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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오르트만의 작품 어디에도 신산스러움은 엿보이지 않는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독자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제대로 위로받았다는 느낌이 밀려들 것이다. 오르트만의
따뜻함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 "
" 주인공은 곰스크로 가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는 자기가 원치 않은 삶을 살았을까? 아니다.
아내를 위해 곰스크를 포기한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마을에서 정원이 딸린 조그만 집에서
가족들과 사는 일은 불행했을까? 아니다. 이 또한 그가 원했던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기차가 마을에 섰을 때 주인공은 아내의 이끌림에 넘어가지 않았을 테다.
목표한 대로 되지 않아도 인생은 충분히 따뜻하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
오랜만에 읽은 소설책이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음.. 마치, 따스한 느낌의 포장지 속의 다이어리를 펼처보는 듯한 느낌..
재작년부터 시험준비, 취업준비에 여념이 없어서 주로 경제서적만 읽은 탓에 올해에는 꼭 문학 작품을 많이 읽어봐야지
하며 입으로만 되뇌였는데, 다행이도 이번 기회에 좋은 작가를 접하게 되었고, "곰스크로 가는 기차"라는 작품도 알게 되었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저자인 프리츠 오르트만에 대한 기록이나 작품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이 책에 포함된 다른 몇편의 단편소설이 전부이고, 저자의 고향인 독일의 프리슬란드에도 많은 사료가 없다고 하니
꽤나 조용하고 한적한 삶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온다 리쿠의 "굽이치는 강가에서"와
가브리엘 루아의 작품속의 한적한 매니토바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해서, 읽는 내내 따스한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주인공은 어렸을적부터 곰스크로 가고 싶다고 꿈꾼다. 그의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전부였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인생의 목표였고, 또 성취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리고 결혼 직후 그는 아내와 함께 곰스크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우연하게도 그의 아내의 유혹에 이끌려 가는 도중 어느 한적한 마을에 안착하게 되고, 거기서 그의 삶은 변화하게 된다.
주인공은 다시한번 곰스크로 가기 위해 매달리지만, 아내의 임신과 가족의 부양을 위해 마을에 정착하게 되고,
곰스크로 가려던 그의 젊은날의 열망은 서서히 흩어지는 어린 시절의 꿈처럼 남아있게 된다..
사실 줄거리는 간단했다. 그리고 어렵게 읽혀지는 소설도 아니었다. 그냥 마음 편하게 읽을수 있는 그런 소설..
하지만 읽는 내내 많은 것들이 어린 시절의 꿈과 바래왔던 목표를 향해 가려는 나의 모습, 그리고 현실에의 장벽 등이 함께
어우러져 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어린 시절 그가 가고자 했던 곰스크라는 곳은 어린시절부터 그리고 사회로부터 당연하게
주입되어온 우리의 장래희망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좋은 곳, 높은 지위, 물질적인 풍요.. 부모님 세대가 이루지 못한
이상향 같은 거랄까. 그리고 그러한 고정관념속에서 꿈을 키워가면서 현실에 부닺히는 모습이 자연스레 연상되었다.
그는 아내를 따라 기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다시는 가지못할 곰스크를 갈망하며, 현실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현실을 탓하지는 않는다.
과연 그가 불행한걸까. 꿈꾸던 미래를 손에쥐지 못한 것이 그의 인생에서 실패한 것일까.
그의 아내는 그가 꿈꾸던 미래를 놓쳐버리게 만든 걸까..
누굴 탓해야 하나. 결국은 그가 선택한 것인데 말이다.
역자의 말처럼 모두 변명이었다. 그는 아내를 버리고 곰스크로 갈수도 있었고, 처음부터 기차에서 내리지 않을수도 있었다.
돈을 모아 다시 한번 곰스크행 기차에 몸을 싣을수도 있었고, 임신한 아내를 데리고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려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내와 함께 정원이 딸린 집에서 사는 삶을 살고 있고, 거기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이따금 찾아오는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그가 선택했던 삶이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걸까. 곰스크로 가는 것이 조그마한 마을에서 아내와 사는 소소한 일상보다 더 가치있고, 위대하다고 말할수
있을까. 이루지 못한 꿈을 아쉬워하며 사는 것보다 비록 그 끝은 알수 없지만, 그래도 무작정 곰스크로 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을까.
나는 책을 덮는 순간에도 확답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꿈을 꾸며 사는 사람들과 현실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경계선에서 갈팡질팡하는 모든 이들에게 과연 누가 삶의 성적표를 매길수 있을까. 20대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나의 삶에
있어서도 결코 비껴갈수 없는 물음이었다.
서평을 쓰는 지금 이순간에서도 주인공의 선택과 나의 삶에 있어서의 선택에 있어서도 난 아직 어떠한 확답을 내릴 수가 없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있다. 목표한 대로 되지 않아도 인생은 충분히 따뜻하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