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권영주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오가와 요코의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을 접한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도서 리뷰나 신간 서적 안내와 같은 코너에서 가끔씩 곁눈질할수 있었기에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상징적인 기호에 대한 의미의 부여와 모호하고 몽환적인 소설속의 세계관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온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했지만, 그속에 숨겨진 인생의 의미는 누구에게나 와닿을수 있는 주제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기보. 그 안에 펼쳐진 우주와 인생.

 

체스, 바둑 등에서 펼쳐지는 수의 기록을 남긴 것을 기보라고 부른다. 학생에게는 하루하루를 기록한 일기장, 대학교에서

강의를 듣는 사람에게는 수업의 내용을 기록한 강의 노트, 고시생이라면 매일 들었던 강의와 학습한 내용을 기록하는 써머리

와도 같은 것이라 보면 되겠다.

 

단순한 기록이지만 그 안에는 그동안 사람이 살아왔던 시간과 진행된 일련의 움직임, 그리고 평소 생각하고 느껴왔던 주인공의

인생관이 반영된 것이기에, 우리는 그 안에서 삶의 모습을 엿볼수 있다. 조금씩 다른 게임의 진행과 방향, 순간순간의 감정이

기록된 필체와 종이. 이 모든게 모여 하나의 기보를 이루고 그것이 우주와 조화를 이루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게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소년. 그리고 체스.

 

책의 도입부는 백화점 옥상에 잠시 거처를 마련했다가 몸이 커져서 결국 내려올수 없게 된 코끼리 인디라를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잠시동안만 머물다가 동물원으로 보내질 예정이었던 코끼리는 결국 백화점 옥상에서 삶을 마감하게 되고, 소년의 머릿속

에서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매개체가 된다.

 

소년 역시 체스를 배우게 된 마스터의 죽음과 미라와의 만남을 통해 더 이상 성장하기를 멈추고, 체스 인형속에 들어가버리고 마는데

코끼리와 소년과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걸까라는 생각도 했다. 삶에 있어서의 순간의 중요성이었던 걸까. 아니면 시간의 중단을 통해

이루어지는 지속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걸까. 어쩌면 11살에 멈춰져버린 소년의 성장은 성인이 되면서 때묻지 않기를 바라는

순수함에 대한 저자의 작은 바램일지도 모르겠다.

 

소년의 왜소하고도 특이한 입술은 이상하다는 느낌보다는 미묘하고도 신비롭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소년의 순수한

마음과 뛰어난 체스 실력은 무언가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소설을 이끌어간다. 8*8의 작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이야기와 게임의

묘미는 기보보조원 미라의 수려한 필체와 함께 기록되어진다.

 

리틀 알레힌.

 

알렉산드르 알레힌. 책에선는 체스계의 유명한 실력자로 소개된다. 그리고 소년은 인형안에서 숨어서 체스를 두는 재야의 실력자인

리틀 알레힌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고...

 

소설속에는 지명도 이름도, 시간이 언제이며 어느 곳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지를 우리에게 전혀 보여주질 않는다. 하지만 기보에는

소년의 모든것이 소개되고 있다. 강자를 만났을 때의 긴박함과 각 말의 움직임을 통해 묘사되는 게임의 진행. 소년의 인생관과 아픔,

기쁨, 순간의 소소한 감정의 변화까지. 너무나도 자세하고 섬세하게 그려진다.

 

세상은 감춰져 있지만, 체스판에는 그 모든게 드러나는 역설적인 구조가 이 소설의 묘미가 아닐까란 생각도 했다.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알고 싶으시다면 기보를 읽어 주십시오. 그곳에 모든 것이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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