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사람들 - 세계 최고의 독서가, 책 읽기의 즐거움을 말하다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주헌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오래 걸렸다. 책을 다 읽기까지. 그리고 그 생각들을 정리할 시간까지. 무엇보다도 수많은 사유의 공간에서 내가 느낌 감정이 어떠했는지를 알아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을 읽다가 다시 덮고, 또 다시 읽기를 여러번. 평소 책을 많이 읽어왔지만, 이렇게 복잡한 생각을 떠올리게 한 작품은 오랜만이였다. 수많은 작가들과 인용문구. 수십년간의 독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사유의 조각들. 그리고 저자 - 알베르토 망구엘 - 의 삶의 흔적들까지. 가십거리만을 쫓아다니고, 가벼운 위트와 힐링이 주류를 차지하는 JPG 세상속에서, 책 한페이지를 꽉 채운 글귀만으로도 즐거워지는 오랜만에 만난 TEXT 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해보면, 누구나 자신이 책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다. 어릴적부터 좋아한 사람도 있고, 나이가 들어서 어떤 계기로 인해 뒤늦게 책에 빠지게 된 사람도 있다. 한때 책을 좋아했다가 바쁜 일상속에서 조금씩 멀어진 사람도 있고, 한 분야의 책만 고집해서 읽는 사람들도 있다. 이 모든 사람들 역시 자신만의 책읽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책이라는 호수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을 것이다. 

 

어렸을 적 즐겨 읽었던 책을 꼽으라면, 몇 권이 떠오른다. 유진출판사의 "마법사의 모자와 무민"과 "찰리와 초콜릿 공장". 꼬마니꼴라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어린왕자와 제목이 잘 기억나질 않는 환경만화책. 계몽사의 디즈니 명작만화 시리즈와 만화 한국사,세계사,위인전, 그리고 백과사전까지. 정말 -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 책장이 닳도록 읽었던 것 같다. 그 영향 덕분인지,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지금까지도 챙겨보게 되고, 그외 다양한 애니메이션에도 항상 관심을 두게 되었다. 역사책 덕분에 사극, 역사 다큐, 초고대문명 등으로도 관심을 넓혔고, 학창시절 국사 과목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계몽사 백과사전 10권 덕분에 어렸을 적부터 다양한 분야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건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다. 아동용으로 나온 것이라 글자도 컸고, 항상 삽화와 사진이 곁들어져 있어서 질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삽화가 곁들어진 책들은 지금도 내가 책을 고를때 중요하게 판단하는 기준의 하나이다. 

 

"나는 어떤이가 책을 읽어내는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의 해석에서 자신의 자아상을 찾아내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다."

"누구도 어떤 책이 어떤 경우에 적합한지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해석의 한계는 상식의 한계와 일치한다. 우리는 상식의 한계를 넓히기 위해 애써야 하며, 그 비결이 바로 끝없는 독서에 있다."

- 본문 중에서...

 

체 게바라를 시작으로 브루스 채트윈의 "파타고니아"가 소개되고, 헤리 데이빗 소로우의 문구가 등장한다. 돈 키호테는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소재이며, 카프카의 작품과 단테의 "신곡" 역시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 저자의 독서와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연결고리인 보르헤스는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고, 어렸을 적부터 자주 읽었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각 장의 서문을 빛내준다. 그 외에도 수많은 책들과 그 속의 등장인물, 그리고 작가들이 4백여 페이지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사실, 처음 읽을 때는 많이 답답했다. 그리고 더 답답한 건 저자의 글과 그 감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나의 독서력. 고등학교 때 언어영역 지문에서, 집에 있는 책장에서, 그리고 다양한 북 리뷰를 통해 한번쯤 접했던 것이지만, 자유자재로 이를 글감의 소재로 사용하는 저자의 솜씨와 독서력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몇 번 보고, 책장을 천천히 넘겨가면서 비로소 그 의미가 다가오기 시작한 것 같다.

 

이상적인 독자란 무엇이고, 제대로된 책읽기란 어떤 것일까? 저자는 적지 않은 페이지를 할애하며 이 같은 물음에 대한 답변을 소개한다. 이상적인 독자는 책을 끝까지 일기를 바라는 동시에, 그 책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여백에 쓰인 글은 이상적인 독자라는 증거다....이상적인 도서관에서는 모든 페이지가 첫 페이지이고, 어떤 페이지도 마지막 페이지가 아니다....(본문 중에서..)

 

이 같은 저자의 정의는 우리에게 해답은 커녕 더 큰 물음만 안겨준다. 홀로코스트를 바라보는 유대인의 시선은 기존에 보던 책들과는 사뭇 다르다. 피노키오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뽑아낸 감정의 덩어리는 평소에는 쉽게 접하기 힘든 심연의 물고기와도 같았다. 그 와중에 등장하는 보르헤스와의 만남과 그와의 교류는 독서의 범주에서 벗어나면서도, 결국 인생은 배움의 연속, 생각의 집합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답이 아닌 과정이, 시점이 아닌 흐름처럼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었던 줄과 접어둔 페이지를 다시 보니 그 때 왜 여기서 감정의 순간을 정지시켜 둔 건지 모르겠다. 다시 읽어보니 그 때 그 느낌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다행이도 동그라미 쳐둔 단어와 형광펜의 고리가 그 때의 느낌의 근거를 유추하게 한다. 어려운 책이었지만 즐거웠고, 빽빽한 내용이었지만 세상 모든 곳을 향해 열려 있었다.

 

이건 책이 아니다. 무한한 사유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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