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밀 이삭처럼 - 고흐, 살다 그리다 쓰다 열다
빈센트 반 고흐 지음, 황종민 옮김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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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그가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거의 대부분은 알고 있을 것이다. 절친이었던 폴 고갱과의 헤어짐(?) 이후 귀를 자르고 거의 혼자 지내다시피한 그의 마지막 삶도 그렇고 평생 동안 단 하나의 그림만 팔았다는 사실도 그렇다. 외로움, 고독 정도야 예술가적 의지로 견뎌낼 수 있었겠지만 사람들로부터 서서히 배척되어가는 현실과 자신의 작품이 인정받지 못한 현실은 외유내강의 고흐 자신도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러빙 빈센트 -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 중 하나다 -에서는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데, 다 보고 나면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애절한 맘이 더 크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역자의 말을 빌리자면 - 카더라일수도 있지만 - 고흐를 평생 지원했던 테오나 마지막 후원자이기도 했던 가셰 박사, 그리고 고갱과의 다툼과 귀가 잘린 사건에는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주류(?)의 의견은 아니어서 일단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선에서 넘어가야겠지만, 역사적 사실들도 쉽게 왜곡되고 조작되는 현실 속에서 그러한 카더라들 역시 한 번쯤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

후회하며 슬픔에 잠겨 있으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고 한다. 발버둥 쳐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면서도 당시 고흐의 마음이 그랬던 것 같아 편안하게만 읽히지는 않는 문장이었다.

특히 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대한 그의 진지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는데, 다짜고짜 달려들어 어떤 일을 해보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이나 지금 현재가 비록 이런 상황이라도 계속해서 나아갈 희망을 잃진 않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이 바로 그랬다. 또 우울함과 고독으로 가득 찬 시간 속에서도 계속해서 밝음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무언가를 찾으려고 노력하며, 계속해서 작품에 대한 의지를 보이는 장면들도 인상적이었고. 노동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도 결국에는 돈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장면은 현실적이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얼마 전에 그림을 하나 샀는데, 노을 진 블라인드 아래에서 고민에 빠져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무척이나 맘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가격이 좀 비싸 고민을 했지만 마음이 끌려 어쩔 수 없었다. 고흐의 작품들이 바로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고흐의 편지 중에는 그가 자기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과 확증에 찬 어조로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괜히 맘이 뭉클했다. 아마도 그렇지 못한 현실을 이겨보고자 했던 그의 마지막 발악(?)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결국 실제로 고흐가 죽고 테오도 죽은 뒤에야 그 빛을 보게 되었지만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예상하지도 못할 만큼의 밑바닥까지 떨어져 본 한 남자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쉽게 접하지 못한 무언가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짤막한 글귀 속에서 느껴지는 아우라가 남달랐던 건 그 때문이었을까.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끔 해준 고마운 책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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