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단상은 창작과 비평2021 겨울호(통권 194)에 게재된 식인 자본주의 부상이라는 제하의 낸시 프레이저와 마르띤 모스께라의 대담 내용에 대한 소회임을 밝혀둡니다.

 


정치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칼 마르크스'의 사회적 인과성은 경제적 토대로부터 법적 ,정치적 상부구조로 흘러가는 것이라는 '토대-상부구조(base-superstructure)'에서 경제적 토대에 비경제적 배경 조건까지 포함하는 확장된 시스템을 주장한다. 자본주의란 경제적 토대만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적 하위 시스템과 그 가능성의 필수적 배경조건인 "사회적 재생산, 비인간 자연, 공공재화 등등(369)"과의 관계성을 사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A. 자본주의 토대 개념의 확장 필요

 

이 필수적 배경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작동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노동 인간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식적 경제 바깥에서 새로운 세대를 낳고, 돌보고, 사회화하고, 교육하는 일과 같이 경제적 토대에 편입되지 못한 이 비경제적 조건은 의심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토대이다. 이것이 부재하다면 사회적 재생산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코로나19'비인간 자연'이라는 비경제적 조건이 전체 경제 시스템을 얼마나 수축시켰는지, 자본주의적 질서에 대한 회의를 얼마나 불러 일으켰는지에 대한 훌륭한 사례가 될 것이다. 이같이 배재하였던 생태적 기능 장애가 자본주의 경제와의 인과적 역동성을 가지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러한 반론이 가능할 것이다. 자연 같은 비경제적 영역을 조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이야말로 본디 자본주의적 특성아닌가?라고. 따라서 이러한 하위 시스템은 자본주의 토대에서 배제하여도 언제든 마음대로 사용, 통제할 수 있다는 자만이이 있다. 낸시 프레이저는 "한계 없이 자본을 축적하고, 가치를 팽창시키려는 절대적 강박(370)"을 내재하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비경제적 조건들을 의지대로 굴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녔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태적 재생산의 시간성은 자본주의 토대아래 있지 않은 것(371)"처럼 이들의 능력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음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자본은 개별 인간의 의지보다 강하고 자본의 가치를 스스로 확장하도록 동기화되어 있어 '자본 의지'를 관철한다. 그리고 자본 배경 조건을 이 의지에 의해 변경시키고 말테지만 역시 한계 내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결국 자본주의 경제적 토대에서 소외된 개별 인간과 비인간 자연이 자본 의지의 작동을 제어할 수 있는 동력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B. 자본주의 위기를 이해하는 방식

 

지구 온난화, 생태위기는 이미 오랜 기간 조짐을 드러내왔을뿐아니라 생생하게 감지되고 있는 실상임에도 자본주의는 그 토대인 비경제적 필수 조건을 외면하거나 눈에 보이는 것, 감각되는 것에만 미봉책으로 나서곤 했다. 즉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의 위기, 전 지구적인 총체적 위기로 감지하지 않는 것이다. 낸시 프레이저의 토대확장 이론은 바로 이 지점을 시정하는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코로나19가 드러낸 돌봄 노동의 실태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필요 노동시간과 에너지를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 임금을 잡아먹는 것을 우리들이 목격하게 하였다. 부유계층(의사들의 정부의 의료 공공정책에 대한 반항)에 제압당해 시민을 향한 중대 정책이 좌절되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보아야 하기도 했다. 거버넌스 위기다! "마치 전이되는 암처럼 도처에 전체 사회조직이 압도당할 때까지 인구 집단에 고통을 가하게 될 것(373)"이다. 위기는 '발전적 위기''획기적 위기'로 구분되기도 하는데, 발전적 위기란 특정한 축적 체계나 단계에 국한하여 현안 위기에 대한 문제 해결이라는 땜질식 처방의 이해이며, 획기적 위기란 모든 단계와 총체적 현실 자체에 모순이 내재하고 있어 시스템이 위기의 경향을 품고 있다는 관점이다.

 

전 지구로 확산된 미국 발 금융대란이 발생하자 파생금융 상품에 대한 무분별성이라는 특정 문제만이 원인이라 보고 잠정적 문제 해결을 끝냈다고 판단하는 것이 작금의 행태이다. 결코 근본적 모순은 전혀 해소되지 않은 채 축적과 이윤추구를 향한 강박적 욕망이라는 무분별한 자본 의지만이 작동하고 있다. 낸시 프레이저는 파국적 위기를 겁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견되는 파국을 회피하고 인류의 해방적 시나리오를 향한 행동을 만들어내기 위한 숙고이자 각성의 요청이며, 획기적 위기 인식으로의 전환 요구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자본주의 가치법칙을 폐지하고, 착취와 탈취를 종식시키며, 민주적 계획과 시장간 의 관계를 재발명할 수 있다. 한편 서로 적대하는 독재자들, 전 지구적 권위 체제하의 막대한 사회적 퇴행을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인간적이라는 것들이 남아나지 않을 때까지 사회가 스스로를 파괴하는 위기 지속의 가능 속에서 살아 갈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노동권, 녹색 환경 운동가들, 돌봄과 젠더 투쟁에 참여하는 사람들, 권위주의적 기득권에 맞서는 이들이 연대해야 한다. 모두 자본주의 필수 배경인 토대이다. 다양한 이해들을 하나의 통일된 주체로 규합하는 정치적 과제를 위해 모여야 한다. 전체주의적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지만, 포퓰리즘은 이미 보수 우파가 선점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 성격은 전혀 같지 않은 상태로서.

 

C. 삶의 문법을 만드는 힘을 누가 가졌는가?

 

포퓰리즘은 대중 선동적이라는 의미를 씌우는 이들이 누구인가? 우파가 선점한 포퓰리즘과 구분되는 좌파 포퓰리즘은 절대 필요하다. 우파는 인간 집단을 삼분하여 대중적 우위를 점하려 한다. 피 빨아먹는 엘리트, 기생하는 하층 집단. 그리고 이 둘 사이에 선량한 사람들로 나누어 적들을 특징적이고 실체적 용어로 정체성 정치를 벌인다. 예를들어 실업급여 수급자를 비난하기 위해 '게으른 실업자', 퀴어 집단을 분열시키기 위해 '동성애 음모집단'으로 부르는 식이다. 낙인을 찍어 경계에서 배제하는 악의적 포퓰리즘 정치이다.

 

반면 좌파 포퓰리즘은 방대한 다수인 인민 대중과 이들로부터 막대한 부를 빼앗아 축적하는 소수의 과두 기득권 집단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을 취한다. 즉 시스템 내의 역할이라는 기능적 정의를 통해 사회적 진실에 접근하는 포퓰리즘이다. "누가 누구의 목을 밟고 있는지 사회적 위계 지도가 분명해 질 것(378)"이다. 우파의 정체성주의 포퓰리즘은 집단과 계층을 분열시켜 자기 기득권을 항상적으로 유지하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좌파가 우파의 포퓰리즘과 싸우기 위해서는 투쟁과정에서 시스템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조작되고 사용되고 있으며, 그 영향이 어떻게 파급되어 대중적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에 대해 교육시킬 수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계급투쟁을 확장하여 '경계투쟁'을 주장했다. 투쟁이 그저 잉여가치의 분배방식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무엇이 우리네 삶의 문법을 결정하는 가'의 물음이었다. "자연, 공공재, 규제 역량, 정치적이라 간주하는 법 형식을 둘러싼 투쟁 또한 자본주의 시스템 핵심을 둘러싼 투쟁(383)"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공동체에서 자본이 마음대로 행동하게 되는지 알아야 한다.

 

일례로써 법인세 감면 법안의 입법 제의가 있었다고 하자. 여기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누가 삶의 문법을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가?하고. "이 질문이 정치적 의제에서 은밀히 제거되고 몰래 자본과 축적을 책임지는 이들에게 맡겨(384)"진다면 악당에게 총칼을 쥐어주는 것 아닌가? 경계투쟁이란 사회적 문법이 조직되는 방식에 대한 헤게모니 선점의 싸움인 것이다. 연대해야 한다. 삶의 문법을 만드는 이들은 방대한 대중이어야 한다. 자기 집단을 분열시키는 세력을 지지해서는 진정 악당들을 꺾을 수 없다. 논쟁적인 이 담론은 오늘 우리 대중들에게 포스트 자본주의, 민주적 생태 사회주의를 향한 새로운 체제를 사유케 하는 귀중한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참조: 식인 자본주의(cannibal capitalism)

 

미국 뉴스쿨 정치철학 교수인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가 자본주의가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침범함으로써 생존조건을 파괴할 수 있다는 전망 하에 자본주의의 임박한 재앙에 명명한 개념이다.   국역본은 <좌파의 길>로 번역되어 2023. 2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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