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러바치는 심장 ㅣ 문득 시리즈 3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박미영 옮김 / 스피리투스 / 2019년 7월
평점 :
“내 작품 가운데 많은 것이 전율에 기반하고 있으며,...(中略)... 나의 영혼 깊숙한 곳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 에드거 앨런 포 作『그로테스크하고 아라베스크한 이야기들』 서문 中에서
포의 소설 대부분은 그의 설명처럼 독자들을 전율에 몸서리치게 한다. 소름끼치는 것과 혐오스러운 것이 한데 뭉쳐져 으스스함과 음침함의 분위기가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 1840년 단편소설 25편을 묶어 출간된 그의 선집 제목, ‘그로테스크하고 아라베스크한 이야기들(Tales of the Grotesque and Arabesque)’에서와 같이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음산하고 환상적이며 기이한 무엇의 세계, 그로테스크한 이질적 세계로 우리들을 유인한다. 물론 그의 모든 작품이 이러한 범주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 『일러바치는 심장』에 수록된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치료법」이나 「일주일에 일요일 세 번」처럼 풍자적인 작품이 있는가하면, 그에게 추리문학의 창시자라는 명성을 안겨준 명민한 탐정‘뒤팽’이 등장하는「도둑맞은 편지」와 같이 더 이상 그로테스크하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작품들도 있다.
그럼에도 포 소설의 독특한 매력은 익숙하고 편하게 느껴지던 세계가 별안간 낯설고 섬뜩하게 다가오는 당혹감과 그 생경함이 자아내는 통제 불능의 세계에 있으며, 여기에 더해 은닉된 인간과 인생의 모순, 광기, 부조리, 불합리, 어리석음의 드러냄에 있을 것이다. 아마 수록작 중 「붉은 죽음의 가면」은 이러한 감상에 맞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에 치명적 역병이 돌자 궁정의 신하와 숙녀를 동반하여 세상과 동떨어진 격리된 수도원의 성채로 피신하여 성의 안팎을 봉쇄해버린 후 그들만의 향락을 즐긴다. 밖에서는 역병이 격렬하게 창궐하지만 그들은 화려한 가면무도회를 꾸미기에 분주하고 일곱 개의 방으로 구성된 연회의 무대를 준비한다. 아마 이 새로운 세계의 장식을 묘사하는 문단은 그야말로 그로테스크의 전형일 것이다.
“확실히 기괴하게 할 것,온통 눈부셨고 반짝이고 짜릿했으며 환영 같았고, <에르나니>이후로 많이 본 광경이었다. 맞지 않는 날개며 장신구를 단 아라비아풍(아라베스크) 인물들도 있었고, 미치광이 같은 현란한 취향도 있었다. 아름답고 화려하고 기괴한 이들로 넘쳐났다. 끔찍한 모습도, 혐오감을 불러올 만한 모습도 적지 않았다.” - P 52 中에서
이 기이한 시공은 마치 ‘붉은 가면을 쓴 죽음’이라는 음산한 존재를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듯하지 않은가? 이 세계 같지 않은 혐오와 소름과 몽상적 상상이 뒤엉켜 녹아든 광경이야말로 현실 세계의 질서가 파괴되는 전조, 바로 그로테스크가 지향하는 미학적 가치일 것이다. 난공불락의 요새같던 이들의 세계에 붉은 죽음의 가면은 찾아들고, “파티를 즐기던 이들은 피로 물든 벽에 둘러싸인 채....절망 속에 죽어갔다. ....어둠과 부패 그리고 붉은 죽음이 모든 것을 무한히 점령했다.”
현실 세계의 파괴와 새로운 세계에의 환상을 꿈꾸는 이러한 지향과 달리, 괴기스럽고 음산하며 잔혹한 공포의 분위기로써 그로테스라는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 「검은 고양이」는 도플갱어가 섬뜩한 동물의 영역에까지 확장된 죽음의 예술로 우리를 이끈다. 달리 설명 할 수 없는 최후의 파멸처럼 한 인간의 섬세한 영혼을 파멸로 이끈다. 인간 심리의 원시적 본능, 인간 특성의 분리 불가능한 충동의 세계, 그 어둠으로 깊숙이 따라가다 광기의 나락에 몰린 주인공의 아내 살해 과정과 시체 매장, 그리고 발견에 이르는 세세한 장면은 그 잔혹함으로 인해 강렬한 인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범죄가 보여주는 압도적인 충격으로 뇌가 얼얼해지는 현기증, 공포 소설의 진수를 맛보게 된다.
이들과는 또다른 느낌의 공포로서 생매장이라는 모티프가 발견되는「어셔가의 몰락」과 「아몬틸라의 술통」은 지하공간의 음침함과 으스스함, 상상력을 초월하는 악몽처럼 울려 퍼지는 비명, 악마주의의 낯섦으로, 인간 내면의 저 깊숙한 어둠의 심연으로 끌어댄다. 이러한 모티프의 동일성 측면에서 「일러바치는 심장」의 “옅은 푸른색 막이 뒤덮인 눈”의 노인, 「검은 고양이」“플루토의 눈”은 뒤틀린 자아를 읽어 들이는 타자에 대한 반감, 이를 차단시킴으로써 흉물스러움을 유지하려는 인간에 내재된 또 다른 광기의 한 면을 까발리기도 한다.
한편 이들 작품과는 달리 「일주일에 일요일 세 번」과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치료법」 두 단편은 우스꽝스런 인간들의 행태를 풍자하는 웃음의 세계로 안내하지만 이 웃음은 결코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풍자는 악마의 사자이며, 그래서 풍자의 웃음은 악마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미쳐버린 세상만큼 우스운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내키지 않는 웃음, 아득한 심연의 웃음, 불합리를 가지고 유희를 벌이는 일이야말로 또 다른 그로테스크 아니겠는가? 이런 측면에서 포는 시종일관 충격적이고 납득 불가능한 기이한 것, 그 불가사의함에 맞서려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이해 불가능의 세계에 맞서 싸우려는 포가 그로테스크를 벗어난, 즉 인간의 이해력이 맞설 힘을 잃는 세계, 그 불가사의한 것에 예리한 감각을 가진 인간을 등장시킴으로써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다고 선언한 작품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도둑맞은 편지」는 경험에만 의존하는 경찰의 추리 한계, 불가능의 세계에 열린 틈새를 찾아내 풀어낼 수 있는 수수께끼의 세계로 바꾸어 버린다. 아마 이를 위해 탐정을 등장시킨 최초의 추리문학 작품인 모양이다. 오늘의 추리문학에 등장하는 수사관이나 과학수사대의 그것에 견준다면 유치함을 면할 수 없겠지만 바로 현대의 미스터리 문학작품들의 전범(典範)으로서 문학사적 위치를 고려하여 읽는다면 그 재미 또한 제법 쏠쏠한 수확이라 할 수 있다.
포의 작품들은 믿어 의심치 않던 세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전율들로 빼곡하다. 일상적 삶의 질서가 적용되지 않는 기이함, 광기와의 대면, 위협적 생명력을 발산하는 「구덩이와 추」에 등장하는 진자 운동을 하며 내려오는 서슬 퍼런 칼날,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비명등과 같이 현상의 무수한 왜곡들로 즐비하다. 삶에 대한 공포, 개인적 특성이라는 개념이 파괴되고 관계의 약속, 질서가 허물어지는 생경한 세계를 마주하며 몸서리치는 것이다. 포는 이를 통해 이 세계의 바깥, 어둠속의 세계를 들여다봄으로써 다른 삶의 가능성, 새로운 세계의 이상을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를 읽기 위해서 그가 창조한 독특한 예술의 세계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어느덧 “사슬에 매달린 채 끔찍하고 시커멓게” 타버린 여덟 구의 시체덩어리가 발산하는 악취가 진동하는 불타는 복수극으로 진저리 치며 어둠의 시간 어느 순간을 벗어난 자신을 발견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