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골목의 추억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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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차분해 지는 소설이다. 무거워서 가라앉는게 아니라, 가벼워져서 살포시 내려앉는다. 내려앉아 한자리를 덥썩 차지하는게 아니라 향기처럼 공간을 채워주는 느낌이다. 행복한 느낌이 물을 등뿍 먹은 붓처럼 하얀 도화지에 살며시 번진다. 그래, 이게 바로 편안함이고, 적막함이 아닌 고요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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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읽은 건 N.P.였다. 근친상간, 자살과 죽음과 같은 독특한 소재와 줄거리는 다른 소설에서는 볼 수 없던 맛이었다. 다른 작품인 티티새, 키친, 도마뱀 등도 조금 어두운 느낌의 전개가 많아서 쉽게 읽혀지지는 않았다. 어렵다기 보다는 다가가기가 어렵다는 느낌.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언제나 그녀의 소설을 읽고 나면 묘한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느낄수가 있다. 암울한 소재 때문이 아니라,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를 생각하게 한다. 책장은 덮었지만, 그 다음이 현실속에서 계속해서 이어질것만 같은 느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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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총 5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유령이 나오는 집을 매체로 하여 두 사람의 사랑이 시간을 초월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정적으로 표헌한 "유령의 집". 삶에 있어서의 큰 상처로 인해 자신을 감싸고 있던 묘한 어둠을 날려버린 이야기인 "엄마". 짧았지만 쉽게 이해되진 않았던 "따뜻하진 않아""도모 짱의 추억". 마지막으로 잠시나마의 추억과 편안한 배려의 매력이 사람에게 평생 잊혀지지 않을 추억이 됨을, 그리고 행복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마지막 골목의 추억" 까지. 모든 이야기가 다 마음에 들었다.

 

최신작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전 작품들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는 듯 했다. 그동안 죽음과 상처, 인간 관계의 비뚤어진 모습, 그리고 검은 안개처럼 느껴지던 묘한 분위기의 전작들과는 달리 더 맑아지는 하늘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기존의 어두웠던 소재들이 등장하지만 이는 이 책의 메인이 아니라, 주인공들이 이겨내는 극복의 대상. 그냥 쿨하게 잊어버릴 수 있는 대상일 뿐이다. 그녀의 작품들 중에서 해피엔딩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것들이 많았는데, 이번 이야기는 우리 스스로가 스스로를 이겨내는 진짜 "해피엔딩"으로만 가득차 있다.

 

또 정적인 시간의 소중함, 자연을 느끼며 공간과 함께하는 시간들의 편안함을 묘사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 그리고 그것이 빛나게 됨을 치유의 과정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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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전에 팀 버튼의 전시전을 구경했었다. 암울한 이야기와 독특한 소재로 주목받았던 그의 작품세계를 자세히 엿볼수 있던 기회였는데, 초기 작품과 후기 작품들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초기에는 어두움이 지배하고 있었다면, 후기로 갈수록 그것은 소재의 대상이 되거나 이를 극복한 따스한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이겨낸 걸까. 아니면 타인이 해결해 줄수 없는 팀 버튼 가슴속의 응어리를 풀어낸 걸까. 마치 이번 이야기처럼 말이다.

 

아무 것도 아닌 걸 아무렇지 않게 잊어버리는 사람. 아무일도 아니었지만 스스로의 자기 반성 때문에 고민하고 해결하려 했던 사람. 그리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처럼 이겨낸 사람. 타자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그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 치유는 한번 뿐이고, 그 기억을 영원히 지속시킬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극복이다.

 

행복. 짧은 기억들. 그리고 순간의 빛남. 치유. 정적인 시간의 연속. 함께 함으로써 행복해진다는 것까지.

 

한 번 더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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