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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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 환상의 빛 / 미야모토 테루, 송태욱 / 바다출판사 東文書林 2.0

2015/01/03 13:14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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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집으로 걸어가는 길은 종종 외로움을 동반하곤 한다. 감추려고 해도 쓸쓸함의 그림자는 주인과 함께 하며 떨어지지 않는다. 빠른 걸음으로 재촉해도, 때론 술과 함께 걷는다 해도 그건 잠시뿐이다. 감정은 이연되고, 다른 방식으로 스산함을 가져오곤 하는 것이다. 결국에는 본인이 감당해야 하고, 이겨내야 하며, 즐겨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혼자인 시간을 잘 견디어 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추운 날씨는 사람의 마음을 더 오그라들게 하고, 종종 걸음은 마음마저 움츠러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때는 따뜻한 차 한잔이나 편의점에서 파는 데자와 캔이 제격이다. 손으로 전해져 오는 온도는 언제 그런 마음이었냐는 듯 온 몸을 따스하게 적셔준다. 친구와의 통화나 가족간의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감정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의 손을 한번에 낚아채서 꺼내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금 일상으로 복귀하게 된다.

따스함을 느끼면서 젖어들게 되는 잠자리는 이상하리 만큼 포근하다. 어두운 밤인데도 멀리서 흐미한 불빛이 우리를 밝혀주는 듯 하다. 조심스레 잠들수 있게, 서서히 어둠에 가려질 수 있게, 그리고 더 빛나는 다음날을 위해서 말이다. 오랜 시간 희미하게 비춰주는 걸음, 환상의 빛이다.


이번에 읽은 책은 일본의 순수문학의 대가인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이다. 긴 문장의 여운이 섬세한 문체와 어울려서 빛을 발하는 이 소설집은 표제작인 <환상의 빛>과 <밤 벚꽃>, <박쥐>, 그리고 <침대차>로 구성되어 있다. 넷 다 죽음을 배경으로 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짧은 산문임에도 화자의 삶과 그 시간들이 맞물려서 폭넓은 서사적 면모를 풍긴다. 몇 안되는 등장인물들의 대화속에서 깊은 바다와 넓은 정경이 펼쳐지는 것만 같다. 문체 또한 포근하면서도 쓸쓸함을 담고 있어서 마치 한편의 영상을 바라다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각각의 작품은 모두 죽음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 죽음이 화자의 기억과 인생에 영향을 주었음에도 그냥 배경처럼 그려지고 있다. 온몸을 감싸는 쓸쓸함이 책속에서 넘쳐나와 글을 읽는 내내 사방을 가득 채우면서도 그 끝에는 포근함이 함께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전 남편의 죽음은 빛과 함께 따스하게 사그러지고, 아들의 죽음은 풋풋하기만한 신혼부부의 사랑으로 희미해진다. 친구의 죽음과 거기에서 본 장면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얼굴에서 다시 나타나며, 옛 벗의 죽음은 기억과 만남과 함께 어우러진다.


책을 덮으면서, 쓸쓸함으로 시작된 감정은, 봄의 포근함으로 뒤바뀐다. 풋풋하면서도 희망을 꿈꾸는 신부의 몸짓과 말투는 속물이라기보다는 내일을 기약하는 향기로운 밤 벚꽃이다. 어느새 방안에 햇볕이 가득하다. 추위는 가라앉고, 따스함이 공기를 가득 채운다. 어렸을 적, 밤거리에서 만난 작은 고양이의 눈망울이 모든 감정을 씻겨내주듯이, 환상의 빛은 우울한 기억들의 덤불 속에서 찾아낸 희망의 속삭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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