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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길이 닿는 순간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 - 촉각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의 과학
마르틴 그룬발트 지음, 강영옥 옮김 / 자음과모음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피부는 정념과 감정의 거울이다.”
- 애슐리 몬터규 『터칭(Touching)』 에서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그의 저서 『지각의 현상학』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면을 만질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예견할 수 있다.”라고 ‘주체의 몸’, 고유한 몸의 종합으로서 신체접촉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선언하기도 했다. 나는 내 신체가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지, 어떤 관념적 실체가 달리 실재하고 있어 그것이 사유하고 판단하며 반성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내 신체의 종합을 인지함으로써 나는 외부 세계의 공간과 시간적 관계를 연결시킬 수 있으며 이로써 나의 실재함, 실존적 느낌을 갖는다. 내 몸을 촉각으로 감지하며 어느 것이 나의 신체 부위에 속하고 아닌지를 구분할 줄 안다. 만일 이러한 촉각체계가 없었다면 나는 나의 실존을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내 실존에 대한 이해와 달리 지금 우리의 세계는 몸을 소비의 대상, 기계화된 물질, 한낱 대상화된 무엇으로만 이해하며, 타인의 몸은 경계와 혐오, 두려움, 회피의 대상으로 치닫는다. 이제 ‘접촉’이라는 언어는 한없이 낯설고 어떤 흉물(凶物)의 인상까지 덮어쓰고 있다. 접촉, 촉각을 폄훼하고 지워버리는 세계, 감각의 현재성을 잃어버린 세계에서 나와 너, 인간관계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를 생각게 된다. 그럼에도 오늘날처럼 감각이 차고 넘치는 세상은 일찍이 없었다는 주장이 들려오기도 한다. 아마 무진장한 시각적 감각에 쇄도해오는 다양한 감각채널들을 염두에 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결코 옳지 않다.
이 주장은 감각의 외피에 싸인 지식과 정보를 말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단말기와 데이터 중심의 문명은 감각을 열등한 것으로 밀어젖힌다. 개인과 개인의 접촉을 극단적으로 감소시키는 문명이다. 접촉 상실의 문명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곳에서 인간의 신체는 소외되고 고립된 채 실존적 위기로 고통스러워한다. 바로 오늘 한국인의 삶을 대표하는 어휘가 혐오, 비혼, 혼밥인 것은 접촉이라는 타자와의 관계가 이질적이 되어버린, 실재적 감각의 세계를 상실해가고 있는 세계의 다른 표현이지 않겠는가? 손을 잡고 포옹할 때 애정의 온기와 볼을 만지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인정과 칭찬의 기쁨, 이들 긍정의 감정들이 균질화되고 통제된 주장들에 의해 왜곡되어 멸실되고 있지 않은가?
서두가 지나치게 길어졌다. 나는 이 책을 이처럼 상실되어가는 인간 신체의 접촉을 회복시키기 위한, 즉 타자성의 회복을 통해 삭막한 인간세계가 관계가 넘쳐나고, 사랑과 존중, 안락함이 풍부한 세계로 전환해 나가는 근원으로서 촉각의 체계, 피부자극이라는 접촉의 생물학적, 인류학적 반전의 세계를 그려보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책은 인간 개체에 있어서 제2의 뇌, 혹은 ‘피부의 정신’으로 불려야 하는 촉각체계가 지니는 생명체의 성장과 발달에의 의학적, 생리학적 영향에서 심리학적, 문화적 영향의 양태에까지 광범위한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피부는 신체에서 가장 넓은 감각기관이며, 감각은 피부에 가장 밀접하게 관계한다. 더구나 촉각은 인간 배아에게서 가장 먼저 발달하는 감각이다. 왜 촉각이 처음으로 발달해야하는 것일까? 촉각을 통해 태아는 끊임없는 자극의 반복 학습을 통해 신체인식, 위치탐색 등 생존을 위해 필요한 기초지식은 물론 감각구조의 협력 체제를 완성해 나간다. 즉, 지속적인 자기 접촉은 신체와 동작과 자의식을 형성시키는, 자아개념을 각인하는 과정이랄 수 있다. 그래서 접촉은 ‘태초의 지식’으로 불린다.
엄마의 자궁으로부터 시작되는 태초의 촉각 체험들은 이처럼 자아와 신체도식의 형성, 신체적 친밀감, 긍정적 감각의 깨우침으로, 모방이라는 사회적 학습과 인식으로, 지각, 인지 능력은 물론 사회적 판단과정에 전방위적인 영향을 미친다. 받은 촉각 자극의 질은 유기체 전 기관계의 질적 발달에 직접 관계한다. 그렇다면 피부접촉의 자극이 없는 인간 유기체에게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게 될까? 지속적 접촉 결핍을 겪는 아이는 신체, 사회, 감정, 인지 능력의 저하는 물론 뇌의 발달이 지연된다. 친밀감과 애정이라는 식량, 신체적 친밀감의 결핍은 발달장애는 물론 영유아의 사망까지 불러온다. 책은 촉각의 감각이 인간생명체 활동의 원천적인 자양분임을 입증하는 사례들이 이처럼 빼곡하다. 굳이 스킨십이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을 분비해서 심리적 이완을 돕는다라든가, 성행위 후 옥시토신 농도가 가장 높아 느슨한 황홀경의 마비로 긴장완화에 유익하다든가, 혹은 접촉자극이 면역체계를 안정시켜 염증억제 가속화 효과가 있다와 같은 ‘인체 약국’ 작용으로서의 신체접촉을 수다스럽게 늘어놓지는 않겠다.
그러나 빼놓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다. 오늘의 인간이 ‘물질시대’에 살고 있음을 부정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음에도 인간 개체는 물론 인간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실로 지대한 영유아의 촉각자극은 타자성 상실과 관련하여 사유의 방편을 제공한다. 엄마와 아빠의 부드럽고 애정어린 손길, 모유 수유와 관련하여 아기가 체험하는 신체자극이 어떤 인간들을 만들어 내는지를 알게 된다면, 유모차에 분리되어 앉아있는 아기들, 출산하자마자 엄마와 분리되어 육아실에 격리되는 아기가 얼마나 끔찍한 상태에 놓이는지 알게 된다면, 그러한 시대에 성장한 아이들로 구성된 오늘의 사회가 왜 이처럼 접촉을 부정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는 내내 타인과의 접촉을 이어가야하는 개체에게 촉각 욕구를 빼앗는 세계에서 ‘이상 행동’이 나타나는 것은 어쩜 지극히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스마트폰 터치패드에 연신 검지손가락을 문지르는 소외된 인간들, 기술을 매개로 하는 세계는 사건을 지각하는 과정을 대폭 축소시킨다. 활동과 활동의 연쇄적 반응, 연결관계는 훨씬 어렵지만 그만큼 인간 개체의 성장과 개체들간의 관계 발전을 돕는다. “만지는 것이 곧 앎이다.”라는 말만큼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문장은 없을 듯하다. 지구촌 곳곳에서 미투운동의 바람이 거세다. 여성차별의 오랜 역사적 굴레를 벗어던지고 평등한 성의 구현을 실현하자는 윤리적 외침이 이제는 성(性)간의 혐오와 파멸로 치닫는 양상마저 보인다. 이들 세계에서 접촉, 터치의 세계는 범죄가 되고 만다. 과연 촉각이 문제인 것인가?
책은 이외에도 촉각 경험이 지니는 일상의 실용적 사례들도 그득하다. 특히 산업부분에서 촉각이 발하는 유용한 효과들, 협상과 설득에서, 촉각 광고문구나 제품 디자인에 있어서 촉각호기심 자극이나 촉각체험의 마케팅적 활용의 가치를 소개하기도 한다. 비교적 작은 분량의 소책자이지만 인간 촉각체계에 대한 다양한 사유의 가지를 뻗어나게 하는 터전을 제공하는 시의성 있는 저작이라 할 수 있겠다. 각양의 분야, 다양한 관점에서 촉각, 접촉의 세계를 감각하는 시간이 되어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