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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공동체 - 미세먼지, 코로나19, 폭염에 응답하는 과학과 정치
전치형 외 지음 / 창비 / 2021년 6월
평점 :
“같이 사는 것은 같이 숨쉬는 것이다. 혼자 쉬는 숨은 없다.” - 15쪽
공기에 대해 과학과 사회정치적 통합 시각을 전달하는 대중서는 아마 첫 출간물이 아닐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은 곧 삶 그 자연적 속성이기에 이 행위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여야 한다는 생각이 낯설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상황은 지극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며, 외교적이고 과학적인 문제로 공기를 다각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공기의 흐름을 타고 비말이 타인에게 전달되어 감염되는, "공기의 위기, 숨바꿈의 위기, 공동체의 위기"를 가져왔으니 말이다.
우리는 혼자서 결코 살아갈 수 없으며, 더구나 공기를 호흡하지 않고서는 단 일 분을 견뎌내기도 힘든 존재다. 결국 공기는 모든 인간에게 사회적 관계의 토대이고 생물학적 기본 조건이다. 제대로 된 인지가 있기도 전에 이 기본적인 토대가 흔들리는 위기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미세먼지, 황사, 각종 유기화학물질과 질산염등 대기오염 물질의 증가는 이제 적절히 통제되지 않는다면 재앙적 상황이 될 지경에 이르렀으며, COVID-19는 물론 이전의 사스나, 메르스등의 진지구적 감염확산은 인간의 사회적 접촉을 회피토록하는, 즉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함께하는 상황을 용납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에 갈수록 뜨거워지는 공기는 이에 노출된 채로 노동을 해야 하는 약자들에게 또 다른 재난이 되고 있다.
책은 이처럼 공기를 대기오염의 측면, 전염병 확산의 매질, 그리고 뜨거워진 공기, 즉 폭염의 재난적 측면에서 각자도생의 공기가 아닌 '공동체를 생각하는 공기'를 사유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은 즉각적인 방법으로 자신만의 울타리를 치고 탈공해, 신선한 공기가 있는 교외의 장소에 집을 마련할 수도 있다. 또한 개인을 위해 휴대용 공기청정기를 비롯한 공기가전시장이 활황을 맞이하는 것처럼 개개인의 사적 공기 관리를 도모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기는 내 앞의 공기만이 아니라 한반도의 공기, 호흡 공동체의 공기를 도외시할 수도 없으며, 각자도생의 공기를 합산한다고 전체의 공기가 되지도 않는다. 개인의 수준을 넘어서는 공동의 대응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드는 각자도생의 이기적인 몸부림을 넘어서는 사회적, 정치적 관심이 집중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각자도생의 공기를 모두 더하는 것만으로 공동체의 공기를 지키는 일이 실현되지는 않는다." -60쪽
개인이나 기업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과학을 이용하고 그 산물인 제품을 개발, 활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동체의 공기는 누가 관리해야 하는가? 중국발 황사에서부터 미세먼지를 관리하기 위한 과학기술과 그 예산이 요구되지 않는가? "미세먼지의 생성, 변화, 소멸 기작을 규명하는 연구"가 수행되는가하면, 당장의 대책으로 학교 교실마다 공기청정기와 미세먼지 측정기를 보급하여야하며, 무분별한 산업화, 느슨한 규제, 부실한 제도를 보완하여야 하고, 인접한 국가들과 '공기 외교'를 위한 노력도 하여야 한다. 이들 노력을 모두 경주한다고 하더라도 당장 한반도의 공기가 청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실로 많은 자금과 길고긴 과학적 노력이 요구된다. 여기에는 지식이 경합하고, 가치가 충돌하며 제도의 도입을 둘러싸고 논쟁이 그치질 않는다. 엇갈리는 응답에 조율하는 기술, 어떤 요구에 가장 먼저 응답할지 결정하는 호흡공동체의 가치, 그 중요성이 높은 강도로 오늘의 사회를 압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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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연으로 인한 고통이 인격권의 침해로 인정되고, 미세먼지가 사회재난의 범주가 되는 법안이 통과되었지만 우리의 '공기 과학'은 이제 초보상태를 막 벗어나고 있는 정도이다. 호흡공동체를 관리하는 과학에는 많은 비용이 소용될 뿐만 아니라 그 결과도 답답하리만큼 느리며, 즉각적인 이윤을 제공하지도 않는다. 돈이 안 된다고 공동체의 생존을 외면하는 과학, 기업, 정부(정치)로 머물 수 만은 없는 것 아니겠는가? 이제 한반도의 공기는 정치(精緻)하게 관리되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음을 인지해야 한다.
"가난이 고인 곳에 열기도 고인다." - 194쪽
한반도의 공기, 공동체의 공기는 이같은 대기오염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느덧 아열대 현상을 보이는 여름의 기온은 기상청장의 언급처럼 "5개월 여름시대를 준비"해야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폭염도 재난의 영역에 돌입했다는 인식이다. 여름이 점점 뜨거워지고 길어질수록 이 뜨거운 공기를 피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대책이 요구되는 것이다. 폭염이 "누군가에게는 잠깐의 불편으로 지나가는 온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사를 가르는 열기로 작용한다." 뜨거운 공기가 직업에 따라 다르게 체험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폭염시민 모니터링'에 의한 택배기사와 건설노동자의 체험 온도는 관측기온보다 13.5도에서 21도가 높을 만큼 노동자가 겪는 '열(熱)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최고온도에 의한 법적 강제력 없는 작업중지 권고가 지금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이를 따르는 기업이나 현장은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노동력 착취에 혈안이 된 이익중심 사회에서 누가 노동자를 놀리겠는가? 자신들은 에어컨이 작동하는 서늘한 사무실에서 체감온도 50도를 넘나드는 중노동을 강요당하는 현실을 외면하는 사회이기를 이제라도 그쳐야하다. 독일은 노동강도를 기준으로 한 체감온도를 세분화하여 인지온도를 기준으로 작업중지를 마련하여 실행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도 이같은 기준과 법적 강제력의 도입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서울 평균 기온이 섭씨 28.1도를 넘어서면 1도 상승할 때마다 사망율이 9.6퍼센트씩 증가한다고 한다. 온열환자로 분류되는 폭염에 의한 매년 사망자 수가 COVID-19의 사망자수보다 많다면 이는 재난인가 아닌가? 아마 에어컨도 없는 닭장같은 초소에 꼼짝없이 갇힌 상태에서 24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경비노동자에서부터 쪽방촌의 노인들, 폭염 속 택배물품을 나르는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뜨거운 열기를 피하지 못하는 이웃이 우리 주변에는 무수하다. 일부 지방자치체에서는 '쉼터'를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마저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운영이 중지되었거나 폐쇄되고 있는 실정인 것 같다. 우린 개인으로서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일원이다. 뜨거워진 공기 또한 공동체가 그 대책을 강구해야만 하는 국가적 재난으로 인식해야 함이다.
도심의 열기는 더욱 극악하다. "에어컨 실외기가 내뿜는 열기, 건물 벽 반사광선, 아스팔트가 머금은 열기," 고층빌딩으로 바람의 흐름이 차단되어 열섬 현상은 사람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최근 외곽의 자연적 찬 공기를 도심으로 유통시킬 바람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일명 "바람 생성 숲, 연결숲, 디딤,확산숲"으로 불리며 도심에 자연의 바람을 이끌 길이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건물 높이 제한, 공원도로 너비 확장등 제도적 법규의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대중이 마치 남의 문제처럼 외면하는 한 이같은 노력이 결실을 맺기는 어렵다.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가 아닌가!
"낯설지만 호혜적인 공기관계를 구성함으로써 더 자주 더 극심하게 찾아올 공기위기를 겨우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피서는 끝났다. 피난 준비를 시작할 때다." - 209쪽
COVID-19는 현재 진행형인 전염병이며, 지구적 재난이다. 사실 이 재난은 우리에게 '공기 인류학'이란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공기관계를 이해하고 조정하는 일이 새로운 인류의 과제"가 된 것이다. 여기에도 사회적 약자는 어김없이 최대의 피해자로 부상하고 있다. 오랜시간 자리를 뜨지 못하고 옆 사람과 숨을 섞으며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 특히 콜센터 노동자 집단에서 집중적으로 감염환자가 발생했던 사실을 우린 잘 알고 있다. 공간배치, 새로운 규칙...등 실내 구조, 장치(창문, 배기구, 에어컨 등)에 따라 공기의 흐름을 타고 떠다니는 비말에 대한 연구처럼 우리들의 지식은 쌓여 갈 것이다. 이들의 결실이 공동체가 함께 호흡하는 공기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 해결의 도구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각자도생의 기술이나 제품이 아니라 숨쉴 권리다. 이는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권리다." 서로 숨바꾸는 일을 회피하는 사회로서 공동체가 온전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함께 나누어 쉬는 공기, 위기를 맞은 공동체의 공기를 되살리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 책은 한반도의 공기에 대한 다층적 연구의 중간 결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의 과학과 정치 사회적 현실을 가늠하고 현안 과제를 함께 사유함으로써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기 위한 공기 사회학, 공기 과학, 공기 정치학의 토대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