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의 소설들은 여성 서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평론가 김미현의 말처럼  진행중인  "이 세계의 다양한 여성의 삶을 담아내기 위한 '천일 야화'엮기"의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이 변론적 해설이 조남주의 소설을 긍정하게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럼에도 비판적 시선을 배제할 수도 없습니다.  비록 '다양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일지언정 내겐  여성의 삶이라는 동어 반복적인 피로감을 피하기 어려웠으니까요.  그런데 이 작품집의 두 번째 수록작인 작가의 경험적 소재를 차용한 듯한 1인칭 소설인 오기 읽다가 문득 2021년 여름호 창작과 비평통권 192호에 실린 팬데믹 시대의 목소리를 함께 듣는 일이라는 김태선 문학평론가의 글 중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타자의 목소리, 특히 고통을 듣는 일은 타자의 삶에 참여하며 나를 개방하는 가운데 서로가 의존하는 연결된 존재라는 걸 느끼고 배우는 과정이다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하고그 다음에 상상해야 한다."     

창작과 비평통권 192팬데믹 시대의 목소리를 함께 듣는 일51,김태선

 

 

그것은 내 마음을 열어 놓지 않고서는 타인의 고통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는 글이었죠. 열려야 그 목소리가 발하는 문제가 나의 것이 될 여지가 생기는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내가 마음을 닫아놓았으니 감정이입이 될 여지가 없었던 것이고, 더구나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한다는 지적에  한참을 내 속을 들여다봐야 했습니다.

 

읽고 지나쳤던 작품들을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단박에 어떤 감응으로 소설 속 그녀들의 목소리가 내면에 속속들이 울려 퍼졌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적어도 문제로서 인식하려는, 문제로 수용하려는 준비된 마음은 갖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리곤 이 작품집의 구성이 눈이 들어왔습니다.  

 

첫사랑 2020의 초등학생 소녀에서 가출의 미혼 여자여자아이는 자라서와 같은 학부형이 된 여자오로라의 밤의 주인공인 50대 중년 여자,  매화나무 아래의 노년의 여자에 이르기까지 연령과 세대에 따른 그녀들이 마주한 여성으로서의 삶의 문제들이 이야기되고 있다는 발견이지요. 그래서 각 작품마다 그 고유의 문제의식이 다른 감응을 불러일으킵니다. 즉 각각에 대응하는 책임의 문제를 생각케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그 분량적 속성으로 인해 단편 소설이 지니기에 수월치 않은 서사적 재미가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 수록 단편인  첫사랑 2020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서연의 첫 사랑이 코로나 팬데믹이  어른들의 세계인 경제적 타격으로 다치게 되는 그 연결성이 그려지고 있는데요코로나-19가 초등생의 사랑에 미치는 영향이란 발칙한 소재로 사회의 많은 이들이 지금 겪는 고통의 현실을 경쾌한 필치로 풀어냅니다. 일본관광 여행업을 아빠 사업의 어려움으로 서연은 사귀기로 약속한 승민과 카톡도, 학원도 같이 하지 못하게 됩니다. 두 아이의 사랑 전선에 먹구름이 끼는 것이죠"코로나 때문에 몇 번 만나지도 못했는데, (...) 얘가 헤어지재요!" 소년은 소녀의 마음을 읽지 못해요. 타자의 문제 자체를 모르는 것이죠. 아니 타자의 삶에 참여하는 방법을 아직은 모를 때여서가 아니었을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소설집을 여는 첫 번째 단편은 치매요양병원에 있는 큰언니를 보러 다니는, 다 늙어 '말녀'라는 이름을 '동주'로 개명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매화나무 아래입니다금주, 은주, 그리고 말녀로 이어지는, 작명에 있어서도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남녀차별의 인식이 배어있습니다. 그런 그녀가 이런 푸념을 합니다.  "아버지의 그늘도, 남편의 굴레도 참 지긋지긋해놓고 그래서 도망친 게 아들의 어깨였다."고 말이죠이러한 가부장적 질서의 억압적 삶에 대한 반성적 사유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환경에 익숙한 삶을 살았던 자신의 한계 또한 직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이 더욱 풍성한 의미로 다가오게  하는 것은 병원 휴게실 창 너머 매화나무 가지의 자줏빛 겨울눈에서 시작되는 무한한 순환의 깨달음이 주는 숙연함 같은 것이었습니다돌봄의 문제, 가부장적 굴레, 생명에 대한 견고한 믿음 등 정말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어요.

 

아마 내 삶의 세계와 가장 친근했던 작품은 오로라의 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아내와 소설 속 쉰일곱 살 주인공의 연령적 공감 때문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더 이상 타인과 생활습관, 태도, 취향, 성벽같은 것을 맞추고 이해하고 양보할 여력이 없는 지금 내게 남은 가족이 어머니라서 다행이다."라고 말이죠.  시아버지도 남편도 모두 죽고 시어머니와 며느리인 ''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는 직장 여성인 딸의 아이를 봐줄 것을 거절합니다그리곤 시어머니와 둘이 캐나다 옐로나이프로 오로라를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죠.

 

이 소설은 세 세대에 걸친 여성의 삶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여성에 부과되고 강요된 질서가 각기 다른 세대의 사람들임에도 여자여서 지녀야했던 속박, 그 굴레에 대한 공감이 일치하고 있어요.  ''가 시어머니와 함께 이국에서 밤하늘의 영롱한 오로라의 빛에 감탄하며 기억을 나눌 수 있는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하나 아쉬운 점이 있어요. 딸의 아이를 돌보는 것이 딸 부부의 문제라는 극히 개인적 책임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은 인상 때문입니다. 물론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의 희생을 요구하라는 퇴행적 요구가 아니라  사회적 장치와 연결망을 필요로 하는 공동의 작업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졌으면 하는 것이죠.

 

단편 오기에 대한 감상으로 마쳐야겠습니다아마 짐작컨데  여성주의의 문제작인 82년생 김지영이후 그녀 이름은의 발표에 이르러 작가의 소설에 대한 무성한 비판적 시각들이 있었던 것에 대한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작품이란 인상을 받았습니다소설가인 주인공 초아는  "소설은 너무 많은 말들에 휩싸였다."고 기억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소설가 작품으로서 표현하려 했다는 점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작중 소설가 초아의 작품에 대한 악플 사건과 관련하여 고교시절 선생님이었던 지방대 문학교수의 요청으로 진행했던 초빙강의 후 허물없이 들려주었던 선생님의 성장기 가부장의 폭력등에 얽힌 얘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 얘기는 초아의 가족사와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가 된 것은 이 얘기가 발단이 되어 써진 소설이 발표된 것이고, 선생님은 이것에 대해 "어떻게 남의 얘기를 고스란히 훔쳐다가 쓸 수가 있어?"라고 초아를 비난합니다. 초아는 흔한 일이라고 답변하죠이에  선생님은  "세상 여자들의 삶이 모두 다르다는 것, 제각각의 고통이 버티고 있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라며 초아의 무지를 힐난하죠여기에는 작가 조남주의 목소리가 끼어들어 있다는 인상입니다.

 

허구인 소설이 현실의 엄혹함 앞에서 무력해진 경험 때문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러나  왠지 여성의 삶의 문제에 대한 다양성이라는 이 문제의 환기에도 불구하고 1인칭 세계의 주관성 탓에 윤리적 정당성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다는 것이죠. 막연하지만 독자인 저는 어떤 새로운 자기, 새로운 삶의 기대를 보여주는 초아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이번 작품집은 소설가 조남주의 작품에 대해 낯설고 새롭게 읽기를 시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실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들에 대해 제 마음의 문이 제대로 열리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까요?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서 덮고 지나가기 쉬운 돌봄과 희생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직시에서부터 여성들 스스로 가부장적 주체가 되는 마음에 숨은 기만과 허위의 응시와  자신의 삶의 조건에 구속되지 않고 그 너머의 삶을 꿈꾸는 주체의 형상을 제시하는 것과 같은 진중한 문제제기와 해법의 가능적 사유들이 가득한 작품집이라 하고 싶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