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독서는 소설문학 읽기가 될 것 같다. 한국 문학으로 서윤빈의 날개 절제술과 윤고은의 불타는 작품두 권의 소설과 길 위에 찬사를보낸다는 허연 시집 불온한 검은 피, 그리고 해외문학으로 국내 독자들의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감상을 보이는 올해 노벨상 수상자인 욘 포세의 멜랑콜리아 ,Ⅱ』, 장웨이의 漁神을 찾아서, 줄리언 반스의 연애의 기억, 옛 감성이 떠올라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푸시킨의 시집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밀란 쿤데라의 소설론에 이은 이탈로 칼비노의 문학 강의, 이렇게 오직 문학에만 잠겨볼 예정이다.

 

 

한 권 예외로 역사서를 사두었는데, 문학만을 읽다 이야기들에 권태가 느껴질 때, 조금씩 펼쳐 읽기 시작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하이켈하임 로마사로마사를 서술한 책 중 그나마 가장 분량이 적은 책이면서, 알차게 저술된 책이어서 선택한 역사서다. 저자인 토론토그리스 로마사 교수였던 프리츠 M. 하이켈하임이 생전에 출간한 단 2 권의 책 중 하나이다. 고밀도로 응축된 내용들을 보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1,000페이지이니 매일 짬짬이 30페이지씩 읽으면 한 달에 읽어낼 수 있으리라.

 

윤고은의 불타는 작품은 도입부를 읽다가 잠시 접어둔 상태이다. 내처 읽게하는 어떤 의욕이 갑작스레 식었기 때문인데, 아마 다른 책들을 모두 읽고나면 새롭게 읽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서윤빈의 소설집 날개 절제술은 표제작보다는 단편 리튬에서 내 눈이 밝아졌는데, 주인공의 인과관계에 집착하는 과학적 논리, 즉 전자제품의 고장 수리에 동원되는 원인추구 접근 방식과 그의 훼손된 인간관계가 대비되어, 또 하나의 현대적 인간상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아무튼 천천히 그리고 세심히 읽어봐야겠다. 허연의 시집은 출판사가 일종의 리바이벌을 노려 재출간한 것 같은데, 작고한 손상기 화백에 대한 몇 몇 시(), 시집을 가득 채우는 비애(悲哀)의 유혹이었다고 해야 할까?

 

다섯 권의 해외문학 중 정작 의욕이 집중된 책은 중국 소설가 장웨이의 漁神을 찾아서, 이탈로 칼비노의 문학 강의이다. 장웨이의 책은 3편의 중편 혹은 경장편 분량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표제작인 어신을 찾아서는 순박한 인물들과 자연을 배경으로 동화적 주제를 펼치고 있어 모처럼 긴장을 놓은 채 글 속으로 빠져드는 평온함이다.

내 작업의 대부분은 무거움을 제거하는 것이었다고. [...] 무엇보다도 이야기 구조와 언어에서 무게를 제거하고 싶었다.(81)”라며, 다가오는 새 천년(21~29세기)의 문학의 특질에 대한 문학론을 여는 이탈로 칼비노의 책은 책의 옹색한 외장편집과는 달리, 문학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울림이 깊은 시선을 전해준다. 아무래도 내 것으로 체험하기 위해서는 몇 차례 반복 읽기의 과정을 통해야 할 것 같다.

 

철지난 낭만적 서정시인 푸시킨의 시집은 가끔씩 건조해진 마음을 달랠 때 읽으려 구입 한 것인데, 내 감성이 이를 어떻게 수용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욘포세의 소설은 무려 100여 쪽을 읽어나갔으나, 하나의 진전된 문장을 더하기 위해 그 반복되고 반복되는 동일 문장들의 누적을 읽는 것은 정말 지루한 인내를 요구하는 듯하다. 아무튼 이 정도의 인내 끝에 무엇이 있는지 더 나가 봐야할 터. 줄리언 반스의 작품들은 이미 모두 갖고 있는데, 새로운 장정의 유혹에 못 이겨 인간 생애의 절대 주제인 사랑의 기억을 얘기하는 책을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작가의 말처럼 그의 온전한 하나의 이야기(The Only Story)에서 고통과 매혹을 느끼게 될까?

 

11월은 어쨌든 내겐 문학을 읽는 달이 되었다. 아마 잠시만이라도 퇴행의 멍청한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혼란한 마음이 진정될 수 있을는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