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오페라 - 아름다운 사랑과 전율의 배신, 운명적 서사 25편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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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배경이 되는 화려한 무대들, 그리고 테마와 관련된 가수들의 복식, 아리아와 합창이 울려 퍼질 때 극장의 관객은 감동으로 전율합니다. 공연이 끝나고 극장을 나설 때도 그 여운이 좀체 사라지지 않고 배역이 열창한 사연들에 이입되었던 감응이 남아 맴돌던 기억을 지금에도 방구석에 앉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꽤 오랜 시간 공연장을 찾지 않았던 것 같네요. 책의 저자인 예술 큐레이터인 저자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접했던 공연의 혼돈과 감동을 전하고 있는데요, 이후 그의 끝없이 감동의 우물을 찾아다녔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인 듯합니다.

 

책은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곡인 <피델리오(Fidelio)>부터, 헨델이 런던 무대를 위해 특별히 만들었다는 이탈리아 오페라 <리날도(Rinaldo)>, 모차르트와 계몽주의 작가 디 폰테가 만들었다는 보마르셰 원작의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 베르디의 <나부코(Nabucco)>, 영어 오페라인 조지 거슈인 작곡의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 그리고 <마탄의 사수 (Der Freischutz)>, <살로메(Salome)>, 비운의 오페라 작곡가 비제의 카르멘 (Carmen)>에 이르기 까지 엄선된 25편의 작품이 주제별로 구성되어 그 놀라운 감동을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작품의 줄거리와 QR 코드가 붙어있는 주요 곡의 가사, 오페라 전문용어, 그리고 간략한 인문학적 해석이 곁들여져 있는 그야말로 오페라가 실린 방구석에 접하는 오페라 입문 가이드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접했던 아리아들을 품고 있는 익히 잘 알려진 오페라들인데요, 가수의 아리아에 실려있던 옛 감동을 떠올리기도 하고, 제겐 낯선 오페라의 경우에는 당대의 극장에 있음직한 관객들을 그려보기도 하며 줄거리와 가사를 음미해보기도 합니다.

 


제게 인상 깊게 다가온 작품은 혁명지도자인 플로레스탄이 왕당파 교도소장 피차로에 의해 감금되자 그의 아내 레오노레가 피델리오란 남성으로 변장하여 남편을 구출하는 이야기인 <피델리오(Fidelio)>의 오프스테이지(Offstage)에서 향수와 회상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트럼펫 선율의 애절함을 상상해 봅니다.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가 베버의 낭만적 오페라 <마탄의 사수 (Der Freischutz)>와 함께 가장 중요한 오페라 작품으로 여겨진다는 점에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들기까지 합니다.

 

저는 모차르트 작곡의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에 남다른 애정이 있는데요, 어쩌면 파리 초연에서 루이 16세와 귀족들이 부르르 치를 떨며 분개하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토리는 영주의 신혼 초야권이라는 터무니없는 계급의 횡포에 대한 시민적 분노를 집약한 작품으로 로맨스와 정치적 긴장감을 유연하게 녹여낸 작품이랍니다. 당대 신분제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익살과 풍자극이었으니 이 작품이 오늘날 여전히 시민대중의 각광을 받는 것은 그 역사적 배경 탓에 더욱 즐겁습니다. 모차르트는 그의 피아노 연주와 작곡에서의 천재성과 함께 사회적 약자들의 정의에 관심을 가졌던 인물로 보다 가까이 다가옵니다.

 


이와 더불어 그가 생계에 곤란 겪을 때 돈을 벌기위해 마지막으로 대중적 흥행 감각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는 <돈 조반니(Don Giovanni)>에 얽힌 사연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내용은 희대의 바람둥이 돈 조반니에 희생된 기사의 묘비인 흰 석상의 유령 이야기로 장르가 다른 여타 작품들에 즐겨 인용되어서 익히 알고 있던 작품입니다. 대중성을 고려한 권선징악이라는 뻔한 테마임에도 이 엄숙하고 비극적인 오페라는 작곡가의 생애와 관련하여 새로운 곡으로 다가옵니다. 또한 주인공의 아리아가 없는 작품으로 만든 모차르트를 한층 고결한 인물로 떠올리게 합니다.

 

한편 대본으로 사용된 원작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Salome)로 인해 더욱 유명세를 얻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작곡의 오페라 <살로메>는 순수와 타락을 넘나드는 모습으로 그려진 살로메로 인해 더욱 문제적이었다는데요, 쟁반에 받쳐 든 요한의 죽은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낭자한 피와 거기에 입 맞추는 살로메는 그야말로 광기와 폭력성이 넘쳐흐릅니다. 뉴욕 초연 후 곧 바로 공연이 금지되었으며, 영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비난이 이어졌다는군요. 이성의 도덕적 갈등을 초래하는 이 논쟁적 드라마를 한 오페라는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 정말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마침 대구국제 오페라 축제에서 이 작품을 공연했다는군요.

 

이제 이 책의 감상을 맺어야겠습니다. 오페라보다는 아리아의 한 곡인 섬머타임(summertime)으로 보다 더 알려진 조지 거슈인 작곡의 3막 영어 오페라인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는 영화화되기까지 했다는데 이제야 그 원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솔로로 끊어질 듯 다정하게 영혼을 다독이는 섬머타임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대중음악은 물론 오페라도 역시 대중을 향한 사회적 소통의 매체입니다. 그 음악의 희극적이거나 비극적인 선율과 함께 가수들의 노래와 무대 배경까지도 민중에게 시사(示唆)하려는 것이 있었습니다. <마탄의 사수>처럼 사랑을 위해 영혼을 거래하는 지고한 이야기에서부터 <카르멘 (Carmen)>과 같이 노동자와 하층민의 척박한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은폐된 진실을 환기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바빌론 유수와 같은 고대 역사를 복원해 인종과 민족적 차별의 부당함을 호소하기도 하고, 반면 가부장적 권위나 귀족과 왕의 지배권을 옹호하는 작품도 있습니다. <카르멘>의  '사랑은 반항하는 정신(L'amour est un oiseau rebelle)'을 부르는 엘리나 가랑카(Elina Garanca)의 열정적 아리아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물론 예술 작품을 이념적 가치로 단순히 규정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은 이 걸작으로 꼽히는 오페라들로부터도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달받습니다. 아무튼 이 스물다섯 편의 오페라 안내서는 모처럼 잃었던 감각을 깨워 메마른 제 정서를 조금은 되돌아보게 해 주었습니다. 극장을 다시 찾아 오페라를 감상하기 전 간략한 참고 자료로도 유용하고, 입문자들에게는 오페라에 대한 장벽을 허물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경로가 되어 줄 것 같습니다. 내친김에 공연 일정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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