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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뜬구름
찬쉐 지음, 김태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평점 :
차분함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여유로움이 필요하다. 매번 서두르고 시간에 쫓기는 일상이 반복된다면, 그건 바쁘다기보다는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하다. 인원(투입량)이 늘어나도 비효율성은 더 커지고 친절함이나 따스함과는 거리가 더 멀어진다면 반드시 일상과 루틴을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게 쉽지 않다면 더더욱 마음가짐과 행동을 단정하게 그리고 꾸준히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 때로는 상황과 환경을 조율하고 바꿔보는 게 변화를 가져오는 지름길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로테스크하고 초현실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공간에서는 자연스레 공허함과 불안감 그리고 소외와 혐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자리 잡는다. 중국 특유의 감시사회의 냄새가 스며들어있는 중국 여성 작가 찬쉐의 소설 <오래된 뜬구름>에서는 향기보다는 냄새가, 화려함과 다채로움보다는 얼룩진 자국과 같은 이미지가 책을 가득 채운다. 감각적인 소재들과 표현이 가득하나 그 안에는 불안감과 파편화된 일상만이 자리 잡고 있다.
감정은 온전히 전달되지 않고, 의심과 감시만이 남아 서로의 감정선을 건드린다. 거울이나 짓밟힌 꽃가지, 쇠꼬챙이와 같은 소재가 그런 느낌을 더욱 증폭시킨다. 두둥실 떠다니는 꿈결같은 구름, 햇살 좋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런 날의 구름이 아니라 미세먼지가 잔뜩 끼어있는, 실체가 없고 마치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구름이다.
실험적이고 난해하며, 그로테스크한 반서사로 표현되는 소설이라고 국내외 평론에서는 말한다. 나는 여기에다가 뒤틀린 가족들과 이웃 간의 관계와 상호 염탐을 넘어선 감시에 대한 불안감이 저변에 깔려있는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불완전하고 불분명한 무언가로 가득 차 있고, 줄거리가 있다기보다는 단절된 감각의 이동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어서 - 솔직히 말해서 - 쉽게 읽히지는 않았던 소설이다.
2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 탱고' - 어제 우연히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가 책 상태가 너무 좋아 바로 한 권을 구매했다 -처럼 묵시록적 분위기가 가득 찬 책들이 서점과 평단에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열린책들의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추醜의 미학, 불안한 풍경 속 뒤틀린 형상들의 몽환적 스케치라는 표현이 너무나 와닿는 작품이다. 라슬로는 그래도 과거보다는 미래를, 지옥에서 희망을 꿈꿔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찬쉐는 악몽 같은 현실의 무한 루프(서울신문 기사 제목 인용)를 이야기하면서 독자들에게 그 어떤 결말도 단정 짓지는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은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들의 몫을 테고, 무언가를 선택하고 움직이는 것 역시 바로 자기 자신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