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MAS PIKETTY'의 『자본과 이데올로기』 - with Essence Book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본책과는 별도로 에센스 북(Essence Book)이 발간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 긴요한 참조 문서집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에는 소유주의 이데올로기라던가 삼원주의, 다중엘리트체제, 사회토착주의, 보편적 자본지원 등의 비교적 낯선 용어들에 대한 핵심 개념의 설명,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경제학자 '이정우' 전 경북대 교수의 해제, 그리고 본문 내용의 참조 도표들과 그에 대한 설명이 있다.
피케티를 일약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돋움하게 했던 전작인 『21세기 자본』은 "도래하는 21세기는 불평등이 커지는 '세습자본주의'로의 회귀"라는 우울한 전망이었다. 특히 자본수익율(r)이 경제성장율(g)보다 높아지는 것, 즉 자본/소득 비율(일명 피케티 비율)이 높아져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을 토대로 "과거가 미래를 잡아먹는다."는 명문장을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불평등의 크기와 변동 추세를 분석했던 것에 이어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불평등 체제의 역사와 정치,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세운 다분히 정치 사회적인 분석과 대안적 모색을 중심으로 한 저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류의 역사는 그 구조적 형태나 논리에 있어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담론과 제도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문제의식의 제기이며, 이에대한 경제적 지표들과 통계 및 사회를 지배하는 법과 제도를 역사적 맥락에서 읽어내는 일련의 여정이다. 여기에 소유권을 사회적 안정의 핵심적인 필수조건으로 옹호하는 '소유주의'와 사제, 귀족, 노동자(제3신분)의 세 기능으로 분할되어 작동했던 '삼원사회(三元社會, Societe ternaire)'가 오랜 역사의 기간 인간사회의 체제였음과, 21세기 자본주의 오늘의 학력 엘리트와 자산 엘리트의 유착 메커니즘인 '다중 엘리트 체계'로 그 모습이 변형되어 불평등주의체제를 고착화시키는 모습 등 정치 사회적 통찰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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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자본,Das Kapital』이 출간된 1867년, 영국의 소득분배가 최악의 정점에 도달한 시기와 일치한다는 것은 결코 역사적 아이러니만은 아니었으리라. 인류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라 마르크스가 주장했다면, 피케티는 '불평등의 역사'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분석의 망라를 통해 부의 분배가 왜 불평등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 따라 불평등이 왜 심화 또는 축소되었는지를 규명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 가공할 노고의 결과물이 곧 『자본과 이데올로기』이다.
이정우 교수가 피케티의 정치경제적, 나아가 인류사회적 기여는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바꾸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이라고 하였듯이, 불평등의 축소를 통해 더불어 사는 인류사회를 염원하는 어떤 소명의식의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코로나 팬데믹이 전 지구적으로 기존의 생활양식을 바꿀 것을 강제하고 있다. 이제 인류는 좋던 싫던 새로운 시대를 마주해야 하게 되었고, 우리 한국사회 역시 생존을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만 한다. 성장의 논리는 어불성설이 되었으며, 긴급구호와 공공사업을 통한 일자리 마련과 같은 생존 정책이 최우선의 과제가 되었다. 한국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은 피케티가 예시하는 20세기 대공황 이후의 뉴딜정책이 소득불평등을 축소하고 경제의 실질성장율 증진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대 사건으로서의 성공적 정책이었음과 마침 그 궤도를 같이 한다.
불평등주의체제를 완화하기 위한 피케티의 대안은 일견 급진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과연 지금의 자본주의체제를 넘어서는 '참여사회주의'를 우리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가와 '기업 내부 권력의 분유를 확대'하고 '누진세 정책을 적극적 시행'하여 '사회적 소유'를 발전시킬 수 있는가? 또한 일정 연령의 청년들에 '보편적으로 자본을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하여 소유집중과 자본의 순환을 이루어 낼 수 있는가? 나아가 초민족적, 초국가적 규제를 시행하기 위한 '금융자산의 소유에 대한 범세계적 등록 강제제도'의 도입 등은 분명 점차 심화되는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요구하는 코로나 팬데믹은 어쩌면 도달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이러한 정책들을 시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인류 역사의 대전환적 운명인 것 만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코로나19 사태와 이후 전망에 대한 프랑스 〈르몽드 지〉에 올린 피케티의 기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중대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격변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실증적 경제 분석을 토대로 한 사회과학적 성취의 최고 산물이라는 표현에 어떠한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시대의 역작이라 하고 싶다. 자본주의의 한계를 초월하여 세계적 신질서의 창출을 위해, 인류의 공존을 위한 더할나위 없는 통찰과 제안으로 가득한 이 책은 그의 전작의 명성을 훨씬 능가한다고 감히 말해도 누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