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신경숙 짧은 소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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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님의 새 작품이 나왔다. 제목은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이전의 작품들의 제목과는 달리 조금은 앙증맞은 느낌을 주는 "달에게"라는 이름이 귀엽게 느껴졌다. 연한 에메랄드 빛의 표지에 그려진 하얀 달과 담벼락 위에 올라앉은 괭이 두마리. 마지막으로 속지의 싸인까지. - 난 처음에 속지의 싸인은 인쇄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나 해서 손으로 스윽 하고 문질러 보니 진짜 싸인이었다. 크윽ㅠㅠ - 전작들과는 조금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첫 이야기는 노인들만 사는 마을에서 벌어진 목사님과 스님과의 에피소드이다. 조용한 마을에 한 젊은 목사가 찾아오면서 마을은 시끌벅적해진다. 물론 그전에도 스님이 한분 살고 있었지만 새로온 목사처럼 전도한다고 시끄럽게 돌아다니진 않았다. 하지만 이 목사는 사람들을 붙잡고 교회를 믿으라고, 설교하고 다닌다. 마을 사람들은 젊은이의 등장에 신기해하며 듣는 체는 해주지만, 스님은 영 못마땅해한다. 그리고, 마을버스안에서 한바탕 싸우게 되는데, 목사의 "사랑한다"는 말이 압권이었다. 그래 서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 말을 강남역 근방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길을 물어보는 전도꾼마냥 한다면, 나라도 한대 때려주고 싶을 거다. 사람들은 울고 불고 말리고, 먼산은 그 모습을 내려다본다. 가까이에선 비극이지만 멀리서는 희극이라던 말이 갑자기 생각난다.

 

 

책에는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총 27개의 단편이 등장한다. 꽁트같은 글이 있는가 하면 우리 할머니들의 인생에 대한 잔잔함을 느끼게 하는 글들도 있다. 슬픔과 기쁨, 관조적인 시선이 묘하게 결합된 이 글들은 우리들의 일상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맞아, 나도 이랬었는데.." 하며 무릎을 치며 공감할만한 부분도 많았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는 거야. 순간 순간 잘 살아야 되는 이유지. C선배 얘기를 듣는데 가슴이 서늘했어. 살아오는 동안 어느 세월의 갈피에서 헤어진 사람을 어디선가 마주쳐 이름도 잊어버린 채 서로를 알아보게 되었을 때, 그때 말이야. 나는 무엇으로 불릴까? 그리고 너는?(37페이지)

 

 

말씀은 그리 하시면서도 입가엔 생각만 해도 딸애가 대견한지 웃음이 함빡이었다. 아마도 퇴근하면 그 빨간 티셔츠만 입고 계실 것 같았다. 퇴임하면 시골에 가서 살고 싶고, 그러려면 지금부터 농사지을 땅도 알아보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내가 그럴 생각이 아니어서 아무런 준비도 못 하고 있다고 한다. 아저씨의 꿈이 이루어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아저씨는 땅을 가져도 지난 사십 년간 우편물을 열심히 배달했듯이 그 땅에 뭔가를 열심히 가꾸어나갈 것은 분명해 보였다. 세상의 변화는 잘나고 목소리 큰 사람들이 이루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제자리에서 이렇게 성실히 자시의 삶을 일구어나간 분들에 의해 변화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74페이지)

 

 

바닷바람 속을, 오름의 바람 속을, 농원의 바람 속을.... 걷다 보면 지금보다는 지난 일들이 투명하게 되비쳐오는 때가 잦아 나도 모르게 깊은 숨을 쉬곤 하지. 바람은 거울인지도 모르겠어. 어떻게 그걸 이겨내고 이 시간으로 오게 되었을까 싶은 일도 그냥 담담하게 떠오르곤 해. 오래 잊고 지냈던 사람들의 얼굴이 바람에 실려와 잠시 머무는 때도 있지. 그렇게 계속 걷다보면 이젠 생각이 과거를 지나 현재를 지나 미래로 뻗어나가지. 걷는다는 일은 온몸을 사용하는 일이잖아. 이곳에서 걷기 시작하면서 걷는 일은 운동이 아니라 휴식이 아니라 미래로 한발짝 나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 어떤 일에 끝이란 없다는 생각도 들어. 내가 내 태생지를 떠나왔지만 그 주소를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가 이 현재에 무엇인가를 자꾸 그곳으로 보내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 그런 것 같아.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듯이 모든 일은 끝없이 계속되고 있어. 작별도 끝이 아니고 결혼도 끝이 아니고 죽음도 끝이 아닌 거지. 생은 계속되는 거지. 제어할 수 없이 복잡하게 얽힌 채 다양하고 무질서한 모습으로. 이따금 이런 시간, 누군가 만들어 놓은 이 바닷가 우체국에서 잠깐 머무는 이런 시간. 이렇게 홀로 남은 시간 속에서야 그 계속되는 생을 지켜보는 마음과 조우하게 되는 거지.(189페이지)

 

 

그리고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는 자신의 글이 아직 부족함이 많다고 이야기하지만, - 내 생각에 이건 너무 지나친 겸손이다. - 이렇게 재미있게 글을 잘 쓰시는 분들도 드물 것이다. 또 누군가는 신경숙 작가님의 글이 쉽게 읽힌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만큼 맛깔나게 쓴다는 의미가 아닐까. 지나간 세월의 향수를 일깨워주면서도 지금 현재와도 끈이 이어져 있는 세대차이를 느끼지 않게 해주는 그런 소설 같다. 마치 여러세대가 모인 모임에서 나이차가 나는 사람들을 서로 이어주는 그런 사람처럼 말이다.

 

 

부산으로 내려오는 기차안에서 책을 다 읽으니 어느덧 6시가 가까워진다. 짧은 시간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얘기를 듣고, 웃으며 바라본것만 같다.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었을 때, 그 사람이 온전히 나를 느낄 수 있을까. 부끄러운 기억들과 희망으로만 가득찼던 시절. 누구보다 뛰어났던 때와 안으로 움츠려들었던 때. 스스로를 닫아 두었다가 다시 열고 미래에 대한 꿈이 지배했던 시간. 그리고 하루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픈 마음으로 만들고 싶은 지금.

 

 

나도 언젠가는 그 전부를 누군가에게만 들려주고 싶다.

 

 

나의 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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