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문고판)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백승길.이종숭 옮김 / 예경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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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E.H. 곰브리치서양 미술사(The story of art)를 읽으려 한 의도는 미술 작품에 대한 감상자로서의 이해력을 갖추는데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획득하게 될 지식 쪼가리를 비축해 보려는 천박한 기대 또한 있었다고 해야겠다. 무려 '413개의 도판'과 함께하는 선사 및 원시부족 사회의 그림과 조각으로부터 현대 추상표현주의와 '옵 아트(Op Art)', '팝 아트(Pop Art), ‘데이비드 호크니의 카메라 영상작품에 이르기까지 400여(화가,조각가,건축가)미술가에 대한 해설을 포함하는 미술의 성대한 기록은 이러한 욕구를 만끽하는 데 결코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곰브리치는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그것에 적합한 설명서에 관한 그들의 기억을 찾는 데 몰두한다.” 라며 미술 작품을 대하는 그릇된 태도를 지적한다. 게다가 어쭙잖은 도식화된 설명의 기억을 과시하고자 미술에 관해서 똑떨어지고 재치있는 발언을 하려는 유혹에 사로잡힌 어중이떠중이들의 허영을 점잖게 꾸짖기도 한다. 미술에 관해서 속물근성을 조성하는 설익은 지식을 갖는 것보다 미술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훨씬 좋다.”라는 것이다.

 

미술 작품의 감상은 조화에 대한 올바른 균형, 가장 조화로운 전체를 구성하는 올바른 관계, 바로 그 감각을 발전시킴으로써 삶의 조화로움이 보다 풍부해지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며, “미술가의 체험 정체가 무엇인지”, 그들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노력함으로써 감상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라 조언한다. 미술가가 소위 제대로 했다!’라고 느끼는 자기완성으로써의 결과물과 공감하려는 마음상태의 상상과 추측의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출발점에서 위대한 예술 작품의 면면을 연대기별로, 과연 하나하나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전통적 뿌리에서 시대적 요청의 산물로서, 혹은 그 기법과 작가적 고뇌까지 역사의 위치를 설정하며 감상하는 즐거움을 준다.

 

따라서 구태여 어떤 의지를 가지고 읽어나갈 필요의 긴장을 해제시킨다. 그저 곰브리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와 함께 미술 작품을 음미하는 초보 감식가가 된 듯 미술가가 해당 작품을 그리고, 조각할 때의 마음을 상상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탈리아 화가인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라는 그림에 얽힌 일화는 그림을 대하는 인습과 편견이 예술작품의 감상을 방해하는 맞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늙고 가난한 노동자이며 단순한 세리(稅吏)였던 마태오에 어울리는 천사와의 조우를 마침내 그리고 성당에 제출했으나 위대한 성인에 대한 존경심이 결여되어 있다고 거절되었다는 것이다.

     

[ 카라바조 <성 마태오>, 1602년경 : 거절본 ]

 

카라바조는 그들의 입맛에 맞는 정형화된 그림을 납품했다. 전해지는 그 두 그림은 정직하고 생생한 하나와 불성실해 보이는 하나의 그림으로 보인다. 아마 친숙하게 알고 있는 주제를 뜻밖의 방법으로 표현한 그림을 대했을 때 우리에게 그것이 정확하게 해석되지 않는다고 매도하는 그러한 태도가 당시 성당의 시선이었을 것이다. 한 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은 그 소재가 지닌 아름다움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의 교훈일 것이다.

    

[ 카라바조 <성 마태오>, 1602년경 : 승인본 ]

 

깨알 같은 글자로 텍스트만 장장 500여 페이지(413 개 도판포함 10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미술사의 서술은 하나의 미술 작품마다에 숨겨진 조화와 암시를 포착하고 감응하려는 참신한 감상자의 마음가짐을 숙성시키는 여정이라 할 수도 있겠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의지와 마음 속 원시적인 무엇에 대한 사색, 세상의 변화와 그에 따르는 생각과 요구들이라는 예술의 역사성, 시대성에 대한 이해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피카소를 비롯한 입체주의 창시자들의 작품에서 이집트인의 회화가 지녔던 - 사물이 잘 드러나는 각도에 그린 것 - 원칙을 발견하게 되고, 그네들의 작품 소재가 왜 사람들의 생활에 익숙한 것들을 다루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복잡하게 흩어진 묘사들을 감상자와 함께 맞추어 보자고 유혹하는 초청임을 알게 되는 것이나, 표현추상주의 화가로 불리는 잭슨 폴록의 물감을 마구 흘리고 뿌려댄 듯한 작품들이 중국화가들의 시를 휘갈겨 쓰듯 필획마다 충만해야 하는 달인의 느낌과 영감의 경지에서 비롯된 붓놀림의 기법임을, 낙서같은 단순하고 자발적인 동경과 순수회화가 부딪친 고답성의 탈출구였음을 엿보게도 된다. 시대와 전통의 연결, 당대의 미술적 긴장과 갈등, 각종 요구의 분출 등이 곧 미술 작품의 반영이었음을 발견하게도 된다.

    

[ 파블로 피카소 <바이올린과 포도>, 1912년 ]

 

 

미술 감상자로서의 태도를 배우며 감수성을 키워나가는 토대로서 훌륭한 기반이 되어주는 책이라 할 수 있으며, 많은 미술 입문자들에게는 미술가의 노고와 고뇌가 감내하는 역할을 충분히 배울 수 있는 진주같은 저술이라 할 것이다. 미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기대하는 말, 정말 제대로된 책이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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