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무의식에서 새로워진 나를 찾아
김종주.라깡분석치료연구소 지음 / 인간사랑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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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에는 억압이 없고, 따라서 엄밀히 말해 무의식이 없다." - 브루스 핑크

 

 

혹자는 무의식을 부정성이 지배하는 규율사회의 산물정도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무의식을 파악한다는 것이 곤혹스럽기 때문인지도 모르며, 욕망은 물론 이의 억압이란 것도 인식의 요구에 두지 않는 정신병인() 탓이기도 할 것이다. 게다가 책의 저자가 지적하듯이 주체에 미치는 법의 질서가 혼란스러울 만큼 다양화 된 까닭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주목하게 되는 것은 무의식에서부터 남근, 신경증이 가리키는 욕망의 방향에 이르는 프로이트에 대한 라깡의 비판적 계승에서 발견되는 차이로부터 인간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확장을 획득하게 해준다는 점을 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 신경증과 정신병에 대한 임상적 사례를 비롯한 21세기 증상이랄 수 있는 인생의 의미 장애를 겪는 일상정신증의 임상적 견해로부터 왜 많은 사람들에게 무의식이 거부되었는지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마 무의식의 탐색과정이랄 수 있는 이청준의 소설들을 따라가며 거울단계에서의 자아형성과 소외의 문제, 마침내 실재계에 적중하는 해석과 같이 말 할 수 없던 것을 창조해내는 새로운 역사 쓰기와 읽기의 정신작용은 물론 오랜 유배생활로 우울증을 앓던 다산 정약용의 기록과 아울러 우울증의 시대라 불리는 오늘의 세계가 왜 무의식을 회피하면서 모든 갈등의 본질을 지워버리는지를 성찰하게 하는 것도 이 책의 또 다른 덕목이라 할 수 있다.

 

내 관심의 탓이겠지만, 자아가 무엇인가를 거부하는 것, 즉 무의식의 억압으로 야기되는 신경증과 아예 현실의 어떤 부분을 자아로부터 뿐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쫓아내 버린다는 의미의 폐제를 원인으로 하는 정신병에 관한 5라깡의 임상정신분석6일상정신증은 인간의 언어와 행위 뒤에 숨겨진 욕망의 흐름에 대한 이해는 물론, 자기 성찰에 있어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를 생각게 해준다.

 

이를테면 욕망의 실현을 자신의 소멸로 여겨 욕망을 이루지 않으려는, 불가능한 욕망을 욕망하는 강박증은 그 질병적 발현의 유무를 떠나 스스로를 완벽한 주체로 생각하는 나와 주변의 많은 이들에 대한 사유로 옮겨가게 한다. 왜 끊임없는 욕망으로 들끓는 자신의 결여, 그 부족함, 불완전함, 무지를 망각하는 것일까? 또 다른 신경증의 하나인 히스테리를 말할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 프로이트의 도라 사례와 함께 불만족한 욕망에 대한 욕망이라는 대타자의 욕망을 영원한 불만족 상태로 유지시키려는 주이상스와 욕망의 영원한 불일치의 심리적 전략을 목격하는 것은 인간사회의 복잡성을 해석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정신분석 개념들을 인간과 사회의 구조와 특성에까지 확장하여 그 이론적 진실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살아가는 지혜로서, 내 삶의 반성적 단초로 이해하는데 어떤 기여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한편 언어속의 소외, 의심없는 자기 확신, 환각 등 정신병의 화려한 병인(病因)에서 오늘의 우리 사회의 일면을 보게 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라깡이 말한 인간주체의 세 가지 질서 중 상상계란 소위 거세 콤플렉스가 시작되지 않은, 즉 법과 타자라는 사회적 질서로의 편입이 이루어지지 못한 단계의 일컬음이다. 여기에는 억압이 없기에 의심과 질문이 없으며, 부명(父命)이라는 부성기능, 법이 없기에 은유가 없다. 이러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현상들을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언어의 세계, 질서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상상계가 계속 지배권을 행사하는 정신의 미성숙에게도 삶의 전술이란 것이 있다. 타자에 대한 모방을 통해 동화하여 마치 상징계에 진입한 인간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은유를 창조해내지 못하는 이들은 고작 책에서 읽은 것, 주위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을 사용하는 데 그칠 뿐이다. 그래서 새로운 단어인 신조어혹은 두()문자어(축약어)를 만들어내곤 그 신조어에 남다른 애착을 보인다. 결코 창조해내지 못하는 흉내와 눈가림, 낄낄거림의 동화에 탐닉하는 사회의 정신질환적 증상이다. 아마 방송 매체에 등장하는 그 하찮은 주절거림들을 보라, 무의식을 거부한 유아들을 발견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내게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라깡의 학문적-법적 상속자인 자크-알랭 밀레르에 의해 1998년 처음 정의된 일상정신증’ ”에 대한 장()일 것이다. 이것은 21세기 신자유주의 질서에 점령된 인간사회를 묘사하는 데 적절한 질병처럼 여겨진다.


 상징적인 법의 유일한 시니피앙인 부명의 다원화가 임상분류의 

구성 축을 바꿔 놓았다.”        - P 111 中에서


일명 숨겨진 정신증또는 베일에 가려진 정신증으로 불리는 이 정신증은 망상과 환각과 같은 다양한 신체 현상 같은 고전적인 정신병의 증상들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경증과 정신병의 경계에선 이 독특한 정신적 질환은 그래서 더욱 이 사회의 병을 은폐한다. 이 병의 증상들은 건강염려, 상시적 차별과 하대에의 노출, 관계적 망상, 자기 모습에 대한 강박...등등 현대인의 전형적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또한 자기애로의 퇴행, 관계적 어려움, 환상의 부재와 같이 요즈음의 대중적 트렌드에 부상하는 것들과 닮아있다.

 

부정선거라고 악을 써내는 인간에게서 다른 아이를 때리고선 자신이 맞았다고 말하는 아이의 공격성과 자기애를 발견하게 되는 것으로부터 오늘의 사람들에게 고착된 정신증을 생각하는 것이 결코 지나친 이해는 아닐 것이다. 공격성은 주체의 생성에서 자기애적인 구조의 상관적 긴장이다. 라는 말에서 바로 이것이 우리들 자신임을 아는 것이야 한다는 반성적 사유를 끌어내야하는 것이 오늘 나와 우리네 모두의 의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라깡의 정신분석 입문서로서 또한 무의식이라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안내서로서 그 책임을 다하는 저술이라 함에 주저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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