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
알베르 카뮈 지음, 이주영 옮김, 변광배 감수 / 코너스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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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일지도. 모르겠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다. 소설의 첫 문장은 어머니의 죽음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뫼르소의 독백으로 시작하는데, 읽다 보니 문득 프레디 머큐리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떠오른다. 확실치는 않으나, 뫼르소에게 벌어지는 사건을 연결시켜 보면 분명 머큐리는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으리라.

알제를 배경으로 한 뫼르소 주변의 사람들과 여름 휴양지를 연상시키는 공간들, 그리고 거기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예전에 읽었던 카뮈의 또 다른 소설 <페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또 소설의 후반부를 차지하는 법원에서 전개되는 얘기들의 얼개는 소설 <전락>속의 부조리함, 사회적 모순이 연상되고.

그러니까 피고인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서 기소된 것입니까, 아니면 살인을 해서 기소된 것입니까라고 되묻는 변호사의 발언은 사회적 모순, 특히 재판에서의 부조리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미 재단된 결과 앞에서 주인공 뫼르소의 진실과 그 맘속에 있는 무언가는 더 이상 이야기될 수조차 없는 상황이지 않았나 싶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는 지영이의 억울한 상황이 태희(배두나)의 도움과 출국(?)이 비상구가 되어주지만 소설 <이방인> 속에서는 오로지 본인의 선택(?)에 따른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

평론가들은 뫼르소가 결국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인 것은 삶의 부조리에 대한 또 다른 반항, 역설적으로 표현되는 삶에 대한 의지와 찬가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설 속 전개를 통해 우리의 삶이, 사회가 얼마나 모순되고 부조리한지를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이다.

모든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가치를 지켜나감과 동시에 숙명적으로 사회에 대적할 만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때로는 - 잘못되어 - 독단과 아집으로 흐를 때도 있고, 마약과 같은 중독이나 폭력적 충동과도 같은 것들로 표출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또 누군가는 그냥 순응하고 살아가는 것으로 부조리함과 모순에 편승하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우리들 대부분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으나, 이마저도 이런 상황 속에서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한 것이라면 이것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도 해본다.

오랜만에 리뷰를 쓰고 있다. 요즘 일상은 전보다 더 단조로워졌다. 특별한 일이나, 몸을 못 가눌 정도의 피곤함이 아니라면 매일 6시 전후로 일어나 간단히 집 정리를 하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회사에 가서 운동을 한다. 점심은 가급적 구내식당에서, 저녁 이후의 시간은 영화나 온라인 강의를 듣는 걸로 말이다. 물론 최근에는 얼마 전에 끝난 시험의 보상(?)으로 나름의 여유를 즐기고 있지만.

예전에 어디에서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꾸준하게 계속하는 것만으로도 상위 10% 이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여기에 조금 더 보태어 매일, 그리고 매년 자신의 일상의 루틴을 지켜나갈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방인 속의 뫼르소는, 그리고 카뮈의 또 다른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이를 죽음과 자살로 구현하고자 했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적어도 소설 속의 뫼르소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인 무언가를 선택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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