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 2024년 제4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조경란 외 지음 / 문학사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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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이다. 처음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접한 건 - 좀 많이 거슬러 올라가서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는데, 지금으로부터 거의 30년 전 일이니, 시간도 참 빨리 지나간 듯싶다. 그 이후로는 가끔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생각나서 구매했거나, 이렇게 책좋사 카페 이벤트를 통해서 간간이 접해왔던 것 같다.

올해의 대상은 바로 조경란 작가님의 <일러두기>다. 참고로 일러두기란 책의 첫머리에 그 책의 내용이나 쓰는 방법 따위에 관한 참고사항을 기재한 글을 말하는데, 가이드나 사전 설명과 같은 친절한 안내를 떠올리면 되겠다. 혹자는 이런 장치가 독자의 읽는 상상력을 저해한다고도 하는데, 때론 적절한 일러두기가 오히려 올바른 사고의 확장이나 깊은 사고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알아둘 필요도 있겠다. 또 효율성과 성과를 강조하는 요즘의 트렌드에도 부합할 수 있을까도 싶고. 다만, 후자에 대해서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는 아니다.

뭐 아무튼 그래서 '일러두기'가 이 소설에서 의미하는 바가 뭐냐고 다시 물어볼 수도 있는데, 이 책의 마지막에서 그리고 심사위원과 작가, 동료 소설가의 글 속에서 그 역할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거나 커리어를 쌓는 과정에서의 '일러두기'는 분명 큰 도움이 되겠지만, 인생이라는 서사에서는, 성공만큼 실패마저도 인생의 커다란 스토리를 쌓아 올린다는 가정 하에서 과연 '일러두기'가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만은 아닐 터. 작품 속 주인공의 말에서도 그 뉘앙스를 느낄 수 있듯이 '일러두기'의 아쉬움 정도로만 표현되어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그래도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각 시점에 나만을 위한 '일러두기'가 한 번쯤은 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은 충분히 해볼 수 있겠다란 생각도 든다.

단편 소설이라 구태여 줄거리를 소개할 건 없겠지만 - 사실 인터넷 기사를 조금만 뒤져봐도 금방 찾을 수 있다 - 중년이 된, 서로를 잘 몰랐던 남녀가 우연한 기회로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었다는 글 정도로 요약하면 어떨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서로가 서로에게 작은 흔적을 남기고 - 순수하게 - 그들의 삶을 궁금해했으며, 어설픈 위로 따위가 아니라 그냥 같이 있어주면서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같다. 무엇보다도 과거의 실수라면 실수라고 말할 수 있는 기억들과 일상의 사고들을 담담하게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를 읽으면서, 내 삶의 무언가가 달라졌다고 한다. 이제 모든 일에 무리하게 덤벼들진 않지만, 반복적으로 그리고 단순하게 일상을 영위해 나아간다고 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채워져간 것들이 생활이 되어간다고 <일러두기>는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큰 스승님일지도 모를 조경란 작가님 앞에서 신인의 패기로, 어쩌면 약간의 망상일지도 모를 아직 가다듬어지지 않은 생각들과 큰 목소리의 조합으로 이야기했다던 정한아 님의 재미난 에피소드도 꼭 읽어보기를 권하면서 - 개인적으로 소설만큼 재미있게 읽은 글이다 - 리뷰를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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