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화된 신
레자 아슬란 지음, 강주헌 옮김 / 세종서적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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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신의 자기표현이다. 당신이 신이다!

   

레자 아슬란인간화된 신(humanized god)'유발 하라리신이 되려는 인간(homodeus)'과 대척점에 위치한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양극단을 가리키는 듯한 표현이 이 책을 읽게 한 자극이었다고 해야겠다. 구태여 문장론을 빌어 두 의미가 동일한 주체임을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즉 양자 모두 인간인 주체의 욕망을 말하고 있음에 동의할 것이다. 하라리의 신()영생불멸, 전지전능한 초월적 능력()’으로서의 신이다. 인간이 지니고 싶어하는 궁극의 욕망으로서의 신, 그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도 알지 못한 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려는 인간행동에 대한 반성의 제언이었다.

 

아슬란의 신은 어떤 의미를 담은 신(god)일까? 그 신은 “All is One, One is All. 본질적으로 신은 모든 존재의 총합이며, 신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당신이 곧 신이다!”로 귀결되는 신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작동할 욕망, 불사(不死), 초월적 능력에 대한 갈망은 부질없는 짓이 되고 만다. 어쩌면 이 범신론적 정의야말로 하라리가 경고한 인류공멸을 제어하는 방법론이 되지 않을까를 생각게 된다.

 

이처럼 이 책은 신이 인간의 창조물이라든가, 신의 존재 증명을 하려는 책이 아니다. 인간 영성의 역사, 혹은 종교의 역사를 통해 신적 존재를 인간 자신의 반영으로 경험하려는 뿌리깊은 욕망, 신이 인간처럼 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기를 바라는 거의 보편적 현상을 드러냄으로써 지금 이 순간에도 혐오와 적대로 이 세계를 휘젓는 종교적 갈등의 원인을 탐색하여, 인간과 이 세계의 본질 규명으로 나아가는 여정이랄 수 있다.

이 증명의 여정에서 레자 아슬란은 수 십 만년 인류 역사의 종교 흔적을 따라가며 신에 투영한 인간의 욕망, 그 보편적 충동에 내재된 부조리, 모순, 인지부조화의 현상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1. ()의 형상들 - 인간의 욕망과 기원이 투영된 인격화된 신들

 

중기 구석기(기원전 20만년~4만년)시대에부터 발견되는 매장(무덤)풍습은 내세에 대한 믿음이 인간의 마음에 깃들어 있었음을 추정하는 근거가 된다. 영혼과 육신 분리에 대한 믿음이다. 사자(死者)의 영혼이 만물에 깃들어 초자연적 존재로서 숭배와 기도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충동의 발현이랄 수 있는 현상이 후기 구석기,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서는 거의 완벽한 종교적 형식이 완성되었음을 입증하는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레트루아 프레르 동굴, 볼프강 동굴 등지에서 발견되는 동물과 인간의 복합된 형상, 물질적 세계 너머의 상징, 달리 표현하자면 신의 형상으로 해석되는 일명 야수의 제왕(Lord of Beasts)’ 암각화처럼 반()직관적인 신인(神人; god-man)이라는 종교적 표현이 그것이요, B.C. 12천년~1만년으로 추정되는 우르파의 괴베클리 테페에서 발견된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신들의 모습 조각과 종교의식을 위해 세워진 성지가 또한 그것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것은 고대인의 정신세계에 각인된 신이란 곧 인간의 욕망과 기원(祈願)이 투사된 인격화된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금 농업발생과 함께 자연 현상을 신격화하여 자연력을 지배하는 힘과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욕망에서 인격화된 신들을 탄생시킨다.

 

특히 이집트 고왕국(B.C. 2686~2181)시기에 이르면 인간화된 신들이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종교 확립을 통해 신의 상징적 기능을 관리 및 나아가 조종하려는 증거들을 접하게 된다. 또한 가장 극명한, 잘 알려진 중기 청동기 시대(B.C. 1600년경)인 미케네로 알려진 그리스 문명에서 등장하는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의 12신이야말로 인간의 속성을 신격화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조건에 대한 사고의 변화를 요구하는 생존환경의 변화는 모든 창조물에 깃든 근원적 실체, 완전한 본질에, 모든 창조물을 조종하는 통일된 원칙이라는 단일한 신, 하나의 신을 상상케 한다.

 

    

 

2. 일신숭배(一神崇拜)와 일신교(一神敎)

 

이같은 하나의 신이 처음으로 시도된 것은 이집트 신왕조시대인 B.C. 1335년경 통치를 시작한 아멘호테프(일명 아케나텐)의 태양신 아톤의 일신교적 세계관의 제국 전체에의 강요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의 사후 다신(多神)을 섬기는 세계로 회귀하고 만다. 인간의 특성, 선과 악, 사랑과 폭력이 하나의 존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수용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지역과 민족 저마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수호신이 들끓는 세계에서 단일한 신이란 가당치 않았다는 것이다.

 

B.C. 1100년경 차라투스트라 스티타바에 의해 진실, 미덕, 정의와 같은 추상적 개념의 인격화로 탄생한 일명 조로아스터교 역시 아후라 마즈다(지혜로운 주;)’라는 하나의 신을 섬기는 일신교를 지향하였지만 뿌리 내리지 못했음은 모두가 아는 바다. 이처럼 일신교가 인류의 역사 내내 인간의 종교적 상상력에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는 유일신이라는 개념이 신적인 존재를 인간화하려는 인간의 보편적 충동과 충돌했기 때문이라고 아슬란은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 일신숭배와 일신교의 차이를 구별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전자는 다른 신의 숭배를 배제하지 않으며 만신(萬神)중 최고의 신을 섬기는 것이며, 후자는 다른 신은 모두 가짜라는 배타적 유일신을 섬기는 것을 지칭한다. 이 구별은 인간 사유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여러 특성을 지닌 다수의 신중 최고의 신인 주신(主神)과 애초부터 이러한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단일신(單一神)의 상상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점이다. 특성간의 모순과 충돌이 하나에 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엄청난 인지적 노력을 요구하는 사유의 진척이 있어야 가능했다는 의미이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인격화된 신으로부터 벗어나는 길 밖에 없다. 신을 탈 인간화하는 것이다. 신에게서 인간의 속성을 모두 떼어내고 신을 우주의 근원을 이루는 창조적 본질이라 재()정의하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인간과 인간사회가 그토록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던, 아니 오늘에도 여전한 측면이랄 수 있다. 이 개념이 합당하려면 신의 개념이 먼저 생겨나야 하는데 이것은 지금까지의 믿음에 대한 인지과정이 부정되는 것, 즉 형상없는 존재의 형상을 생각해내야 하는 비현실적이고 어려운 과제였다는 점이다. 아마 21세기 현재에 이르는 종교들에서 특별한 통찰력 없이도 우리들이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 있다. “인간세계를 기초로 한 하늘의 왕국은 지상의 거울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하는 '정치사상(政治寫像; politicomorphism)'이라는 것이다. 현실 세계의 정치현상이 종교체제에 투사 반영되는 것 말이다.

 

유대교가 확립되는 B.C. 1050년경 통일왕국을 형성하는 이스라엘이 권력의 중앙집중, 즉 인간의 지배방식이 바뀌면서 신들의 지배방식도 지상에 맞춰 변화했던 것은 정치사상의 직접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미디안 지역의 군신(軍神)이었던 야훼’, 모세의 신 야훼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낯선 존재였다는 것이다. 황소, 송아지 모습으로 묘사되었던 가나안의 최고신 은 일종의 주신이었으며, 신들의 옥좌에 오른 왕, 최고신의 프로파간다 수단인 시편(82, 97)의 묘사는 이러한 양상을 잘 보여준다. 이시기에도 여전히 일신숭배의 주신(主神)에 불과했던 야훼가 유일신이 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인지부조화의 극치인 현상을 목격하게 한다.

 

바빌로니아의 통치자 느브갓네살에 의해 무참하게 파괴된 이스라엘에게는 바빌론의 신 마르두크에 의해 야훼가 여지없이 패배한 민족적 야망의 종말, 종교의 종말이었다는 점이다. ‘바빌론 유수는 정체성 위기를 초래했으며, 과거 역사의 재검토, 종교적 관념의 재해석을 요구하는 인지부조화를 촉발했다는 것이다. 패배한 신을 받아들여야 하는 그네들에게 인격화된 주신 야훼는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단일신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인간의 모습을 하지 않았지만 인간을 자기형상대로 만든 단일한 신, 인간의 좋고 나쁜 감정과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영원하고 분할되지 않는 신이라고 아슬란은 재정의 된 유대의 단일신을 묘사한다.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한 이 비합리적 문장에는 숨겨진 조롱으로 그득 차있다.

 

이후 500년이 지나 느닷없이 그리스도(christian)’를 자칭한 종말론적 유대교 종파에 뒤엎어진 신()”의 출현은 요한복음(1:1) “태초에 로고스가 있었다. 로고스는 신과 함께 있었고, 로고스는 곧 신이었다.” , (1:14) “로고스가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다.”는 구절만큼 느닷없고 터무니없는 비합리와 모순으로 넘쳐난다고 아슬란은 지적한다. 더구나 예수는 유일한 신이 취한 단 하나의 인간적 형상이라는 생각에 도달하면 당시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를 수용하는데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을지 상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오로지 하나의 신만이 존재하며, 분할되지 않는 신임에도 신이 둘이라는 부조리함은 둘째로 치고, 예수가 신인가, 인간인가의 논쟁은 이신론(二神論)까지 낳으며, 오늘날에 이른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을 결정한 니케아공회의의 타협안, “아들 예수는 아버지 신과 함께 하나의 실체를 이룬다.”에 이르면, 기독교 역시 얼마나 끈덕지게 인간화된 신의 욕망, 즉 인간의 원초적이고 깊이 내재된 충동에 철저히 순응하고 있는가를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인류의 마지막 일신교랄 수 있는 무하마드 이븐 압드 알부탈지브에 의해 탄생한 야훼와 동일한 신이라고 칭한 알라를 섬기는 이슬람교도 이러한 인격화된 신을 비켜나가지 못한다. 쿠란에는 신을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한 구절로 가득하다고 아슬란은 지적한다. 게다가 창조주가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니, 분할되지 않는 신이 어떻게 창조주와 창조로 분리되었는가고 묻는다. 이슬람신학계에서는 이를 잡소리라고 일축하는 모양이지만, 분할되지 않는 것에서는 어떤 것도 생겨날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지 않은가?

 

3. ()인간화 된 신 - 인류 미래에 대한 믿음의 제언

 

()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만큼 인류에게 위험천만한 물음이 없을 것이다. 이 모호한, 상상불가한 의문은 인류 문명의 건설과 파괴, 평화와 변영과 전쟁과 폭력의 세계를 오가게 한다. 인간 욕망의 투영, 정치사상(寫像)이기에 그럴 것이다. 자기의 믿음만이 진실이니 그 답변의 동질성 여부에 따라 배제와 배타, 구별이 시작된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에 생명을 주는 힘, )신격화한 자연이 되면, ‘유발 하라리가 지적한 호모데우스로 별칭되는 자못 위험천만한 세계로 치달으며, “ )인격화한 신인가? )신은 곧 인간인가? ”에 이르면 종교간의 비난과 갈등으로 폭력의 세기를 낳는다. 그렇다면 )우주에 스며든 추상적 힘인가?” “창조자와 창조는 항구적이고 구분되지 않으며 분리되지 않는 본질을 정확히 똑같이 공유하는 신()”이라면 어떤가? “어떤 것도 신과 관계없이 존재할 수 없다. 신 이외에는 어떤 것도 없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는 범신론 철학자 '마이클 레빈(Michel P. Levine)'의 탈 인간화된 신이라면 우리들은 파괴와 폭력, 혐오와 증오를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인격화된 신은 모순과 부조리, 논리적 비합리, 인지적부조화로 가득한 실체이다. 이 믿음을 전환할 새로운 변화의 시기, 다신을 섬기는 세계에서 단일신으로 이전하는데 엄청난 사고의 변혁이 요구되었듯이 다시한번 사유의 대변혁이 요청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레자 아슬란은 말한다. “나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모든 존재들을 신처럼 대한다. ...(中略)... 자신의 영혼을 아는 사람은 주(;God)를 아는 사람이다.” 라고. 세계는 신의 자기표현이며, 세계는 신의 본질이 현실화되고 구체화된 것이라는 이 믿음은 어쩌면 21세기를 사는 우리들, 미래의 인류를 위해 절실한 사유의 전환이 되지 않을까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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