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 문학의 이해
강필운 외 / 명지출판사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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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전에 써진 글들이지만 현재적이다. 15세기를 전후한 바로크 시대로 불리는 스페인의 신비주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글인데, 이 책 신비주의 문학의 이해를 찾아 읽게 된 이유는 이 세계를 인간의 언어로 묘사하는 데 거듭 실패하는, 그 불가능성에 도전하는 글쓰기의 궁극의 방법론으로써 비의(秘意)에 천착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들과 문학작품의 의지를 엿보기 위함이었다. 사실 여러모로 아쉽지만 신비주의 문학과 관련하여 이렇다 할 대중적 간행물을 찾기가 어려운 가운데 발견한 책이다. 품절, 절판되지 않아 읽어 볼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사실 신비라는 단어자체가 정의를 거부하듯이, 다분히 형이상학적인 언어로서 설명이 결코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서구의 신비라는 언어의 기원은 그리스어 ‘mistikos’라는 비밀의식에 결합된, 비밀에 찬을 뜻하는 형용사다. 즉 우리 인간의 눈이 닫혀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무엇이다. 이성이나 인간의 언어로 형언하기 어려운 것을 재구성하여 형상화하기 위한 개념이기도 하고, 인간 논리와 기존 사고 체계로 설명하기 힘든 비법, 계시나 현시, 애매모호한 비물질적이고 비논리적인 것과 관련된 무엇이기도 하다.

 

또한 이해 될 수 없기에 말 할 수 없는 무엇이어서 어떤 초월적 체험을 통해서만 접근 할 수 있는 몰아(沒我)와 같은 체험적 경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신비의 형이상학적 개념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인간이 보편적 이성이란 것을 저버리고 특수한 심적 상태에서 인식하는 앎, 즉 신비를 통한 인식은 그 가치가 인정될 수 없다는 버트란드 러셀의 무식하기 그지없는 주장의 대척점인, 이 지극히 우려스러운 관점에 설 수 밖에 없는 지점에 관심이 있다. 신비주의, 혹은 비의에 천착하는 것은 시대가 불안하고 기성의 체제가 불의해짐으로써 세계가 혼란해 질 때면 부상하는 신비, 다시 말해 현재의 억압적 지배체제에 가장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관심이다. 그것은 하나의 언어로 묘사하기 불가능한 것이며, 지독히 복잡하게 얽혀있고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음을 특성으로 하고 있기에 신비에 의탁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카프카가 그랬고, 랭보도 그러했으며, 바로크의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도, 뉴 바로크 문학의 기수이자 마술적 사실주의의 대표인 보르헤스도 신비와 비의를 통해 해로운 이데올로기를 떨쳐내고 새 시대를 열고자하는 염원을 표현했다. 이해 될 수 없기에 말해 질 수 없지만 느낄 수 있는 글쓰기, 간음한 여인의 판결을 요구하는 무수한 입들에도 불구하고 침묵의 언어로서 논란의 무의미성을 일깨우는 예수의 언어 아닌 언어의 행위를 이해하려는 것이다. 위에 예시된 작가들의 작품은 씀으로써 그 써진 것보다 더 풍부하고 더 광범위하게 현실을 묘사하고 있음을 깨우치게 한다. 즉 그들의 신비, 비의는 지성이 좌절하는 순간, 즉 설명이나 이치가 닿지 않으며, 인간적 물음이 무너지는 때에 등장하여 진실의 지대를 가리킨다.

 


이 책은 가톨릭의 개혁에 반대하던 스페인의 종교적 분위기 탓에 유일신적 종교적 신비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형이상학적 신비 관념에 머물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15세기 서반어 문학이란 한정된 공간을 다루고 있으니 불가피한 서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비주의 문학화와 소설화를 위해 천재적 예술정신을 투영한 미구엘 데 세르반떼스(Miguel de Cervantes)’돈 끼호떼의 미학적 예술창작의 소재로서 신비의 사용이나, 변하지 않고 의심할 바 없는 선험적 기표(God, 이데아, 세계정신, 자아, 질료 등등)의 추구와 현존, 실재, 진리와 같은 궁극에 대한 로고스중심주의 비판에서 시작된 호르헤 보르헤스(Jorge Borges)’가 실현하는 이 세계의 새로운 정렬을 위한 상상, 은유, 우화를 통한 유연한 사고방식의 투영으로서 신비의 사용은 문학을 이해하고, 그것이 말하고자하는 비의를 느끼고 깨우치는 데 긴요한 단초들을 알려주고 있다.

 

낯설고 터무니없어 보이는 돈 끼호떼라는 인물을 설정함으로써 세르반떼스는 16세기 제국의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는 스페인의 내면적 빈궁함과 불만족스러운 삶의 반영이라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풍조로서의 은유된 인물이다. 결국 이 연속된 은유의 서사를 구성하는 기사도의 세계, 모험의 여정, 특히 몬떼시노 동굴 모험은 현실 세계의 불가형언성(不可形言性)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문학적 수단으로서 신비를 사용한 가히 천재적인 미학의 작품임을 알려준다.

 

돈 끼호떼의 이 동굴 체험은 카프카의 단편 의 주인공을 연상케 한다. 두 작품에 사용되는 어휘들이 중세 신비가들이 신비적 비전을 체험할 때 사용하던 언어들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동굴, , 어둠, 짐승, 깨어남, 왕궁 혹은 성, 유리, 수정, 심장, 감은 눈, 만지다, 배고픔 , , 또는 이 세계에 대한 참된 이해를 향한 순례의 여정이자 이를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상징, 은유하는 글쓰기가 많은 부분 유사함을 발견 할 수 있다. 우리들은 이러한 비의적 글에서 세계의 비논리적이고 함축적인 그 어떤 특수성을 느끼게 된다.

 

보르헤스의 소설들 알레프, 픽션들에 수록된 바벨의 도서관, 바빌로니아의 복권등의 난해성이란 은유의 연속성이 발하는 신비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실과 환상으로 나누어진 이분법 파괴논리 자체가 주는 우리들의 습관화된 세계인식 틀의 무너짐으로 인한 것이 클 것이다. 그는 철자(알파벳)의 묘사력을 고갈시켜 현실을 보여주고자 하는 신의 글쓰기, 독자에게 전지전능함을 선사하려는 진정한 불멸의 책을 제안한다.

 

그가 제안하는 14개 단어의 조합으로 무진장하게 텍스트를 재배열함으로써 가능한 미래, 새로운 세계, 새로운 질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독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환상기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문학의 기능은 인간을 위한 일종의 꿈으로써 인간이 그로 인하여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돕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유연한 사고방식을 강조했다. 한편 토라를 해석하고 감추어진 뜻을 제시하기 위해 사용된 유태인들의 일종의 전통적 접신법인 히브리어로 ‘qabbalah’로 표기되는 카발라는 보르헤스 작품의 신비주의에 깊숙이 참여하여 이 세계의 비의를 해석하는 메커니즘으로 활약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신과 모세 사이에 구전되어 계승된 기억의 주석이자 해석인 카발라는 그야말로 본연의 문학, 비의를 간직한 진짜배기 글이기에 보르헤스가 이를 자신의 작품 기반으로 사용한 것은 어쩌면 새로운 현실 세계의 정립을 위한 불가피한 행위였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게 된다. 참 실재에 도달하기 위해 언어 이전의 신화적 조건으로 돌아가 그 진실을 규명하려는 모험이기도 할 것이다. 언어가 하나의 객체로서 진실 밖에 놓여있다는 인식에 동의하게 되면, 우리들은 불충분의 언어에 노출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오늘의 이 세계는 정말 하 수상하기만 하다. 이해력이 점점 좇을 수 없을 만큼 불의하고 혼돈으로 치닫는 인상이다.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며 시민적 자유의 계기를 마련하는 토대로서, 또한 무수하게 난무하는 교조적 신념들을 종합하는 통합적 능력으로서 신비주의가 발흥했던 인류사의 한 시기로 평가될 시대이기만 한 것 같다. 문학의 역할과 그 심원성이 더욱 요구되는 시절이다. 비의 가득한 문학 작품 출현의 기대가 지나친 욕심이기만 한 걸까? 고전 명작으로 거론되는 많은 문학작품들이 바로 이러한 비의(신비)로 가득한 이유일 것이다. 독서의 참 맛을 위한 긴요한 참고 문헌이 되어 줄 것 같다.

 

 

참고: 함께 읽으면 좋은 도서

 

1) 미구엘 데 세르반떼스: 돈 끼호떼

2) 호르헤 보르헤스 : 알레프, 픽션들

3) 프란츠 카프카 : 단편선집, , 학술원에의 보고, 변신

4) 아르튀르 랭보: 나의 방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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