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습니다 - 연꽃 빌라 이야기 스토리 살롱 Story Salon 2
무레 요코 지음, 김영주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1.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나의 기억이 맞다면, 이번에 읽은 <일하지 않습니다>는 무레 요코의 작품 중에서 두번째로 접하는 작품일 듯 하다. 예전에 읽었던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에서 느꼈던 감정의 여운이 이번 책에서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듯 한데, 처음 일본 소설을 접했을 때의 놀라움(그리고 그 속에 스며들어 있는 따스함)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차분하면서도 일상의 순간순간을 음미하는 듯한 느낌, 그리고 의식의 흐름을 따라 되뇌이는 화자의 독백이, 시간의 흐름보다 더 인상적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2. 순간의 기억이 다른 무엇보다도 강렬하다고 믿는다.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여러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명성, 그리고 화려한 스펙과 영광 역시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평생 잊혀지지 않는, 그리고 떠올릴 때마다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꼽자면 역시나 좋았던 기억과 시간들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한 순간 기억에 떠오르는 장면들은 때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타인에게 말하기조차 겸연쩍은 일 같고, 사소하고도 조그마한 기억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한장의 폴라로이드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선물인가? 마치 어렸을 적 부모님이 찍어준 색바랜 사진첩을 펼쳤을 때의 놀랍고도 즐거운 감정처럼 말이다. 문득 그러한 즐거움조차 조금씩 잊혀져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다.


3. 주인공인 교코는 한때 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오래되고 색바랜 연꽃 빌라에 거주하는 여성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운치있는 풍경을 담고 있고, 시끌벅적하진 않지만 인간다운 맛이 넘쳐나는 이 마을을 그녀는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일상의 감정들이 담담하고도 경쾌한 문체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고. 새로 입주한 지유키라는 미모의 젊은 여성은 모델같은 비율과 도시적 세련미를 갖췄지만, 묘하게 연꽃빌라에 녹아든다.


물론 이 소설에서도 갈등은 있다. 일을 하지 않는 연꽃빌라 주민들에게 걸려오는 공무원의 전화. 바람직한 시민이라면 일을 해서 국가에 세금을 내야되지 않겠냐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가 이 책에서만큼은 거부감으로 다가온다.


제발 그만좀 해. 사람들은 모두 가끔씩은 그냥 멍하니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그냥 좀 닥치고 니 할일이나 하라구.


4. 자수를 하고, 빌라의 숨겨진 공간을 발견하는 사소한 기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 책에서는 말 없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맞다. 이런 것들을 가끔씩은 잊어버리곤 한다. 그리곤 또 바보같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곤 한다. 바보같이도. 한번 쯤 되돌아보게 만들어주는 기억을 갖고 있다면, 그리고 갖게되기를 교코는 우리에 보여주고 있는게 아닐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되려고 하는데, 어울리는 사람은 그렇게 되려고 하지 않는다.

복잡한 문제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오는 주제에 멋대로 복잡한 문제를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다.

복잡한 문제는 그 문제가 일어났을 때 생각하면 된다. 아무 일도 없는데 일부러 문제를 만들어 낼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