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침팬지 폴리틱스 -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
프란스 드 발 지음, 장대익.황상익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3월
평점 :
이 책은 고등동물인 영장류 침팬지에 대한 행동연구과정에서 발견된 이들의 ‘사회적 행동 패턴’을 통해 ‘정치적 행위’의 기원을 탐구한 저작이다. 20여 마리의 암수 침팬지로 구성된 하나의 집단을 가능한 자연적 조건에서의 자발적 행동을 6년여에 걸친 관찰 속에서 그들의 행동을 해석한 동물 행동 연구이다. 사실 동물행동학(ethology)의 결과를 인간의 행위 해석에 전용하는 것에 대한 반대론이 만만찮다. 일례로 침팬지가 갈등 후에 적수 사이에 이뤄지는 접촉 행위를 ‘화해(reconcilation)’와 같은 인간 용어로 사용하는 것에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거나, 인간에게 이(齒牙)가 동물에겐 이빨이어야 하고, 키스는 입과 입의 접촉일 뿐이며, 얼굴은 주둥이 부위라는 중립적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극렬하게 싸운 뒤 두 적수가 첫 접촉을 통해 털고르기를 해주며 입을 맞추고 이후 평화로운 관계를 갖게 된다면, 이는 곧 ‘화해’가 아닌가? 이것을 인간 중심주의의 위엄을 지킨답시고 ‘싸움을 한 뒤의 첫 접촉’이라 고 길게 표현하는 것만이 정당한 것인가? 저자 ‘프란스 드 발’은 “머리를 모래에 처박아서 되겠는가?” 라고 반문한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얄팍한 수의 기만이 아니냐고. 물론 침팬지의 어떤 행위를 인간의 언어로 해석할 때 옳거나 그른 해석이 있을 수 있으며, 이를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차별화된 선입견을 사전에 개입시킬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권력투쟁의 동물적 기원’이라는 부제를 하고 있듯, 성장한 네 마리의 수놈과 열아홉 마리의 성숙한 암놈, 그 새끼들 각각의 개성과 상호작용의 여러 패턴, 몸짓이나 음성과 같은 의사소통 신호들을 식별하여 일관된 해석을 함으로써 이들 사회의 안정과 안녕의 균형유지와 경쟁행위를 통한 권력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일련의 행위들을 추적 묘사하여, ‘인류 정치 기원’의 형태를 발견해 내고 있다. 총 7개 장(章)과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성, 권력교체, 불안한 안정, 성적 특권, 사회생활의 원리, 정치의 기원’이 그것인데, 수컷과 암컷 집단의 각 개체들을 마치 졸업앨범 사진처럼 증명사진 크기로 이름과 함께 그 모습이 실려있는 ‘개성(個性)’에 대한 장은 그야말로 이 관찰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토대일 것 같다. 저자는 ‘자신 있는’, ‘자긍심 높은‘, ’계산이 빠른‘과 같은 주관적 인상을 과감하게 침팬지의 개성에 반영하여 굳이 인간 행위를 비교할 필요조차 없게 만들어버린다.
【본문 80~81쪽에서】
주요 개체 하나 마다 그네들의 개성을 설명하는데, ‘여장부 마마’로 불리는 침팬지부터 설명이 시작된다. 가장 나이 많은 암놈으로 “눈빛에 큰 힘이 담겨있으며, 특유의 예리하면서도 모든 걸 이해하고 있다는 듯한 눈빛”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공동체 안에 최대의 존경을 받고 있는 개체이다. 그리고 성장한 수컷 클럽을 이루는 이에룬, 라윗, 니키, 단디, 네 마리의 수놈 각 개체에 대한 독특한 개성들이 이어지는데, “천성적으로 계산이 빠르고, 신경질적이며 이해관계에 민감한” ‘이에룬’부터, “놀기 좋아하고 장난기 많으며 생기발랄한“ ‘라윗’이 이어지고, 정말 독특한 암놈인 ‘파위스트’의 암놈에 적대적인 성격과 그 어떤 성적 접촉도 거부하는 친(親)수컷 행동을 보이는 개체의 설명으로 이어진다.
아마 저자와 연구진은 이 파위스트라는 암놈을 가장 싫어했던 모양인데, 위선적이고 비열함에서 단연 독보적 행태를 보였던 모양이다. “수놈이 암놈들을 공격하면 다른 암놈들은 서로 힘을 합치는 데 반해 파위스트는 실제로 수놈들에 협력하여 암놈을 공격하는”, 정말 기이한 성격의 암놈이다. 스물세 마리가 이렇게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개성들의 존재로서 그들의 이후 합종연횡의 배경이 된다. 마치 인간 사회의 여느 소집단의 인간 구성원들의 개인적 특성를 묘사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그 유사성의 매혹에 빠져들게 된다. 그렇다. 이 책은 단연 훔쳐보기의 가장 멋들어진 재미로 가득해서 일견 사회적, 정치적 상호작용의 발견과 같은 짐짓 무거운 주제를 쉽게 이해가능하게 해준다.
‘권력교체’의 장은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 해도 될 것 같은데, 사실 침팬지라는 영장류에 대한 동물로서의 편견이 여지없이 전복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놀라운 사회적 조작 사례가 목격되고, 고도로 지능적인 '목적성을 가지고 생각하는(think purposefully)'능력에 대한 행동 특징들을 입증한다. 특히 높은 수준의 협력을 달성하기 위한 공동연대의 형성과, 경쟁적 경향성을 극복하고 의식화함으로써 전략적 연대를 취하는가 하면, 아주 교묘한 삼각관계를 통해 소위 ‘최소승리의 연합’이라는 인간들이 즐겨 쓰는 합리적 행동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을 최고 권력자의 힘에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인지시키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예측과 계획’ 능력을 이들이 지니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 장을 읽고 있다 보면 불현 듯 진화한 유인원 리더 '프록시무스'가 활약하는 《혹성탈출》이라는 영화 장면들을 떠 올리게 된다. 침팬지라는 동물의 우두머리는 육체적 힘이 가장 센 놈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깨지는데, 지도자로서의 권좌에 오르기 위해서는 “연합에 바탕을 둔 서열구조의 전제” 하에 개체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이 당연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두 수놈의 리더자리를 놓은 싸움의 승패 결과가 그들의 사회적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가 싸움의 결과를 결정한다”는 집단 구성원 전체에 대한 세심한 사회적 관찰을 통한 선행적 이해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리더인 이에룬을 전복시키고 권좌에 오르기 위한 라윗의 수개월에 걸친 사회적 책략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이 하는 털고르기, 입의 접촉, 옆에 앉아있기, 함께 걷기, 지원하기 등 그 자체로는 하잘 것 없어 보이는 행동 모두가 복잡하고 치밀하게 계산된 행위임을 알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어떤 행동이 어떤 결과를 야기할 것인지를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도 성취 가능한 목표에 효과적으로 연결되는 것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꾀로 상대방을 이기고, 속임수로 전략을 감지하고, 상호이익이 되는 타협을 이루며 자신의 삶에 이득이 되는 사회적 연대를 증진시키기 위한 필요로서의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즉 ‘사회적 지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권좌를 차지했다고 리더의 권한이 연속되는 것이 아니다. 1인자였던 이에룬이 2인자였던 라윗에게 자리를 빼앗긴 것은 그가 라윗과 니키, 두 수놈의 구성원에 대한 공격을 효과적으로 지켜내지 못한 이유 때문이다. 해서 새롭게 리더가 된 라윗은 ‘패자의 지원자’가 됨으로써 질게 뻔한 놈의 편을 들어 평화와 안녕의 투사로 자신을 확립한다. 여기서 1인자의 보안관 역할은 호의(好意)라기보다는 의무(義務)에 가까운 행위이며, 이를 실천하지 못하면 그 권좌는 위태로워졌음을 보여준다.
우열관계는 계속 증명되고 확인받아야만 했는데, 확립된 서열관계는 자동적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윗, 니키, 이에룬의 삼각구도는 늘 불안정적으로 흔들렸으며, 절대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한 상호위협의 과시가 빈번하게 자행됨으로써 그 위기상태를 노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니키는 이에룬의 라윗과의 연대를 방해하고 두 수놈을 분리함으로써 위협을 증대시켜 이에룬을 라윗으로부터 멀어지게 함으로써 신체적 힘의 우위로 라윗을 굴복시키고 권좌에 오른다. 그러나 구성원은 니키의 폭력적 성향 때문에 그를 존경하지 않는다.
아마 내겐 정말 놀라울 만큼 교활한 행위를 접하게 되었는데, 몰락하여 3인자 자리로 물러나게 된 이에룬의 전략이다. 2인자가 된 라윗과 접촉 할 수 있는 문을 열어둔 채, 1인자인 니키와 은연히 접촉하면서, 자신의 행동이 니키의 지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주지시키는 것이다. 구성원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니키의 공백을 자신이 채워주며, 실질적 권력을 공유하는 것이다. 니키는 라윗의 도전에 대해 이에룬과 공동전선을 결성해 방어하며, 구성원에 대한 반발까지 통제하며 리더자리를 수호하는 것이고, 이에룬은 그가 결여한 부분을 자신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각인시킴으로써 1인자에 준하는 권력을 누리는 것이다. 이 정교하고 치밀한 정치적 전략에서 오늘 인간들의 정치적 술책의 역사적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의 공유는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인데,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설파한 논리에서도 드러난다. “귀족의 원조를 받아 군주권을 얻는 것은 평민들의 지원을 받아 군주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왜냐하면 귀족들은 군주와 동등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군주는 원하는 대로 그들을 지배하거나 통제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귀족인 이에룬이나 라윗의 원조로 권좌를 차지하면 구성원들의 지원을 받아 리더가 된 것과 달리 그들을 온전히 통제, 지배할 수 없다는 이 말이 니키 권좌의 고질적이고 태생적 불완전성이다. 민주주의 어렴풋한 그림자를 보게 된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책은 이렇듯 침팬지들의 행동특성과 권력투쟁의 과정, 그들의 사회생활을 관찰함으로써 침팬지 사회의 정치적 활동 요소를 추출해내고 있는데, ‘서열은 승인되어만 하며 불명확해지면 권력투쟁이 벌어지는’ 양상으로부터 ‘공식화(公式化)’의 중요성과 권력상승을 위한 기회주의적 유형의 개입인 ‘연합’, 사회적 연대성과 상호간 연합과 같은 지지기반의 확립인 ‘균형’, 그리고 안정과 사회적 호의의 교환, 합리적 전략, 특권, 술수 등을 열거하고 있다. 결국 유인원인 침팬지들의 사회생활을 통해 우리 인간의 정치적 활동은 진화적 유산의 일부처럼 여겨지며, 정치의 기원은 이처럼 석기 시대 원시 인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정치를 이처럼 영향력있는 지위를 획득하고 유지하는 사회적 술수라고 정의한다면 정치의 기원은 이처럼 인류 역사보다 오래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 정치적 교훈같은 것을 건져낼 수 있는데, 그 첫째는 모든 것을 독점하려는 리더는 곧 위험에 빠진다는 것이다, 착취적 연합과 기회주의라는 속물 정치만을 지향하는 자의 권력은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긍정적이었건 부정적이었건 ‘호혜성’은 중대한 정치적 필수 행위라는 것인데, 티보(J. Thibaut)와 켈리(H. Kelly가 저술한 《집단의 사회 심리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모든 개인은 보상과 대가의 측면에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때에만 자발적으로 관계를 맺고 유지한다.” 고 했듯, 호혜성의 원리는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기억돼야 한다는 것이다.
상호작용은 일종의 손익거래임을 정치가 망각하는 순간 권력은 몰락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작금의 검찰 독재 권력이 정권을 차지하기 무섭게 이 상호 호혜성을 부정하고 소수 기득권자들을 위한 부의 집중 배치에 전념함으로써 구성원들로부터 신뢰를 상실한 것과 같을 것이다. “권력의 균형은 매일매일 시험되며 그것이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도전이 일어나고 새로운 균형이 찾아온다”고 한다. 곧(4.10) 이 균형을 위한 시도가 과연 어떤 결과를 보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정치적 기원의 교훈으로는 아마 놀라운 결과로 드러날 것 같다.
네덜란드 아른험 소재 뷔르허스 동물원(Burgers Zoo) 침팬지 대규모 사육장에서 펼쳐지는 파란만장한 침팬지들의 정치적 행동 양태를 보고 있노라면 욕망이 난무하는 한 편의 인간 정치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에 빠져들 정도다. 대중적 과학 연구 논문이지만 반전을 거듭하는 여느 미스터리 소설 뺨치는 권력투쟁의 스토리가 어쩌면 이 책 입소문의 본질일 것만 같다. 침팬지들의 행동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인간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통찰을 전해준다. 누가 정치를 인간만의 영역이라 말했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인간이란 말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닌 말이 되었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를 다시 읽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