 다른 은하임을 알지 못했다. 은하는 오직 태양계가 속한 은하만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따라서 안드로메다는 흐릿한 먼지덩어리를 의미하는 성운(星雲,Nebula)으로 불린 것이 고작이다. 망원경과 사진기술의 발달로 1920년대 들어서 인류는 안드로메다가 우리 은하에서 수백만 광년 떨어져있는 또 다른 은하임을 알게 되었고, 이는 우주의 크기에 대한 인류의 관념을 뒤집어버렸다. 인류의 세계관이 전복된 것이다. 한편 천재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조차도 블랙홀을 불합리한 개념으로 여겨 블랙홀을 말하는 과학자들에게 분노를 쏟아 놓던 시절이었다.
블랙홀이 과학적으로 공식 승인된 것은 1970년대 들어서이다. 항상 어떤 진실로의 접근은 기성의 권위를 지닌 자들의 수구적 방해로 인해 수십년의 시간을 지체하게 된다. 천체물리학도 예외가 아닌데, 20세기 초중반의 에딩턴이라는 영국 물리학자의 눈먼 권위로 인해 무수한 과학적 발견과 사실들이 부정되고 지체의 시간을 보내야 했음이다. 잠깐 블랙홀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역사를 추적하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분명 보았지만 그 의미를 알지 못해 몰랐던 것으로 머문 역사이다. 1783년 영국의 천문학자 존 미첼은 “빛도 빠져나오지 못할 만큼 질량이 매우 큰 물체”를 상상하고 ‘검은 별(dark star)’를 설명하기도 했으며, 1915년 독일 물리학자 카를 슈바르츠실트는 “모든 질량이 하나의 점으로 붕괴하는”가설에 입각하여 “시간마저도 멈추게 하는” 물체를 ‘얼음 별(frozen star)'이라 명명하기도 했다.
이는 1970년대 스티븐 호킹 등에 의해 “중력에 의해서 완전히 붕괴된 별”이란 정의를 지님으로써 존 휠러에 의해 채택되고 독일 물리학자 페터 카프카를 비롯한 과학자들의 사용으로 블랙홀(black hole)이 공식 과학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이름은 엄청난 진실을 호도하는 사실과 다른 형상을 떠오르게 한다고 저자는 물리학 전체를 통틀어 가장 바꾸고 싶은 오해와 혼란을 일으키는 이름이라 지적한다. 사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블랙홀은 검은 구멍을 연상시키고, 깊고 어두컴컴한 우물이나 싱크대 배수구, 바다 위 소용돌이처럼 우주선을 빨아들이는 회오리같은 형상이라 생각하곤 했다. 무엇인가 없는 빈 공간인 네거티브 스페이스(Nagetive Space)로서 말이다. 저자는 이름으로 인해 빚어진 이러한 왜곡된 이미지를 바로 잡는데, 블랙홀은 ‘구멍과 거리가 먼 물체’임을 몇 차례 반복한다. 물질이 가장 높은 밀도로 모여 있는 모든 것의 있음으로서의 존재라고. “땅에 난 구멍이 아니라 물질로 이루어진 산에 가깝다”고 강조 설명한다.
이 블랙홀의 존재에 대한 규명에 이르기까지 양자물리학과 특수상대성이론, 일반 상대성이론과 별의 죽음 방식 규명에 이르는 이론적 관찰적 증명에 이르는 촘촘한 설명들로 대중적 이해를 돕는다. 전자의 상태를 나타내는 네 가지 속성이 왜 별의 생성과 소멸의 주기와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인지, 별의 질량 증가로 내부 붕괴하면 다음 단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블랙홀은 어떻게 매우 높은 질량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을 어느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수월하게 풀어놓는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에너지와 질량은 등가물이라는 상대성 이론의 공식, ‘E=mc², E²=m²c⁴+pc²’ 이 별의 소멸과 생성, 행성의 궤도주기와 블랙홀의 크기를 결정하는 ‘슈바르츠실트의 반지름’을 의미하는 블랙홀 주변을 감싼 ‘사건의 지평(event horizon)'에 이르기까지 그 이론적 공헌의 쓰임을 발견한다. 그리고 왜 행성의 주기가 미세하게 이론과 차이가 발생하는지를 설명한 특수상대성 이론인 “빠르게 움직이면 시간이 느려지는 시간 팽창(time dilation)과 빠르게 움직일수록 거리가 줄어드는 길이 수축(length contraction)의 발생”과 공간 휨으로 경로의 경미한 변경 발생 등을 설명한다.
태양은 태양계 질량의 98퍼센트를 차지한다. 이 막대한 질량의 물체는 주변 공간을 휘게 함으로써 공전하는 행성들의 경로를 뒤틀리게 한다. 질량이 큰 물체가 일으키는 공간과 빛의 휨을 말하는 중력이론은 1954년 최종 승인되었다고 한다. 사실 1919년 11월 천문학자의 관찰보고를 통해 “하늘의 모든 빛은 휘어져 있음”의 입증이 있었다. 이것이 과학적 진실로 수용되는데 45년이 걸린 것이다. 빛의 뒤틀림으로 별의 겉보기 위치가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입증함으로써 우리들은 신뢰할 수 있는 거리와 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태양과 같은 별의 죽음은 세 가지 방식이 있다고 했다. 백색왜성, 초신성, 중성자별이 그것이다. 그런데 왜 이 들 모두가 블랙홀로 붕괴하는 것이 아닐까? 더 이상 융합이 일어나지 않아 척력이 없어지면 가차 없는 내부 중력으로 블랙홀이 되는 것이 아닌가? 블랙홀이 되지 않는 까닭을 설명하기 위해 양성자, 중성자, 전자의 미시세계를 탐험하고 그 구성요소를 이해하는 것이 곧 블랙홀의 현상 규명으로 이어진다. 신비와 명료한 과학 세계의 간극이란 얼마나 협소한 것인지, 어쩌면 그 명료함이 곧 신비함이기도 하듯 중력에 의한 전자의 응집과 중력에 저항하는 ‘전자 축퇴압’이 별의 내부 중력의 힘에 저항하지 못하는 순간, 그 한계를 계산할 수 있게 된다. 이에따라 백색왜성이 붕괴하는 그 한계인 최대질량을 규명하기에 이르는 물리학자의 성취를 보는 것도 이 책의 또 하나의 미덕일 것이다. 백색왜성의 질량 한계는 태양 질량의 1.44배로 이를 규명한 인도 천체물리학자의 이름을 따 ‘찬드라세카르 한계’라 불린다.
그렇다면 백색왜성이 붕괴하면 다음 단계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또한 폭발적 초신성이 붕괴할 때는 어떤 다른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중성자별은? 이들 모두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물리학자와 천문학자들이 규명했다. 자 건너뛰어, 빛도 머물지 못하는 너무도 높은 질량의 물체여서 온통 검어 보이지 않는 블랙홀을 대체 어떻게 발견하고 그 존재를 입증했을까? 1054년 중국 천문학자가 기록한 초신성 잔해인 게성운의 중심에서 전파 진동을 발견했다. 진동하는 전파 물체를 줄여 ‘펄서(pulsar)’라 부른다. 이 강력한 진동은 엄청난 에너지의 발산을 의미한다. 그 크기를 측정하고 물체의 질량을 알아낸다. 블랙홀의 크기는 곧 질량으로 결정된다. 즉 엄청난 질량의 블랙홀을 발견한 것이다.
강력한 전파의 진동으로부터, X선의 발견으로부터도 블랙홀은 발견되기도 한다. 1895년 뢴트겐의 우연한 X선의 발견이 의학영상용만이 아니라 우주의 관찰에 이용될 줄 그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에너지가 몹시 높고, 수백만도에 달하는 온도에서만 생성되는 X선의 특성으로 인해 X선을 강력하게 방출할 수 있는 물체는 중성자별,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으로 불리는 ‘강착원반’만이 가능하다. 즉 강착원반에서 나온 빛 덕분에 블랙홀을 탐지 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지구 대기권으로 인해 차단된 X선을 탐지하기 위해 대기권 밖인 지구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에서 탐지하여 그 양을 측정한다.
‘사건의 지평(event horizon)'이라는 시적이고 인문학적인 이 표현이 유독 매혹적으로 느껴졌는데, 이는 블랙 홀 주변을 감싼 3차원 구체(具體)의 전자구름이라 할 수 있는데, 관측 가능한 사물들과 불가능한 사물들 사이의 경계이며, 종종 돌아 올 수 없는 지점으로 불리는, 어떤 존재도 이곳에 떨어지면 아무리 애를 써도 다시는 올라오지 못하는 경계지대를 일컫는 천체물리학의 공식 용어다. 즉 사건의 지평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 알 수 없는 특이점이랄 수 있다. 우리는 오늘날 블랙홀을 발견할 수 있는 지식과 장비를 갖추었고, 그 크기를 계산할 수 있다. 블랙홀의 크기는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으로 그 크기를 정의한다.
그런데 r=0인 진정한 물리학적 특이점인 지점이 있다면 그 지점에서는 공간 곡률을 가늠할 수 없게 되고 중력의 크기도 알 수 없게 된다. 정말이지 인간의 지성이 접근 할 수 없는 그야말로 깜깜이 지대이다. 결국 블랙홀은 밀도가 무한히 높고 크기가 무한히 작아 r=0이 되는 정의 불가능한 특이점으로 모든 물질이 응축될 때까지 붕괴한다는 것이 이론적 추정이다. 우리는 이 사건의 지평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은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블랙홀에 대한 우리 앎의 도전은 종말을 고해야 하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대체 우리가 왜 보이지 않는 블랙홀이나 암흑물질을 탐지하고 그 진실에 도전했는가? 이것들을 안다는 것은 인간 삶에 어떤 영향을 갖는 것인가? 물론 이 무지의 현상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발견되고 창조되는 과학적 이론과 증명의 발전이라는 부수적 진보가 있지만 인간의 존재론적 가능성이라는 시원적인 지식에 대한 앎일 것이다.
초대질량 블랙홀이 무한히 질량을 불려나간다면 은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 우주는 팽창하고 있지만 수축하지 않을까? 과학자들은 우주팽창 계수(우주배경 복사 관측결과와 팽창속도를 조합한 변수)를 1.02±0.02 로 측정하였으며 궁극적으로 수축(Big Crunch)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이런 일은 수백억, 수천억년 뒤의 일이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교외(郊外) 밤하늘의 오리온자리 별 들 중 하나는 지구로부터 1경 1,000조 킬로미터에 있다. 1,200년 전의 그 별빛이 지금의 우리를 숨 막히는 감동에 젖어들게 한다.
저자는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빅 바운스(Big Bounce)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은하와 초대질량 블랙홀이 상호 공진화하며 우주의 안정을 도모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공진화를 입증하려한다. 어쩌면 이 공진화에 대한 이론적 실마리가 발표되었지만 학계는 회의적인 것 같다. 그럼에도 베키 스메서스트의 연구가 결실을 얻기를 응원한다. 언젠가 무의하게만 여겨지는 형이상학적 사변의 물음이나 알지 못하는 불가능의 영역에 대한 앎의 소망들이 달성되리라 믿는다. 지금을 사는 우리들이 한줌의 먼지가 되고 가늠할 수 없는 먼 미래의 어느 날 그 어느 죽은 별의 산에 쌓이겠지만 말이다. 인간의 시지각 능력을 벗어나는 지대에 대한 이 앎의 추구는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란 잘못된 설명처럼 책 읽는 이의 영혼을 남김없이 매우 무참하게 빨아들여 감금할 정도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을 때 오랜 시간 꼼짝하지 않았던 탓에 걸상에 앉았던 엉덩이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열정과 경이와 진심으로 얽힌 매력적인 또 하나의 대중과학 역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