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바이올린 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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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바이올린의 선율이 들려오는 안개 낀 물의 도시 베네치아와, 바이올린의 장인 에라스무스의 주검을 실은 운하에 떠 있는 특이하게 검은 곤돌라의 타나토스적 아름다움으로부터 누군가의 마지막 여행을 음울하게 상상한다. 명치끝을 아리게 하는 슬픔, 그러나 마치 무언가를 알아차린 것만 같은 기쁨이 뒤 섞인 그런 정념에 휩싸인다. 


새벽안개가 미로같은 이 도시의 골목을 뒤덮고 섞어 놓을 때, 가장 놀랍고도 이상한 도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나는 수면에 반짝이는 베네치아의 빛을 발견한 느낌에 흠칫 놀라기도 한다. 음악을 자신의 삶으로 옮기려는 지고한 예술적 지향에 온 존재를 내맡긴 두 천재의 이야기에 깃들어 있는 세상의 모든 고통들과 행복, 그리고 기쁨의 외침들에 귀 기울이며, 진정한 자유와 자기완성의 기쁨이란 무엇인가를, 자아의 감옥을 초극하는 주체적 체험으로서의 존재 양식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단 하나의 존재 이유만을 갖게 된, 자신의 생인 영혼을 음악으로 옮기는 것, 그것은 음악을 삶으로 옮기는 것이라는 바이올린 연주자 요하네스, 바이올린 제작 장인 에라스무스의 삶의 이야기는 사랑과 예술의 지고함, 시간의 인내를, 오랜 비극으로부터의 깨어남으로 어느덧 나를 인도하는 것만 같다.

 

장인(匠人) 에라스무스의 산마르코 광장(San Marco) 지척의 모세 거리의 한 저택벽에 걸린 검은 바이올린, 그가 사랑에 빠졌던 페렌치 공작의 딸 카를라의 가장 순수하고 가장 신적인 목소리를, 그녀만을 위해, 그녀의 목소리를 소유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제작한 흑단으로 제작한 바이올린은 내면에 의해 보증되는 자기창조로서의 존재양식과 자극의 무한 욕구에 종속된 소유양식의 폭력성을 절망적 대비를 통해 사랑과 예술의 존재 방식이란 무엇인지, 우리네가 쫓는 것의 실체를 드러내 보여주는 듯하다.

 


비바람이 불고 천둥 번개가 치는 날, 그는 완성된 바이올린을 시험하기로 결심한다. 카를라와 모든 것이 똑 같은 검은 바이올린의 울림이 확인되는 날, 카를라는 생사의 기로에서 싸우고 있었다. 아프기 시작한 그 흉한 밤에 카를라는 목소리를 잃고 끝내 사망한다. 사랑을 소유하려는 것, 음악을 물질에 가두려 한 행위가 사랑하는 여인을 영원히 잃고 자신마저 파괴하는 행위가 될 줄을 그는 알지 못했다.

 

단 한 번의 연주 뒤에 벽에 걸린 채 다시는 연주되지 않은 검은 바이올린, 에라스무스는 그 비극적 비밀과 함께 요하네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한다. 예술과 사랑, 아니 삶의 그 어떤 대상이든지 그 본성에 일치하는 행위의 일체성이라는 존재 지향성, 공존의 즐김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는 꽤나 어려운 이해가 되었음을 발견토록 하려는 것만 같다. 장례식에서 돌아와 분노에 휩싸여 바이올린을 땅에 내팽겨치는 요하네스의 행위와 그때 땅에 닿으며 깨지는 악기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은 어쩌면 소유로부터의 해방, 존재 자체로의 돌아감의 외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요하네스는 에라스무스와 검은 바이올린의 이야기를 애써 지우려 하며, 또한 천상에 들려온 듯 했던 여인의 목소리, 그가 작곡하려 했던 오페라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그는 31년이 결렸다. 마침내 완성한 음표들이 적힌 노트를 벽난로에 던짐으로써, 일생의 작품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그는 비로소 자기 삶의 이야기와 결별 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허구적 혼합물과 뒤엉킨 자아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계는 자신을 확인하는 경험적 토대가 물질, 대상의 소유라고, 자신임을 확인하는 방법은 오직 소유라고 말한다. 그러하다보니 지식, 예술과 장인의 창작물조차 소유 양식이 자리 잡고, 자기실현의 장애물이 되어 아집과 소외와 굴종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그래서 세상에는 죽음과 폭력, 비극만이 휘몰아친다.

 

단 한 번 주어지는 인생이란 무대에서 펼쳐지는 생()의 의미를 무수한 성당들이 아침 삼종기도의 종을 울리고, 안개가 조금씩 피어오르는 사이로 아침 태양의 빛이 튀어 오르는 바다의 여왕인 도시, 베네치아의 신비로움과 함께 읽어나가는 두 천재의 이야기에 취한 읽기였다. 삶의 행복이란 진정 무엇인지, 그 고즈넉한 사랑과 예술의 이야기에 침잠케 하는 시적 언어들에 휘감기는 시간을 조금은 오래 붙잡고 싶어진다왠지 이 감응에서 깨어나기 싫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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