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이상 책장에 손을 대지 않은 채 꽂혀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야릇한 제목을 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읽는 우연과 함께, 미스터리 장르의 소설책이 내 시선을 끌었다. ‘사토 기와무’라는 작가가 쓴 『테스카틀리포카(Tezcatlipoca』란 작품이 독자들을 열광케 했다는 홍보 문장, 그리고 ‘주술 자본주의’ 토대에 “칠흑같은 저승에 잠든 욕망”들이 벌이는 피의 전쟁이란 표현은 당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베르베르의 백과사전 98번 항목, 「아스테카 사람들이 상상한 세상의 종말」은 아즈텍 신화에서 다섯 번째 태양기인 현세에 앞선 네 번의 종말에 대한 간략한 신화를 담고 있다. 세계의 첫 번째 시기를 주관하는 신이 바로 ‘테스카틀리포카’다. ‘연기나는 거울(Smoking Mirror)’이란 의미를 지닌 전능한 신이다. 그의 가슴에 달린 거울에는 우주의 모든 것이 나타난다.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포함한 세상일을 모두 알고 있는 신, 그래서 이 신은 주술(呪術)의 신이기도 하다.
이 신은 전능한 신(神)답게 별칭을 무려 360가지를 가지고 있다. 즉 모든 신의 속성을 지닌 하늘과 땅과 바다의 신이며, 인간 창조자이며, 온갖 생명의 기원이다. 아즈텍인 들이 이 신을 경외한 것은 물론이다. 부귀와 영화를 누리게 하다가 단숨에 모든 것을 빼앗기도 하며, 불화와 적의, 전쟁을 부추기기도 하는 신.
사토 기와무의 소설이 마약밀매 조직의 잔혹한 전쟁을 소재로 하며, 이제까지는 없던 ‘피의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되는, 가장 추악한 자본주의, 그 검은 비즈니스의 내막을 상상을 초월하는 디테일로 그려내는 모양이다. “가장 강력한 주술의 도형인 마약 자본주의”라는 소설의 주제를 드러내는 문장이 아주 적나라하고 자극적이다.
그런데 또한 우연인지, 의도된 맞춤인지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의 걸출한 역작, 《cannibal capitalism(식인 자본주의)》이 『좌파의 길』이란 제목을 달고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프레이저는 "한계 없이 자본을 축적하고, 가치를 팽창시키려는 절대적 강박"을 내재하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비경제적 조건을 드러내며, "마치 전이되는 암처럼 도처에 전체 사회조직이 압도당할 때까지 인구 집단에 고통를 가하게 될 것“이라고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의 위기, 전 지구적인 파국을 회피하고 인류의 해방적 시나리오를 향한 행동을 만들어내기 위한 숙고이자 각성을 요청하고 있다.
주술의 신, 거울의 신인 아즈텍의 전쟁신 테스카틀리포카는 신의 의지를 넘어서려는 이들 자본주의의 마법진을 펼치는 인간들에게 과연 어떤 응징을 내릴까? ‘마약자본주의’, 그야말로 ‘식인자본주의’의 그 폭력적 욕망의 전형일 것이다. 아마도 사토 기와무의 소설, 낸시 프레이저를 함께 읽으며, 자본주의, 그 탐욕과 무자비함과 잔혹함의 속성, 그 태생적인 윤리의 결여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