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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계절 ㅣ 암실문고
페르난다 멜초르 지음, 엄지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평점 :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추천 글이 아닌 비판이 된 점 너그러이 해량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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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을 ‘문학’이라 부르는 것에 주저하게 된다. 인간의 언어로 묘사될 수 없는 것을 극단적으로 미세화 된 사실의 이미지들을 그 어떤 여과도 없이, 마치 끔찍한 어둠과 혈흔만이 낭자한 참혹의 살해 장면을 찍는 스너프 필름, 이것을 초과하는 역겨움으로부터 도주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페르난다의 글을 나는 결코 문학이라 칭하지 않을 것이며, 서사 또한 초라하기 짝이 없다. 멕시코의 변방 지역에 유전이 개발되고 정유공장이 들어서자, 인간 파리 떼가 몰려든다. 남색꾼, 매춘부, 강도, 살인자들이 자신의 쾌락과 이익 이외에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이 수단과 도구에 불과했던 지역이었으니 그야말로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원시 야만의 무질서가 정상이 된 곳이 된다.
돈을 빼앗기 위해 무자비하게 대상을 살해한다. 경찰서장은 살인자의 동기나 공범들의 연루에 관심이 없다. 피살된 마녀(여장 남자)의 전설처럼 내려오는 금화(돈)의 행방을 찾는 데 혈안일 뿐이다. 참담한 무질서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는 곳. 자유를 의미없이 떠드는 인간들, 국가의 각종 제약과 규제에 반대하며 오직 개인 자유의 지상을 주절거리는 인간들 세계의 전형적 모습일 것이다.
작금의 한국 정부는 사망한 청년들에 대해 ‘자유’의지를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한다. 국가의 권력이 자기 이익에만 관심을 지니며, 모든 국가적 책무를 개인 자유의 책임이라 회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세계의 종국은 결코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불과 40년 전까지의 한국 사회의 현실이었다. 이 퇴행에 열광하는 인간들, 아마 곧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두고 볼 일이다. 자유의 의미조차 모르는 인간들이 자유를 외친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1225/pimg_7290341033683317.jpg)
마리화나를 비롯한 각종 마약과 알코올은 모든 인간들의 일용할 양식이고,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것이 불가능한 곳이다. 매번 애초에 책임감이란 존재치도 않는 남자를 거듭하며 싸지른 수많은 자식들을 가장 먼저 낳은 아이에게 양육을 뒤집어씌우며 학대하는 여자들 외에는 존재치 않는 까닭이다. 여장 남자인 지역의 외딴 곳에 있는 마녀의 집은 이러한 인간들의 탐욕이 방출되는 장소이다. 돈이 필요하면 갈취하거나 살해하면 되며, 성욕을 채우려면 폭력으로 제압하여 도구화하면 그만이다. 오직 욕구만이 넘실대는 곳, 인간의 문명이 사라진 지옥도도 이 지경일 수 없을 것만 같다.
대체 작가는 무엇을 기대했을까? 스너프 필름식 포르노와 살해의 묘사로 가득채운 이 페미니스트 작가의 서술의도에 공감할 수가 없다. 여기서 그 어떠한 역설적 윤리를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인지? 기이하고 뒤틀린 비인간화된 존재들로 꽉 들어차 틈입할 그 어떤 공간도 없다. 출판사는 책에 대해 지나치게 문학적으로 미화된 언어들을 사용하며 균형적 시선을 취하지 않았다. “문학의 가장 어두운 성취”라니! 이것이 어찌 문학일 수 있다는 말인가!
많은 독자들이 상처 받을까 두렵기조차 하다. 고작 인간의 동물성, 그 혼돈의 원시성을 드러내기 위해 이따위 이미지로 빼곡하게 채우는 것만이 방법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된다. 인간 사회의 무질서와 폭력의 적나라한 고발들은 항상 있어왔던 고발이다. 글자 아닌 글자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은 저널리즘의 선정성과 외설성만 있다. 난 의도를 발견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나쁜 글을 빨리 내 영혼에서 떨쳐내고 싶은 생각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