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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개정증보 2판) - 복잡한 세상 명쾌한 과학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7월
평점 :
21세기는 아톰(atom)의 세계에서 비트(bit)의 세계인 디지털 세계로의 급속한 이전이 이루어진 세상이라는 표현이 가능할 것이다. 이에따라 엄청난 초연결과 초융합의 세계가 열리면서 빅데이터를 이용한 인공지능에 의해 새로운 차원의 서비스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무수히 복잡한 세계 그물망의 상호작용에 의한 창발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나, 이것이 인간 삶의 행복 증진과는 괴리된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의 도구가 될 뿐이다. 과학의 급격하고 가공할만한 진전이 인간 개체의 삶에 소용되지 않는다면 과연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일까를 자문해보게 된다.
2001년에 초판이 출간 되고, 매 10년마다 개정증보를 하여 2020년까지 두 차례 증보(增補)가 이루어진 이 대중 과학 저술을 읽게 된 동기일 것이다. 특히 202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조르조 파리시의 복잡계 상호작용에 대한 저술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고 하겠다. 2020년 추가된 글에서 과학자 정재승은 복잡계 과학이 최근 10년 가장 많은 발전을 이룬 과학 분야라 말하고 있다. 무작위적이고 우연에 의해 촉발된 현상으로 이해되던, 무수한 변수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어떤 법칙이나 질서를 알 수 없었던 대상으로부터 고유한 물리적 특성을 발견 규명하는 연구를 복잡계 물리학이라 거칠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 삶의 현실로 돌아와서, 과학의 발전이 인간을 대체할 정도의 인공지능 구현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선전하지만, 이 세계에 작용하고 있는 변수들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자신들이 손쉽게 정량화할 수 있는 것만을 과대평가하고, 정작 사회구성원인 인간 개체에게 소중한 가치들인 쾌적한 환경, 창의적 교육, 국민건강, 민주주의와 같은 요소는 거의 고려조차 되지 않는 지표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 복잡계 과학의 연구는 이제까지 보여진 국민행복을 저해하는 방식으로 경제적 성장만을 주도하는 GDP(국민총생산)를 대체하는 새로운 지표의 수립을 위해 헌신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물질적인 공공성격의 투자(후원)가 뒷받침되어야겠지만 말이다. 복잡계는 이미 자연 대상물과 교통망, 통신망, 주가 예측, 심장 박동의 질서 등에서 질서가 있는 카오스 운동을, 무질서해 보이는 미세 개체들의 상호작용에서 불완전한 질서를 발견, 입증해왔다. 그리고 이들을 표현하는 비선형 함수를 포함하는 카오스 방정식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의 물리적 해석을 해내기도 했다.
인간 세상에 대한 불합리성과 혼잡성에 관심을 가지고 입자물리학, 통계 물리학자들이 복잡계 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물론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격변과 혼란으로 가득 차있는 복잡계로부터 정확한 예측을 기대하는 것이 분명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계 물리학은 인간 행동과 인간관계에 대한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질서를 발견하고 입증하는 데 나름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네 사람만 연결되면 전 지구의 인간이 연결될 수 있다는 ‘케빈 베이커 게임( Six Degrees of Kevin Bacon)이론’이 작은 세상 네트워크를 입증하면서, 몇 가닥의 무작위 연결이 국소적 무리로 이루어진 폐쇄사회를 전체에 열린사회로 만들 수 있음을 이 세계의 인간들에게 알려주었다. 잘 짜인 네트워크에서 이탈한 엉뚱한 단 몇 가닥이 거대한 조직이 모두 연결되도록 만든다는 물리학적 연구가 우리 포유류 인간 뇌의 신경 세포 작동 이해에 단서를 제공하였듯, 도로 설계와 통신망 설치에 유용한 상상적 도구가 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20세기 초 표현추상주의 회화를 이끌었던 잭슨 폴록의 물감을 질질 흘려 놓은 것 같은 그림이 모든 자연 현상에 본질적으로 내재된 특징인 카오스와 프랙털이 반영된 작품임을 물리학이 규명해냈듯, 무작위 시스템에 내재한 불안정하지만 규칙의 존재를 입증해내지 않았던가? 아무리 작은 스케일에서 들여다보더라도 미세에서의 구조가 전체 구조와 유사한 구조를 되풀이하는 자기유사성, 프랙털을 발견했듯, 인간 사회의 여러 현상들에서도 물리학은 분명 결정론적 시스템과 무작위 시스템 사이에 놓여있는 카오스 시스템을 규명해내리라 생각된다. 이 세계가 얼마나 불합리하고 불균형한가? 언제까지 측정할 수 없는 것이라 무시하고 측정 가능한 것들로만 이 세계를 왜곡하는 짓을 방관할 텐가? 과학이 지배질서인 주류에 편승하며 자기 이익에만 골몰한다면 아마 과학은 지금까지 학문으로서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출처: 본문 107쪽, 잭슨폴록과 카오스 부분 발췌】
인간의 심장 박동의 주기적 규칙성에 대한 신봉을 무너뜨리는 심장박동 간격의 불규칙성이 건강한 환자의 신호라는 과학적 발견처럼, 한동안 박동이 증가하다 반대로 줄어드는 요동을 반복하는 카오스 운동의 역동적 유연성이 이 세계의 자연 법칙에 숨은 질서임을 배운다. 질서와 균형을 통한 정적 평형상태의 항상성은 결코 생명 현상이 아님을, 오히려 정적 평형상태를 깨고 끊임없이 요동치고 변화하는 그것으로서의 항상성임을 알게 되었다. 나사(NASA)의 로켓 과학자들이 월스트리트에 금융공학자가 되어 입성하고, 경제주체들의 상호작용의 원리를 연구 규명하듯, 인간 삶의 균등한 성장과 생활터전의 건강성을 밝혀주는 지표를 왜 개발할 수 없겠는가? 국가의 공공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 기득권을 차지한 정치권력과 관료집단은 분명 이러한 실질적 삶의 반영에 나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 대중이 권력에 요구해야 한다. 과학이 국민의 삶에 기여하는 연구에 나서도록 말이다.
자연의 가장 창조적 혼돈상태, 어떤 계의 물리적 형상이 변하는 것을 상전이(相轉移)라 부른다. 물이 끓어올라 수증기로 변화할 때 물이라는 계의 큰 요동을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있다. 즉 요동이 크다는 것은 그 계가 어떤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는 순간이라 해석할 수 있다. 지금 한국사회는 혼돈으로 요동치고 있다. 나는 이 혼돈을 무엇인가를 창발하려는 인간사회의 새로운 상태로의 전환을 알려주는 신호로 여기고 싶어진다. 연주회 관객의 박수소리가 동기화되는 박수의 물리학, 노이즈가 필수인 인간 정상 뇌에 대한 연구, 흐르는 모래 알갱이의 자기조직화와 임계성이라는 현상의 발견으로부터,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사점과 자극을 얻었다. 한편으론 현재 과학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 인간 지식의 한계에 대한 구체적 사실을 비로소 직면하기도 했다.
세상의 많은 복잡계가 임의 연결망이 아니라 정교하게 연결된 독특한 특성을 지닌 구조체임도 아울러 명료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양자물리학의 대두와 함께 과학의 겸허함도 아울러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책은 세상 탐구에 나선 물리학, 나아가 과학의 동태보고서라 해도 될 것 같다. 아무튼 삶을 행복하지도 지속가능하게도 하지 못하는 GDP 성장 중심의 성장 경제를 대체할 새로운 지표의 개발을 위한 물리학자들의 전방위적 도전을 기대해 본다.
월스트리트에서 자기 이익에 투신하는 물리학자가 아니라, 인간 세계의 이익을 위한 과학자들의 출현이 있을 것이라 믿어본다. 연구되거나 진행 중인 물리학 연구의 진술들을 통해 새로운 발상의 촉발을 경험하고 또 다른 가능성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다가오는 새 십년에는 과학이 어떤 성취를 이뤄낼지, 2030년의 증보판을 기대해 본다. 2001년 이 책을 처음 쓰던 젊은 과학자가 이제 중년의 경험 많은 과학자가 되었을 터이다. 그의 연구에 인류 유익의 연구 성과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